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경보 발령 10분 만에 피할 겨를도 없이 파도에 사람들과 집이 쓸려갔다. 지진으로 도로와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건축자재에 깔린다. 목숨을 잃거나 몸 누일 곳을 잃은 수많은 이재민들의 모습. 그리고 이어진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 폭발로 수많은 사람들이 20km 이상 대피했다는 소식들. 지난 금요일부터 방송을 통해 우리가 들은,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겪은 참담한 삶의 모습이다. 일본공영방송(NHK)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최대 4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자연재해를 대하는 최근의 모습들
자연재해 예방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사회가 기울여야하는 몫이다. 하지만 아무리 예방을 하더라도, 예방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인간의 행위 밖의 영역이 존재하는 게 자연이다. 이번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참사가 바로 그러하다. 일본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있기에 튼튼한 건축물을 짓고, 높은 강도의 지진에도 안전할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드는 등의 일을 줄곧 해왔다. 하지만 거대한 지진과 해일의 힘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이후 더욱 안전하고 자연재해를 이겨낼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드는 것은 복구과정의 몫일 게다. 지금은 자연재해 이후의 일본거주민에 대한 구호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고 해야 될 영역이다. 모든 구호활동이 그렇듯 인도주의적 원칙과 자국민의 피해복구가 자국민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한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의 몇몇 언론과 여당정치권 인사들은 '주판알만 튕기는' 식으로 자연재해와 구조활동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모 방송에서는 "한류에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했고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초기에 지원해야 고마운지를 안다며 "한국 마크가 들어간 생수를 지원하자"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속물적인지, 속물화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여러 나라의 경제계에서 대지진이 일본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있다. 일본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GDP가 6% 가량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닥칠 경제적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명을 잃은 고인들과 유족들, 재난을 당한 사람들 앞에서 경제적 손익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자본주의의 가치체계의 비인간성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먼저 충분히 애도하고 공감하며 빠르게 구호와 원조활동을 벌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경제적 손익계산을 먼저 하는 모습에서 우리사회에서 사라진 공감의 능력이 아쉽다.
구호활동에서 지켜져야 할 인권적인 접근
자연재해를 당한 사람들은 가족과 친지, 지인이 죽거나 실종되는 것을 목도하여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을 뿐 아니라, 전기와 수도공급이 중단되고 대중교통마저 이용할 수 없어 하루 한 끼를 먹고 대피소에서 겨우 생활하는 등 식량에 대한 권리, 건강에 대한 권리, 안전에 대한 권리 등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재해를 어떤 원칙으로 극복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재해에 대한 구호활동은 내용과 방식 모두 인권적이어야 할 것이다. 먹을 것과 재해복구물품을 어떻게 어떠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인권적 접근이 필요하다. 모든 권리보장에서 그러하듯이 약자에 대한 우선적 보호, 성인지적 관점, 당사자의 참여와 수용성(당사자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과 내용)이 있어야 하며 비차별적이어야 한다. 종교적 이유로 먹지 않는 식량을 원조한다던가, 특정 종교를 강요하며 원조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얼마 전 조용기 목사의, 일본은 우상숭배가 많아 지진이 났다는 식의 발언은 인권적인 구호활동에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하 사회권 규약)이나 정치적·시민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하 자유권 규약) 등 국제인권규약에는 이러한 원칙하에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이재민의 식량에 대한 권리보장을 위한 노력은 단지 일본정부만의 의무는 아니다. 재난구호 및 인도적 원조를 제공하기 위해 협력할, 공동의 그리고 개별적인 책임을 진다. 각국은 이 사업을 위하여 그 능력에 따라 기여하여야 하며, 식량원조에 대한 우선권은 가장 취약한 주민에게 주어져야 한다. 국제식량거래 또는 원조프로그램에 포함되는 생산품은 안전하여야 하며 수혜국 국민에게 문화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유엔 사회권위원회 식량권 논평 38).
위험을 알 권리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의 참사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의 폭발로 이어졌다. 제1원전의 1호기와 3호기가 폭발했고, 2호기도 14일 밤 연료봉이 한때 완전히 노출됐으며, 폭발음과 함께 격납용기가 손상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4호기는 수소폭발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사실 폭발인지, 수소폭발인지, 아니면 외벽손상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원전 손상과 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이다. 방사능 유출로 인한 피폭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도쿄 인근 지역인 사이타마에서는 방사선 수치가 정상치의 40배에 달하는 것으로 측정됐고 가나가와 현에서도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방사선 수치가 정상 대비 9배에 달하는 수치로 나타났다고 한다. 방사능유출 피해 방지 가이드라인에 따라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원전 반경 20㎞이내 거주 주민들의 옥내 대피를 당부했다고 한다.
방사능피해는 당장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장기간 나타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으며, 주변국가로까지 피해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경험이 말해준다. 당시 유출된 방사능으로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이 200여 명이지만 실제 6년 뒤 7000여 명이 핵 오염 피해를 입었고 지면의 생물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 등 주변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도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유출과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발표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정부도 '우리나라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니 안전하다, 편서풍 때문에 핵물질이 날아 올 가능성이 없다' 등의 발표만 하고 있다. 위험을 과장해서도 안 되겠지만 위험을 축소 보도해서도 안 된다. 사실을 알아야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원자력발전소 폭발과 관련한 사실에 대한 정보가 차단된 것은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권리, 건강에 대한 권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식적인 피해복구만이 아니라 예방조치를 위해서도 정보가 제대로 알려져야 한다. 대부분의 권리영역에 있어 정보접근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과 관련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나 정책, 지식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있고 접근할 수 있어야 권리 향유를 주체적으로 할 수 있으며, 투명하고 민주적 정책수립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일본이나 한국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현 상황과 폭발이나 연료봉 노출로 인한 방사능 유출 정도, 방사능 오염을 입었을 때 생기는 손상과 질환뿐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들, 지역 등에 대한 정보도 국가는 제공해야 한다. 국가와 자본이 안전을 관리하고 위험을 통제의 수단으로 썼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안전을 에너지산업시장의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이용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수십억을 들인 덕에 원자력발전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주입받고 산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 |
'깨끗한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줄 것이라는 홍보가 넘쳐나는 사회가 한국이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수십억을 들인 덕에 원자력발전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주입받고 산다. 그래서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에 대한 친화력이 높고 원자력 발전소도 많다. 한국만큼 원자력 발전소가 많은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원전 폭발을 보면서도 한국정부는 해외로 원전을 수출하겠다고 자만하고, 14일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브라카에서 열린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에 참석하는 용맹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자신감의 이면에는 최근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에너지대책으로 원자력발전이 대안인 양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에 비해 온실상승효과는 덜 일으킬 테니 지구온난화에는 나은 에너지가 아니겠냐는 논리였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 선진국인 일본에서 벌어진 사고를 보며 우리는 다시 근본으로 되돌아가 사고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 발전은 핵무기(핵폭탄)가 핵폭발을 일으키는 원리를 그대로 하고 냉각제를 이용해 핵분열(폭발) 과정을 천천히 하게 했을 뿐이다. 이러한 에너지 발생의 작동원리를 본다면 '안전한 핵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언제든 분열과정의 오류나 방사능 유출이 가능하다. 심지어 부안 방사능핵폐기물 처리장 반대 등 핵폐기물 처리과정에서의 방사능 유출도 우리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기억을 떠올려도 된다. 강진에 강하게 설계한 일본 원전조차 상상 못 할 자연재해에 폭발했다는 점은 단지 기술발전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에너지에 대한 권리는 사람이 살면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권리이다. 전자제품 없이 살아갈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에너지에 대한 권리는 필수적 권리이다. 돈이 없어 전기가 끊기고 산간지역이라 에너지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는 등의 일이 없도록 에너지에 대한 권리가 차별 없이 골고루 보장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안전한 에너지'여야 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원자력 발전은 폭발이나 외벽 손상 등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 사고 이후에도 핵페기물로 인한 방사능 유출 위험이 있다. 이번에 폭발되거나 손상으로 쓰지 못하게 된 일본의 3개의 원전은 그자체로 '고준위 핵폐기물'(방사능 농도가 높은 핵폐기물)이다. 원전을 냉각하여 임시 보관한다고 하더라도 지층의 움직임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다. 도쿄전력이 2호기 원자로의 과열을 막기 위해 냉각수로 주입한 바닷물도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가치와 가치의 만남으로서 에너지에 대한 권리
인권의 목록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라기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내용이 구성되는 것이다. 물에 대한 권리, 장애인이동권 등 사회의 변화와 투쟁의 역사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짚어야 하는 점은 '가치'이다. '사람들의 필요'만이 아니라 '더 나은 삶' '좋은 사회, 좋은 자연'이라는 가치가 포함되어야 한다. 단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넘어서 안전한 에너지 생산과 공급을 통한 더 나은 삶, 지속가능한 에너지 생산과 사용을 하는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권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할 때 인권의 가치가 생태의 가치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원자력 발전(핵발전)으로 유출된 방사선 물질은 암과 백혈병을 일으켜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 해를 끼칠 뿐 아니라 사고발생지역은 생명이 모두 사라지거나 기형적으로 자란다. 핵은 인권에 치명적일 뿐 아니라 환경도 무시하는, 무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안전한 에너지에 대한 권리'는 생태의 가치를 내포한다. 안전한 에너지에 대한 요구는 핵에너지에 대한 반대와 재생가능한 대체에너지에 대한 요구로 이어질 것이다. 안전한 에너지에 대한 권리는 친환경사회를 앞당기는 견인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자각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일본지역의 사람과 한국지역의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호활동에서 지켜야 할 인권적 원칙이든 안전한 에너지에 대한 권리이든 '우리'에 포함되어야 하는 존재와 가치를 한정해서는 문제가, 사태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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