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당청갈등을 일단 '완전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6일 당정청 고위관계자 21명과의 오찬회동에서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대원칙을 재확인하며 당의 백가쟁명식 청와대 때리기와 관련해 지도부의 책임을 물었다.
노 대통령은 "우리당은 역사적 정통성과 미래 국민통합의 주역이 되어야 할 정당"이라며 "임기 후에도 백의종군의 마음으로 당과 함께 할 것"이라고 '탈당 불가'를 넘어 자신이 우리당의 일정 지분을 쥔 대주주임을 확인시켰다.
또한 노 대통령은 김근태 당의장을 앞에 두고 "선장이 안 보인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당을 잘 지키고 있으면 (밖에서) 좋은 선장이 탈 수도 있다"고 말해 대권주자 영입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노 "당은 '질서 있게' 의견 전달하라"…김 "실수에 죄송하게 생각"
이날 당정청은 △대통령의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이다 △대통령은 당의 조언과 건의를 경청하되 당은 조언과 건의를 합당한 방식으로 한다 △총리를 포함한 당정청간 고위모임을 마련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회동 직후 이같은 합의 내용을 전한 뒤 특히 '당정청 고위모임'의 성격과 관련해 "당정청 협의체라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고 의견을 질서 있게 전달하기 위한 모임이 정확한 명칭"이라며 "구체적 인사에 관한 권한은 대통령의 것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찬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은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위한 핵심적 권한"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존중할 것을 강한 어조로 요구했다는 것.
이에 대해 김근태 당의장은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며 당도 이견이 없으나 (최근 인사 문제에 대한 당측의 문제 제기는) 5.31선거 패배 이후 민심이 많이 떠나 있기 때문에 이 민심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다만 당의 의견을 전달하고 문제가 공개된 과정에 대해서는 실수가 있었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노 대통령에게 공식석상에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은 "당내에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당 지도부가 조정해줘야 한다"며 김근태 체제의 '지도력 부재'를 책망하며 당에 대한 개입을 강화할 뜻을 내비쳤다.
김근태 앞에 두고 "걱정마라. '밖'에서 좋은 선장 올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또 이 자리에서 자신의 탈당설과 관련해 "절대 탈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뒤 "우리 당은 역사적 정통성과 미래 국민통합의 주역이 되어야 할 정당"이라며 "임기가 끝난 후에도 백의종군의 마음으로 당과 함께 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은 "크고 튼튼한 배를 가지고 선장이 안 보인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자"며 "당을 잘 지키고 있으면 좋은 선장이 탈 수도 있고 당 내외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을 앞에 두고 "선장(대권주자)이 안 보여도 배(당)가 튼튼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발언한 것은 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공개리에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정태호 대변인은 "대통령 자신이 '선장이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는 말"이라며 "우리 당 내에도 여러 인재가 많다는 말씀도 하셨다"고 파문의 확산을 경계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이 배를 떠나서 다른 배를 타게 되면 노선과 정책을 잃어버리게 된다"며 정계개편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문재인의 '문'자도 안 나왔다"
당에서는 김한길 원내대표 정도가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주요한 인사에 대해 당은 의견을 전달하고 대통령은 그 조언을 참고해서 결정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미약하게나마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
초미의 관심사인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과 우리당 우상호 대변인 모두 "오늘은 그런 이야기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당측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춰 신설키로 한 '당정청 고위모임'과 관련해서도 정 대변인은 "그 모임은 구체적 인사를 논의하는 회의체가 아니라 일상적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인사와 정책에 관한 것도 이 모임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말해 뉘앙스의 차이를 보였다.
정 대변인 '현재의 당 지도부가 당내의 다양한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기존의 모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만 답했다.
이날 당 측에서는 "청와대와 당 사이의 소통이 부족하다"며 당 의견이 전달될 통로 확대를 주문했지만 청와대는 이 기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이유를 '중구난방식 의견 전달과 당 지도부의 의견수렴 미흡 탓'으로 돌리며 '청와대 중심'을 확실히 한 것이다.
이날 오찬회동에는 노 대통령과 김 의장, 김 원내대표 등 비대위원, 상임고문 자격으로 천정배 전 법무, 정세균 산자부 장관 및 한명숙 총리, 이병완 비서실장 등 당청정 인사 21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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