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민주당 정권 출범 이래, 한일 양국에는 고이즈미 정권 이래 악화되어 왔던 한일관계가 점차 개선의 방향으로 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언설이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게 됐다. 물론 이 같은 '예상'은 지난 10년 동안 한일 간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이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사태에까지 이르렀다는 공통된 상황인식이나, 혹은 한국과 일본에서 연이어 새롭게 등장한 정권이 이념적 성격과는 관계없이 한일관계를 다른 정권보다 중시하고 있다는 상황분석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새롭게 출범한 민주당 정권이 역사인식과 관련되어 있는 한일관계의 '쟁점'에 대해 고이즈미 정권 이래 반복되어 온 외교적 '무리수'를 두지 않는 이상, 한일관계가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악화될 여지는 상대적으로 적다. 사실 고이즈미 정권 이래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것은 주로 일본 측의 태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소위 '망언' 등이 등장하고, 한국의 대일 여론이 악화됨에 따라 초기의 대일 유화정책을 포기하는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일본은 특히 고이즈미 정권 등장 이후, 야스쿠니신사 공식 참배, 교과서문제 등의 역사인식 문제를 영토 문제, 자위대의 외연 확대 문제, 헌법 개정 문제 등과 결부시켜 왔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일본의 헌법 개정 등을 비롯한 우경화 노선이 반드시 역사인식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일본 정부의 일각에서는 1990년대 후반까지는 역사인식과 우경화 프로젝트를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분리방식이란 간단하게 말하자면, '과거에는 잘못했다. 그런데 헌법은 개정해서 자위대를 군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일동맹의 강화라는 조건하에서 '일본의 군사적∙외교적 재량권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며, 이는 민주당 등의 야당의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 이래의 '장기적 우경화 프로젝트'는 민주당 정권으로 막을 내린 셈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국내 여론 결집용으로 역사인식 문제를 '이용'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진 셈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일 간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쟁점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새롭게 집권한 민주당이 과거사 관련 언급을 회피하여 한일 간의 쟁점을 만들지 않는다고 해서 역사인식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이즈미 정권 이래 한일 간에 쟁점으로 등장한 사항들에 대해 민주당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려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해결방향이 정치 역학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실현 과정에서 왜곡의 가능성은 없는가를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한일 간의 대표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문제, 독도 문제와 이와 관련된 헌법 문제에 대해 민주당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 등의 문제를 그 한계와 도달점을 포함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여기서 분석 대상으로 삼는 자료는 다음 두 가지이다. 2009년 7월 23일에 발표된 『민주당 정책집 INDEX 2009』(이하 인덱스)와 2009년 7월 27일에 발표된 『민주당 정권정책 Manifesto』(이하 매니페스토)이다. 전자가 민주당의 정책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고 한다면, 후자는 전자의 요약판이며 대중적인 선전 공약집이다. 따라서 전자에서는 언급한 것이 후자에서는 축소한 것도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 민주당의 정책과 역사인식
『인덱스』나 『매니페스토』어디에도 역사인식과 관련된 쟁점을 별도의 항목으로 두고 있지 않다. 이는 이번 선거에서 역사인식 문제를 쟁점으로 삼고 싶어 하지 않았던 민주당의 선거 전략과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이번 선거는 자민당이 외교 안보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전면화시킨 데 반해 민주당은 외교 안보 문제를 피하고 국내의 경제 문제, 그 중에서도 양극화 문제를 쟁점화 시켰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외교 안보 문제에서의 자민당과의 차이점이 선거 쟁점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이는 외교 안보 노선에서 자민당과의 차별성이 커서라기보다는 외교 안보노선의 차이점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유권자에게 뚜렷한 선거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항목에 녹아들어가 있는 역사인식 문제를 픽업해서 이를 전체적으로 평가∙분석할 수밖에 없다. 『인덱스』를 보면, '한일관계의 신뢰관계 강화'라는 소항목을 두고 이를 동아시아 및 세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일관계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민주당은 "한일 FTA와 다케시마(竹島) 문제 해결 등"을 해결하여야 한다고 쓰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일관계의 쟁점으로 역사인식 문제를 중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케시마 문제"는 역사인식 문제의 쟁점으로서가 아니라 영토 문제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인덱스』에서 "영토 문제의 조기해결"이라는 소항목을 별도로 두고 "우리나라가 영토주권을 가지는 북방영토, 다케시마 문제의 조속하고도 평화로운 해결을 향해 끈질기고 강하게 대화를 거듭한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명확하다.
이 같은 영토 문제에 대한 인식은 자민당이 공약집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불법적으로 점거된 채인 북방 영토, 다케시마의 평화적 해결을 향해 앞으로도 강한 의지를 가지고 끈질기게 강한 교섭을 행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과 비교해 표현상의 강온의 차이는 있지만 커다란 차이가 없다.
사실 독도 문제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 역사인식 문제로 인지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독도 문제를 '식민지주의의 입구'로 인식하는 시각이 많은 반면, 일본에서는 '양국 내셔널리즘의 충돌'로 이해하는 시각이 우세한 데, 이런 시각차를 민주당의 공약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매니페스토』에는 '7. 외교'분야에서 "중국,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국과의 관계에서 신뢰구축에 전력을 다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그 하단에 경제협력 등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일관계에서 역사인식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교과서, 야스쿠니, 헌법, 독도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의사는 공약집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야스쿠니 문제에서도 발견된다. 『매니페스토』에는 전혀 언급이 없고 『인덱스』에 "야스쿠니 문제/국립추도시설의 건립"이라는 항목을 두고 있다. 대중적 파급력이 큰 『매니페스토』에서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것은 야스쿠니 문제가 선거의 쟁점으로 등장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항목에서 민주당은 야스쿠니를 "특정의 종교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 야스쿠니 문제를 A급 전범 합사 문제로 자리매김하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립추도시설의 설치를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헌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는 『인덱스』와 『매니페스토』모두에서 "국민의 자유 활달한 헌법논의를"이라는 소제목 하에 '논헌(論憲)'이라는 민주당의 기본 방침을 계승한다. "현행 헌법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이를 보충하고 고칠 점이 있으면 이를 고치는 것을 국민 모두와 함께 자유 활달하게 헌법 논의를 각지에서 행하고 국민 여러분이 개정을 요구하거나 국회 내에서 광범위한 합의 형성이 가능한 사항이 있는지를 신중하고 적극적으로 검토해 간다"고 되어 있다. 구 사회당의 '호헌'과는 다르게 헌법 개정의 여지를 남겨두면서도 상대적으로 헌법 개정에 적극적이었던 자민당과 일선을 긋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과 일본 일각에서 대두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기대'와는 다르게 민주당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는 매우 한정적이다. 물론 이 같은 공약집 이외에 하토야마 총리 등 민주당의 고위간부들이 공사석에서 쏟아내고 있는 '해결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매우 다양한 정치적 이념체의 모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약집에서 담아내고 있는 '약속'이 민주당의 최대공약수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이 이상의 실질적인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따라서 공약집의 '한계'는 그대로 민주당 정권의 '한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민주당의 교과서 정책
검정제도란 좁게는 신청교과서에 대한 문부과학성의 '개입'을 뜻한다. 하지만 교과서 검정제도를 광의로 해석하면 검정(적합여부에 대한 문과성의 개입)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에 개입하는 학습지도요령제도, 그리고 검정 교과서에 대한 채택권 등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어떤 내용의 교과서를 교과서로 인정할 것인가(검정기준에 따른 문과성의 개입), 교과서를 통해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학습지도요령), 그리고 어떤 교과서를 채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먼저 문과성의 개입을 뜻하는 적합 여부에 대한 문과성의 개입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당은 전혀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없다. 다시 말하면 위에서 말한 『인덱스』와 『매니페스토』모두에서 교과서 검정제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과거에 민주당은 검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1996년 총선거의 공약집 『미래와의 계약』에서 민주당의 중점 공약으로 "교과서 검정의 폐지"를 내걸었다.
게다가 교과서 문제 검토 워킹 팀이 2001년 4월 19일 발표한 '교과서 문제에 관한 중간보고'에서도 민주당은 "교과서 검정을 폐지하고 자유발행제"로 이행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검정제도 폐지라는 민주당의 기본 입장이 왜 '철회'됐는가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이 대신에 민주당은 공약에서 학습지도요령 문제와 교과서 채택 문제의 '개선'을 내걸고 있다. 예를 들면 채택권 문제에 대해서 "보호자 및 교원의 의견이 확실하게 반영되도록 현행 광역채택을 시정촌단위로, 나아가서는 학교(학교 이사회) 단위로 채택 단위를 이행하는 것"으로 하고, 학습지도요령은 "학교 재량을 존중해서 개별 사항에 입각해 현장 판단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현장'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학습지도요령'을 통해 일선 교사들의 교육 내용에까지 개입∙통제하던 과거와는 확실하게 달라진다. 또 채택단위의 광역화를 지양하고 소단위화하여 현장의 의견을 적극 반영함으로써 교과서 채택에 대한 정치적 파급력을 줄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자유발행제이든, 혹은 채택권의 소단위이든, 학습지도요령에 '현장'의 소리를 반영하는 것이든 민주당 공약은 소위 '시장'에 맡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장'에 맡긴다는 것이 자율성과 분권화라는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거꾸로 이미 '시장'에 진출해 일정 세력을 얻고 있는 지유샤나 후소샤 교과서에 대한 '선의 개입'을 포기하고 이들 기득권을 추인하는 셈이 된다.
게다가 현장의 소리가 반드시 후소샤나 지유샤의 소리와 대립되어 있다는 보장도 없다. 더구나 지난 10여 년 동안의 우경화 바람이 반드시 자민당 일각의 일방적인 정치적 '그림 그리기'가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움직임'에 기반하고 있는 현실이 존재하는 이상, '시장'에 맡긴다고 해서 교과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과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민주당 정권의 '책임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는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 한국의 대응을 둘러싸고
<그림3>은 네 가지 현안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도와 일본과의 연계 가능성을 개념화시킨 것이다.
교과서 문제는 한국과의 관련이 깊고 한일 양국의 관심도도 강하며, 따라서 한일 시민사회가 '보편적 원리'에 서서 '국경'을 넘어서 공동 대응하기에 적절한 소재이지만, 독도 문제는 일본 사회와의 연계가 아주 어려운 소재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헌법 개정 문제는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일본과의 연계 가능성이 아주 큰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한국 사회의 관심도는 아주 낮다. 물론 이 네 가지 문제는 기본적으로 식민지주의의 미청산과 왜곡된 냉전구조의 산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각각의 문제들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원리가 있어 대응방식은 아주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 측은 1952년에 한국 측이 '군사점령'한 데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원상복구'시켜야 한다고 한다. 결국 1972년의 '오키나와 반환'이나, 혹은 러시아가 현재도 '점유'하고 있는 쿠릴열도 네 개 섬과 같이 일본에게 독도는 '잃어버린 영토'인 셈이다.
이와 같은 입장이 가장 원론적이고 강경한 입장이라 한다면, 이보다는 온건한 입장도 있는 데,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 한일이 '공동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공동 관리론'은 일본의 중도세력 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 공산당도 이를 지지한다.
전자의 강경한 입장은 결국은 독도 문제를 방치해 온 전후 일본 정권의 '눈치 외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력 증강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으로, 결국에는 헌법 개정의 당위성으로 이어진다. 후자인 '공동 관리론'은 독도 문제를 기본적으로 양국 내셔널리즘의 충돌로만 본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한국 쪽이 '독도 문제'를 영토 및 주권 문제인 동시에 식민지주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대한 무지가 공통적으로 보인다.
결국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 한국정부의 '우군'은 없는 셈이다. 따라서 연계도와 관심도의 격차는 결국 민주당의 정책에도 그 대로 투영된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강경한 입장을,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민간 중시의 입장(시장에 맡긴다),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서는(정교분리의 입장), 헌법 문제에 대해서는 내정 문제임과 동시에 소극적 개헌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민주당은 자민당 이상으로 각각의 쟁점에 대해서 분리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측의 대응 방식도 명확해진다. '한일 친선 교류'(경제, 안보)라는 총론적인 입장에 각각의 현안을 '매몰'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총론과 각론을 분리하고 각론은 각론대로 총론은 총론대로 분리해서 대응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 문제에 대한 끈질긴 교섭과 대응이 총론의 '의지'를 훼손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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