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이지아' 특종이 터지던 날인 21일, 공교롭게도 BBK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김경준 씨를 회유 협박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시사인>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패했다. 더불어 이지아의 법정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이 이명박 정부와 관련된 소송을 많이 맡아왔다는 것 등이 이러한 주장의 근거다.
말그대로 '음모론'인 이들 주장을 두고 타당성을 논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부에서는 '이 음모론을 퍼트리는 특정한 정치적 세력이 있다'며 음모론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론의 보도 태도가 이러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21일 불거진 '서태지-이지아 소송'과 22일 폭로된 엄기영 강원도지사 후보 측의 불법 전화 홍보 파문을 전하는 방송 보도다. KBS와 MBC는 서태지-이지아 소송 사건은 매우 심층적이고 끈질기게 보도했고, 엄기영 후보 불법 선거 논란은 다른 사건들과 얽어 뭉뚱그려 보도했다.
"선거판 혼탁"으로만 보도하는 MBC
두 명의 전직 사장이 강원도지사 후보로 나선 MBC. <뉴스데스크>는 엄기영 후보 측의 전화 홍보 논란이 불거진 22일, '선거전 과열 혼탁'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22일 강원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엄 후보 측 선거 운동원들을 경찰에 고발했고 24일에는 경찰이 이들 운동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매일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MBC는 매번 한나라당의 '맞대응' 주장과 엮어 나열식으로만 보도하고 있다.
24일 저녁 방송을 보면 엄기영 후보 캠프의 선거운동원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보도하고 연이어 한나라당이 제기한 최문순 후보 측의 '문자메시지 허위 사실 보도 주장을 보도한 뒤 경남 김해에서 제기된 특임장관실의 선거개입 의혹'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는 선거판 전체가 불법으로 혼탁해져 있고, 엄기영 후보 측의 '불법 전화 홍보' 논란은 혼탁 선거의 일부분인 것으로 축소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실제로 MBC 경우, 민주당이 불법 전화홍보가 이뤄지던 펜션을 급습할 때 MBC 기자가 포함되어 있어 일종의 '특종'을 한데다, 강릉MBC 등 강원도 지역 MBC에서는 이 사건을 비교적 심도깊게 보도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중앙 MBC의 보도 태도는 더욱 아쉬운 점이 많다.
ⓒMBC |
KBS <뉴스9>도 크게 다르지 않다. KBS는 22일 "재보선 강원지역 불법 선거 운동 의혹 제기"라는 제목으로 "강원지역에서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 제기되는 등 과열 혼탁 양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며 뭉뚱그려 보도했다.
24일에는 경찰이 엄 후보측 선거운동원 2명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민주당 최문순 후보 측 관계자도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12번째 리포트에서 단신으로 처리했다.
그나마 SBS가 이 논란을 비교적 비중있게 보도했다. SBS는 논란이 불거진 22일 현장 화면과 함께 "'불법 전화 운동원' 무더기 적발" 보도에서 "4.27 재보선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를 지지하는 불법 전화운동원이 무더기로 적발됐다"고 보도해 MBC, KBS와 비교됐다.
'서태지-이지아'에 대해선 심층 보도 쏟아내는 MBC-KBS
반면 '서태지-이지아' 보도에서는 이들 방송사의 심층 취재력와 간명한 정리, 끈질긴 취재열기를 볼 수 있다.
이 논란이 터진 직후 MBC는 21일 "서태지-이지아 이혼…재산분할 소송 중", 22일 "서태지의 말말말…여러차례 '결혼 안한다'", "서태지 '거짓말 논란'…사생활 보호 공방", 23일 "서태지-이지아, 왜 소송?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 24일 "이지아, 5년 전 재산권 포기…재판 영향은?', "재산분할·위자료 55억 소송, 왜?" 등 여러 건의 심층 분석 보도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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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도 21일 "서태지 이지아 이혼 50억대 위자료 소송", 22일 "서태지-이지아 '55억 소송' 쟁점은?", "연예인 사생활 공개 찬반 논란", 23일 "서태지 결혼 보도, 15년 만에 '특종' 확인", 24일 "도 넘은 이지아 '신상 털기'" 등 이 사건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보도를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SBS도 21일부터 "서태지-이지아 55억원 '비밀소송'…팬들 '패닉", "이지아 '서태지와 19살 결혼…자식은 없다'", "서태지-이지아 이혼시점 언제?…판결기록 발견", "소문 무성한 '15년간의 비밀'…철저하게 감췄다", "서태지 재산 '최소 4~5백억'…소송 어떻게 전개?" 등 다양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내용과 형식이 뒤바뀐 방송 보도들, 왜?
누리꾼들의 지적대로 "9시 뉴스가 '연예가 중계'도 아닌데" 불법 선거 논란은 단신으로 처리하고 연예인들의 이혼 후 재산분할 소송은 심층 분석 기사로 끈질기게 보도할 이유가 있을까? 한국 최장수 앵커로서 '깨끗한 이미지'와 높은 인지도를 내세웠던 엄기영 후보 측의 불법 선거운동 논란에 국민들의 관심은 결코 작지 않다.
지금의 방송사들이 보이는 행태는 KBS나 MBC에서 일었던 '낙하산 사장' 반대 운동이 우려하던 바로 그것이다. 이들 방송사들이 정치와 권력을 다루는 어려운 보도가 아닌 일개 연예인을 겨냥하는 쉬운 보도를 하는 쪽으로 점점 더 길들여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뭔가 있다'는 음모론의 뿌리는 결국 언론 그자체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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