1997년 11월 터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는 국가경제의 파탄을 의미한다. 당시 구미(歐美)언론은 그 원인을 한 마디로 진단했다. cronyism이라는 것이다. 더러 crony capitalism이니 buddy buddy capitalism이니 하는 말로도 표현했다. 우리말로는 '연고주의', '정실자본주의', '연고자본주의'가 가까울 듯하다. 국가경제를 놓고 끼리끼리 봐주고 갈라먹다 나라를 망쳤다는 뜻일 것이다. 지연-학연-혈연으로 얽히고설킨 부패의 사슬에 서식해온 지배세력이 권력의 향연에 도취한 사이 나라가 거덜난 것이다. 그 가운데는 '대선캠프', '관료집단','전관예우', '낙하산'이라는 파벌적 연고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1인 지배체제의 확장, '학연-지연-혈연'
지난 반세기의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이 나라에는 몇 가닥의 거대한 지배세력이 형성되어 있다. 지역-학연-혈연이 파벌의 구심력을 발휘하고 부정부패가 정치-관료-재벌-언론을 하나의 사슬로 묶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연고주의를 통해 추구하려고 상납, 뇌물, 접대로 밀착관계를 유지하면서 연합세력을 구축하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다. 정부요직을 독식하고도 모자라 산하기관, 정부투자-출연기관, 구 공기업의 경영권까지 장악해 크고 작은 자리를 싹쓸이한다. 연고세력 끼리 짜고 각종 청탁을 해결해주고 필요하면 국가정책까지 변경한다. 외부세력에 대해서는 결속력을 발휘해 단호하게 배척한다.
어떤 공조직도 학연-지연-혈연으로 교직되어 있어 무리한 청탁도 끼리끼리 연고주의를 동원하면 쉽게 처리된다. 민간분야도 관청민원을 해결하는 통로로 집권세력의 연고주의를 활용한다. 재벌기업이 시장변화나 경기변동보다도 권력이동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경영진을 경영능력보다도 집권세력-관료집단의 학연-지연-혈연에 맞춰 발탁한다. 집권세력의 인사청탁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들을 로비스트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권이 바뀌면 민간기업의 임원진도 집권세력의 출신지역-학교에 따라 개편된다. 여기서 정경유착이 형성되고 한국사회에 기생하는 거대한 지배세력이 형성된다.
그 중심점에는 1인지배체제(monocracy)가 자리잡고 있다. 해방 이후 모든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여러 차례 헌법개정이 있었지만 헌법상의 권력구조와는 상관없이 1인지배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정치군벌은 철저한 권력집중을 통해 독재체제를 강화했다. 그것은 법의 지배가 아니라 1인 절대권의 지배였다. 6월 항쟁이후 다섯 차례나 대통령을 뽑았지만 그들의 통치방식도 군사독재자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들 중에는 독재타도를 외쳤지만 그것을 그대로 답습해 정치관행으로 고착화되어 오늘까지 이어진다.
'방대하고 영원한 권력', 관료집단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영원히 권력을 장악하는 기성체제가 있다. 그것은 관료집단이다. 군사정권 이래 전문성 없는 집권세력이 관료집단을 차용세력으로 활용하면서 지배세력으로 정착한 것이다. 고시출신을 주축으로 하는 관료조직은 고시서열과 지연-학연을 중시하며 비고시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타적이다. 비관료 출신 장관의 단명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고시파의 조직적 저항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본류가 한 줄기의 파벌처럼 보이나 내면적으로는 지연-학연에 따라 여러 지류로 나눠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권세력의 지연-학연-혈연이란 연고주의에 따라 주류가 부침하는 것이다. 국익보다는 연고를 존중하는 폐쇄조직이 국무를 담당하니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는데 한계를 드러낸다.
관료집단은 본령인 정부조직뿐만 아니라 산하기관, 정부투자-출연기관은 물론이고 민영화된 공기업에다 민간의 업종별 협회-단체까지 수하의 조직으로 거느리고 있다. 모든 정부부처 산하조직의 요직은 '전관예우' 차원의 퇴직관료 노후보장용이다. 심지어 정부산하의 각종 위원회도 그들의 몫이며 사기업의 사외이사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예를 들면 금융기관-금융회사의 경영진은 이른바 '모피아'라는 재무관료 출신이 독식한다. 저축은행 부실사태로 금융감독원 출신이 저축은행의 감사를 싹쓸이한 사실이 말썽이 났지만 이것은 재무관료의 하부조직에 불과하며 빙산의 일각이다. 관료조직이 휘두르는 칼은 산하조직에 대한 감시-감독권이다. 피감기관-단체-기업의 입장에서는 '낙하산'을 영입해 로비스토로 활용하는 것이 규제기관의 칼을 피하는 첩경이다.
'전관예우' 카르텔, 사법관료 집단
이 나라의 성층권을 형성하고 있는 또 다른 지배세력은 사법고시 출신의 사법관료이다. '전관예우'는 일반적으로 퇴직관료에 대한 우대를 의미하나 주로 사법관료 출신에 적용된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전관예우'를 빗대어 단순히 세태를 풍자하는 말이 아니다. '전관예우'란 연고가 있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에 대해서 법원-검찰이 유리한 판결을 보장하는 법조계의 관행적 특혜이다. '전관예우'는 사법심판의 절대적 잣대로서 돈 보따리를 만드는 요술 방망이나 다름없다. 돈이 없으면 누구인가는 원고가 피고로 뒤바뀌고 재산상의 피해를 보고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것은 엄연한 범법행위다. 그런데 사실상 제도화되어 연간 수억, 수십억원의 수입을 보장한다. 거대한 사법관료집단이 국회에 포진해 있고 이익단체인 변호사회를 통해 '전관예우'를 성역으로 수호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회정의와 사법정의를 외친다.
그 까닭에 대형 법무법인들이 앞 다퉈 퇴직 대법관, 검찰총장을 비롯한 고위직 판사-검사 출신을 영업한다. 법원-검찰의 인맥을 장악하고 있는 그들이 확실한 승소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대형 법무법인은 판-검사만 영입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부처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감사원, 국세청, 경찰청,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책부처와 권력기관의 고위직 출신들도 대거 영입한다. 그 이유는 관청민원을 해결하고 나가서 정책변경-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이다. 한마디로 연고주의로 형성된 관청의 인맥을 상대로 로비스트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기업, 단체 등 수혜세력은 막대한 이익을 챙길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무자격-무능력' 낙하산 부대
'낙하산' 부대는 행정-사법관료 출신의 '전관예우 낙하산'과 비관료 출신의 '대선캠프 낙하산'으로 나눠진다.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 교수, 언론인, 정치인 출신 등으로 방대한 규모의 대선캠프가 꾸려진다. 방계조직까지 합치면 적게는 수천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으로 추산된다. 또 천명 규모의 정책지원교수단이니 뭐니 하는 조직이 뜬다. 집권에 성공하면 제도를 무시하고 임명직, 추천직, 선출직을 독식한다. 장-차관은 물론이고 기관장, 단체장, 협회장, 재단 이사-이사장, 공기업 감사-사장-회장, 위원-위원장 등등을 싹쓸이하고 사기업, 사립대학 인사에까지 간여하여 '낙하산'을 투하한다. 그 까닭에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 한 자리를 노리는 일단의 무리가 연고주의에 빌붙어 대선캠프로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것이다.
'낙하산' 완장을 찬 인사들은 대개 무자격자-무능력자이다. 이들은 집권기간 5년간 수억대 연봉을 자랑하며 점령군처럼 군림한다. 노조가 결성된 공공기관-공기업의 경우 대부분의 노조가 타성적으로 '낙하산' 반대를 외치다 결국 '낙하산'과 어깨동무하고 동반관계를 유지한다. '낙하산'은 대체로 전문지식-경영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노조와의 마찰로 인해 시끄러워져봤자 손해라고 판단해 노조의 특혜적 요구조건을 들어주고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심각한 문제는 자체에서 성장한 전문인력은 임원으로 진급할 기회가 봉쇄된다는 점이다. 그 까닭에 출신지역-학교를 중심으로 연고를 맺으려고 부단하게 노력한다. 연고체제와 줄이 닿지 않는 인사라면 자동적으로 퇴출된다. 정부조직-기관-단체가 집단부실화된 원인은 바로 이 나라의 지배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연고체제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한 공정사회는 한국사회의 모순점을 제대로 진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연고주의에 의탁해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시정하려는 어떤 노력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적 설득력을 잃고 냉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 임기가 3년을 넘어서자 벌써 차기 대권을 겨냥하는 연고주의에 의한 세력규합이 감지되고 있다. 연고체제에 의한 소득의 양극화, 정의의 실종이 계층간-지역간의 갈등양상을 넘어 대립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연고주의를 혁명적으로 타파할 인물이 차기 대통령으로 태어나야 이 나라의 미래에 희망을 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공허한 소리로 들릴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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