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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강에서 우리는 작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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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강에서 우리는 작별한다"

[이 많은 작가들은 왜 강으로 갔을까?]<7>이영주 시인

안쪽에 무엇이 있든, 사람은 때로 울고 싶어진다. 행복하다 스스로에게 되뇌며 일상을 안정적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각자의 사연에 따라 다르리라.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누군가는 고통 때문에, 누군가는 텅 빈 외로움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실 사랑과 고통과 외로움은 같은 말이다. 그것이 몸속에서 화학 작용을 일으켜 밖으로 표출되는 가장 일반적인 통로는 울음일 것이다. 견딜 수 없어서 비명을 지를 때도, 입술을 꽉 물고 참아낼 때도 그것 또한 울음과 같다. 모두 울음의 다른 이름이고, 그것은 우리 삶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다. 넘치는 자본을 가지고 떵떵거리고 사는 자에게도, 하루하루 겨우 연명하는 가난한 자에게도 슬픔은 찾아온다. 모든 것이 주어진다고 늘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럴 때면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어디에 가서 목 놓아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고요히 침잠하고 싶을 때…… 그럴 때, 어디로 가야 할까.

외할머니 댁은 시골 도로변에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 손을 잡고 도로에 바로 인접해 있는 작고, 귀엽고, 아늑한 외할머니 댁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나는 아무것도 나를 해치지 못하는 천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한밤중이면 자동차들은 굉음을 내며 간헐적으로 외할머니 집 주변을 맴돌았다. 도시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하고는 질이 달랐다고 할까. 한적한 곳에서 미친 듯이 질주하는 자동차 굉음은 집 전체를 흔들고 잠이 들려다 실패하는 내 온몸을 울렸다. 시골집에 와서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 같은 것에 홀리는 것이 아마도 정해진 추억의 에피소드라면, 나의 경험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일 수밖에 없다.

새벽까지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는 나를 꼭 안아주던 외할머니. 그렇게 너무 일찍 일어난 나의 손을 잡고 외할머니는 도로를 건너 강둑으로 내려갔다. 한참 동안 강둑에 앉아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외할머니는 내 손을 잡았다가 내 머리를 쓸어주다가 신기하게 생긴 풀을 꺾어 내 손에 쥐어주면서 도란도란 그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강물과 강물 주변에서 함께 어우러지던 나무와 풀들, 풀 속에 살던 곤충들, 물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들과 함께 아침 해를 맞았다.

그때 어린 내 마음 속으로 천천히 흘러드는 서늘하게 일렁이던 물비늘들. 아침 해를 맞아 조금씩 부풀어오르던 착한 물방울들.

ⓒ김흥구

무릎을 모아 가슴께에 끌어안고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푸른 나무와 풀잎들을 지나 고요히 흘러가는 물의 끝을 바라보면서, 나는 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린 나에게 어떤 슬픔이 있었던 것일까? 이제 와 그때를 떠올리면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저, 뭔지 모르지만, 맑고 투명한 강물의 흐름이 주는 알 수 없는 포근함 때문에, 그 청명한 물소리 때문에, 끝을 알 수 없는 물의 신비로운 질서 때문에, 아마도 그냥 울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 이후, 내 방의 책상 밑에서, 도시 어느 골목에서 혹은 이국의 여행지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에는 언제나 강의 얼굴을 생각하게 된다. 내 모든 상처를 감싸 안아 줄 것 같은 강물의 품을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새나 강아지, 염소 혹은 또 다른 연약한 동물이 와서 남몰래 울고 갔을 것 같은, 강물 속의 수많은 눈물을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서든 내가 흘린 눈물이, 배꼽 근처에서부터 뜨겁게 올라오는 울음이, 그 강물로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을.

아마도 당신, 당신의 강물 또한 내 강물과 만나서 함께 흐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우주의 만남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제 그러한 강물의 바닥을 파헤치고, 주변에 시멘트를 바르고, 철근을 박고, 온갖 문명의 개칠을 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만남은 오욕에 물들게 되었다. 이제 당신의 은밀한 눈물 또한 배를 드러낸 채 죽어간 물고기처럼 처참하게 죽어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권력이 빼앗아간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마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당신과 나는 진정으로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강을 뒤집어엎고 파괴하는 이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미안하지만, 당신, 안녕. 이렇게 미리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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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은 오늘 불면이다>(강은교 외 28명 지음, 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아카이브 펴냄). ⓒ아카이브

그들은 왜 강으로 갔을까. 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파괴'의 현장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했을까.

이제는 막바지로 치달은 4대강 사업에 관한 세 권의 책이 출간됐다. 고은 외 99명이 쓴 시집 <꿈속에서도 물소리 아프지 마라>(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이하 아카이브 펴냄), 강은교 외 28명의 산문집 <강은 오늘 불면이다>(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성남훈 외 9명이 참여한 <사진, 강을 기억하다>(이미지프레시안 기획)가 그것들이다.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문인들과 사진가들이 기록한 '강의 오늘'을 <프레시안> 지면에 소개한다. 오늘도 포클레인의 삽날에 신음하는 '불면의 강'의 이야기는 한 달여 동안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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