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에는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2008년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서 집필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교사들의 강의 지침서인 중학교 사회교과 신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명기해 한국의 반발을 샀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중학교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 독도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북방영토'와 마찬가지의 반열에 오를 수 있고, 한국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해 양국의 대결이 격화될 가능성이 불을 보듯 뻔 하다.
이 와중에 일본 내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중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오키나와 남서방 '센카쿠 열도', 러시아와 분쟁 중인 에토로푸·쿠나시리·시코탄·하보마이섬 등의 홋카이도 북쪽 '북방영토' 등은 물론 독도로 본적지를 옮기는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20일 <산케이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북방영토로 175명, 센카쿠 열도에 20명이 본적을 옮겼으며, 독도에도 69명이 본적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새역모 역사 교과서 반대 운동을 벌이던 한일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다시 교과서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21일에는 일본에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일본에서 수십 년 간 교과서 운동을 벌여 온 타카시마 노부요시 류큐대학 명예교수다. 그는 30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사회과 지리를 가르쳤고, 대학에서는 13년 동안 교육학을 가르쳤다. 말레이 반도를 150여 차례 방문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민 학살을 밝혀내 교과서에 반영시키기도 했다.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독토 영토 수호와 일본 교과서 독도 표기 문제 대응을 위한 토론회' 발제에 앞서 <프레시안>은 타카시마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일본이 여전히 사상적으로 '탈아론(脫亞論)'의 지배를 받아 일본인들이 중국인이나 한국인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평범한 일본인들은 다케시마에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세력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다케시마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 "그릇된 역사 인식이 젊은 세대의 자유로운 교류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역설했다.
특히 "한국에서 독도 문제를 너무 크게 부각시키면 역으로 일본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 역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 대목이나, "중국과 조선이 19세기에 서구 열강에 격렬하게 저항해 일본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 대목이 흥미롭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 인터뷰가 일본에 전해지면 어떤 반응일 나올지. 특히 산케이 신문에 실리면 내가 공격을 받게 될 소재가 된다"고 말했다. 농담이 섞인 말이었지만, 극우 세력에게 협박 전화와 편지를 받는다고 한다. 다음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1시간 가량 가진 타카시마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통역은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아시아역사연대) 허미선 사무국장이 수고해주셨다.
<프레시안>은 이 인터뷰를 필두로 아시아역사연대와 함께 3월부터 일본 우익 교과서 문제에 대한 집중 기획을 내보낸다. 아시아역사연대는 한국과 일본에서 새역모 교과서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여왔고, 그 덕분인지 새역모의 교과서는 2009년 기준으로 학교 채택률이 1.7%에 그치고 있다. <편집자>
▲ 타카시마 노부요시 교수. ⓒ프레시안(선명수) |
프레시안: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타카시마 노부요시: 저는 도쿄에서 고등학교 교사 30년을 했고, 류큐대학 교육학부에서 13년 동안 교편을 잡아왔습니다. 지금은 정년 퇴직을 했습니다. 교편을 잡고 있는 동안 교과서 집필자로 참여했습니다.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관여해왔습니다. 93년에 제가 쓴 원고가 검정 불합격 의견이 나왔습니다. 전 납득할 수 없어서 문부과학성을 상대로 교과서 재판을 시작했습니다. 재판을 했을 때는 처음에 검정관이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1심에서는 이겼는데, 2,3심에는 검정관이 틀렸다는 것을 검정 당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는 죄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재판에서 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오키나와 문제를 비롯해 교과서 문제에 대해 여러 사람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회과 교사로서 일본군이 전쟁 중에 어떤 일을 했을까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조사를 다녔습니다. 말레이 반도에서 주민학살이 일어났는데 그 부분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 현지에 가서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청취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일본군이 말레이 반도에서 주민 학살을 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렇게 조사활동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범한 일본 젊은이들이 말레이 반도에 가서 주민학살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교편을 잡고 있는 동안 중고생,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시아 사람들은 일본 사람보다 낮다는 멸시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중학생 때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脫亞論)'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우리들의 교육에 대해서 마음에 안 들어 했던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교과서가 나오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새역모의 후지오카 노부카츠 같은 사람들이 심하게 교과서를 만들게 된 것에 우리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새역모의 사관은 도둑사관"
ⓒ프레시안(선명수) |
타카시마 노부요시: 말레이 같은 경우 150번 정도 갔습니다. 한국에서 교과서 문제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한국에 오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 비판했기 때문에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한국에 가면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웃음) 그러다 10년 전부터 새역모 문제가 발생해 한국 시민단체와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오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민주화가 대단히 발전했다고 느낍니다. 그 이후 한국에 온 것은 적어도 15번 째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주 바쁠 때는 당일치기로 왔다 가기도 했습니다.
프레시안: 새역모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타카시마 노부요시: 가장 큰 문제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에서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조선은 독립을 유지하고 있을 힘이 없었고,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유지하게 해줬는데 결국 조선이 일본에 민폐를 끼쳤는데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선식민지화를 정당화 한다. 도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 지배를 정당화 하는 '도둑 사관'이다.
"새역모 교과서 채택률은 1.7%"
프레시안: '새역모', '교육 재생 기구'가 올해 4월에 받는 교과서 검정에 독도와 관련된 내용이 기술 될 것이라는데, 구체적 내용은 뭡니까?
타카시마 노부요시: 4월에 검정용 교과서가 공개되기 전에는 실제 어떤 내용일지 모르지만 '내셔널리즘'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내용이 아닐까 예상합니다.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정부의 견해를 강조하는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새역모 교과서의 일본 내 학교 채택 비율은 어떻습니까?
타카시마 노부요시: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낮은 비율이긴 합니다. 2009년 기준으로 1.7% 정도 입니다.
프레시안: 토론회 발제문에 "젊은이들은 우리 어른보다 훨씬 더 솔직하게 국제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최근에는 <소녀시대>와 같은 한국 아이돌 스타들이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고,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한류' 열풍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거 역사에 대한 인식은 어떠합니까?
타카시마 노부요시: 젊은이들에게는 중국이나 한국에 대한 차별 의식은 없습니다. 비슷한 동년배의 아이돌 스타들을 보면 가까운 이웃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에 조선을 식민지 지배했다고 적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사를 할 때 "일본은 조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일본에 훌륭한 문화를 전해준 스승이자 선생님이었고, 19세기 일본이 독립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시아 사람들(중국, 조선)이 서구열강에 저항하고 막아섰기 때문"이라고 학생들에게 설명하면 "와, 우리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순수함을 가진 학생들이기 때문에 2002년 월드컵에서 일본이 16강에서 탈락하고 한국만 올라갔을 때 한국에 가서 응원하는 모습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한국 탤런트를 보기 위해 공항에 나가 환영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국제 교류가 활발해 자기 표현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한국도 고구려 시대와 같이 제국주의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나 소설이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일본도 전후세대가 사회 주력으로 떠올랐는데, 일본의 전후세대에게도 제국주의적 지배에 대한 욕망이나 향수 같은 것이 있다고 보십니까?
타카시마 노부요시: 젊은이들 사이에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제국주의적 역사 지식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베 신조,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현재의 간 나오토 총리 등 최근 총리들은 전후세대인데 침략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느끼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1990년에 싱가폴 리콴유 총리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보수적이어도 전쟁 책임을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 전후세대가 리더로 떠올랐을 때 전쟁 경험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적중했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베 신조가 새역모 최대 지지자라는 것 입니다. 아베 신조가 자민당 간사장 시절, 전국 위원들을 다 모아놓고 새역모를 지지한다고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
ⓒ프레시안(선명수) |
프레시안: 어느 사회나 극우 세력은 존재합니다. 새역모 교과서가 등장한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서 극우 세력은 늘어난 것 같습니까?
타카시마 노부요시: '극우', '우익', '보수 정치 세력'이 같은 행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해 극우 세력은 준 것 같습니다. 야외에서 방송을 하거나 집회를 하는 건 상당히 줄었습니다. 다만 아베 신조를 지지하는 보수 정치 세력이 상당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아베 신조를 지지하는 세력의 중심에는 '신도'가 있습니다. 특히 천황 신도가 중심이 돼 '일본회의'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일본회의가 지지하고 돕는 곳이 일본 교육 재생 기구입니다.
"사회과부도 시마네현 지도에는 다케시마가 없다"
프레시안: 기자가 2007년 일본 도쿄에 출장 갔을 때 한 일본인이 식사 자리에서 "한국은 도쿄 불법점령 하고 있느냐"고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작 독도(다케시마)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일본 대중들 도쿄 문제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타카시마 노부요시: 원래 다케시마에 대해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지금 고등학교 사회과 부도인데, (부도를 펼치며) 시마네현 지도에도 다케시마가 표기돼 있지 않습니다. 1974년 문부성 검정을 통과한 부도인데 센카쿠 열도는 문제가 돼 표기 해놨습니다. 1972년 오키나와가 반환됐기 때문에 센카쿠 문제는 크게 부각됐습니다. 센카쿠는 의식적으로 표기됐고, 실효 지배 하지 않아도 북방 영토는 러시아와 분쟁이 있기 때문에 표기가 돼 있다. 하지만 다케시마는 전체 그림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게 표시돼 있을 뿐입니다. 당시만 해도 다케시마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새 왜 다케시마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지 제가 의문입니다. (배타적 경제수역) 200해리 문제가 나오며 본격화 됐다고 생각하는데 어업 문제 되면서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기본적으로 한일 어선이 모두 거기서 조업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상상하기로는 누군가가 영토분쟁을 일으켜서 내셔널리즘을 확산 시키도록 시마네현을 부추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가장 시끄러운 사람은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입니다. 아베 신조의 선거구는 야마구치 현입니다. 시마네현은 자민당의 표밭입니다. 갑자기 다케시마가 문제가 된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다케시마는 단지 영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냉정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과서에 실린다고 하더라도 학생이나 선생님들이 살짝 다루는 정도로 넘어가기 때문에 인상에 남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살짝 다루고 지나갈 수 있는데 한국에서 굉장히 반발하고 크게 보도되면 역으로 일본에 전해져서 더 큰 반발 일으키지 않을까 합니다. 교과서에 실린다는 것은 학생들이 보는 것이지 집안에 학생이 없는 사람들은 관심도 없습니다. 다른 얘기이긴 한데 교과서 검정 자체를 국가에서 하기 때문에 국가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를 교과서에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교과서를 검증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일본 민주당은 주변 국가들과의 역사 분쟁에서 더 우호적일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 민주당이 결국 집권했지만 별로 변한 게 없다.
타카시마 노부요시: 하토야마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동아시아 공동체 제안도 해서 기대를 가졌는데 결국 실행하지 못 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 총리 자체는 생각보다 빨리 총리가 된 사례입니다. 준비가 부족합니다. 특히 외교 문제는 간 총리의 특기가 아닙니다.
프레시안: 일본 민주당이 역사교과서 문제에 관심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까?
타카시마 노부요시: 최대 이유를 들자면 민주당 자체가 반은 감춰진 자민당이기 때문에 한 가지 의견으로 모아서 전략화 하기 쉽지 않습니다. 외국에서 이런 얘기 하는 것 정말 창피합니다.(웃음)
"19세기 중국, 조선인들이 싸워서 일본이 독립 유지"
프레시안: "중국과 조선인들이 19세기 구미 열강과의 싸움이 결국 일본의 독립을 지켰다"는 주장이 흥미롭습니다.
타카시마 노부요시: 사실은 역사 전공이 아니어서 말씀 드리기 그렇긴 합니다. 진보적인 역사학자들도 일본 내에서 이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학자들도 내심 속으로는 '탈아론'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문부과학 대신을 상대로 재판을 벌일 때도 내 교과서에 탈아론 비판 내용이었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는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역사 학계에서는 1950년대 쯤에는 중국과 조선에 의해 일본이 독립을 지켰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으나 아직까지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 실리지 않고 있습니다. 내심 '탈아론'을 지지하면서 이를 근거로 중국과 한국을 차별적으로 봐도 괜찮지 않느냐는 사람들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히려 새역모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밑받침이 된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는 학자 몇 분은 "일본 1만 엔 짜리에 (탈아론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이 남아 있는 한 일본의 반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 1만 엔 권의 후쿠자와 유키치. |
프레시안: 21세기 들어 중국이 급부상하고 동북아에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여전히 '탈 아시아 전략'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까?
타카시마 노부요시: 지금 일본 사람들은 "중국에 밀려 경제대국 '넘버 3'가 됐다"면서 상당히 분해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탈아론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면 아시아의 한 나라로서 중국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이 올 텐데, 아직까지 분한 마음만 가득차서 미국과 운명 공동체로 가자고 합니다. 아직까지 깨닫지 못 한 상태입니다.
최근 이집트를 비롯해 이슬람 국가들에서 혼돈 사태가 있는데, 한중일 3국이 중재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슬람 사회 혼란이 가중되면 난민이 넘칠 것이고 석유 생산이 중단되면 큰 경제적 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혼란이 발생하면 미국이나 서유럽이 중재를 했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런 혼란에 관여하지 않았던 한중일 같은 경우 중재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 같은 경우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으니 제3자로 적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다시 한 번 임기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한중일이 함께 한다면 세계 속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 사람이 후쿠자와 유키치와 동시대에 살았던 카츠카이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카츠카이슈가 얘기했던 것들이 언젠가는 정답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독도 문제 집착하지 말고, 젊은 세대들 활약할 수 있게 기반 만들어줘야 합니다. 사실 문제의 출발점은 어업권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에 한일 어업 종사자에게 피해 가지 않는 선에서 좋게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프레시안(선명수) |
타카시마 노부요시: 새역모 반대 운동은 2001년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 시민운동입니다. 아직까지는 일본 시민운동의 건전성을 증명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교과서 검정을 정부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집필자들은 정부 견해대로 쓰기 위해 무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부 견해를 따르지 않으면 공무원 사회 먹칠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실제 그렇게 기술돼도 학생들에게 영향력 끼칠까는 의문입니다. (시끄러워져도) 학생들은 "어른들은 다 그래", "어른들 또 그러는구나" 같은 뉘앙스로 바라봅니다.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퍼포먼스를 문부과학성이 나서서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국민들도) 좀 더 큰 틀에서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생각이었습니다. 일본에 전해지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특히 산케이 신문에 실리면 내가 공격을 받게 될 소재가 됩니다. 협박전화 협박편지 자주 옵니다.(웃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2001년 일본에서 새역모 역사 교과서가 등장하자 국내 90여 개 시민사회단체 및 학자·교사 등은 국내외 교과서의 왜곡을 바로잡고, 20세기 침략과 저항의 역사에 대한 아시아 공동의 역사인식을 만든다는 취지로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를 결성했다. 2003년에는 일본은 물론, 한국의 역사교육,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등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역사갈등을 해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단체 명칭을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로 변경했다. 한중일 시민사회단체, 학자 등과의 연대활동을 벌이며 과거사 청산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산하에는 (사)아시아평화와 역사연구소를 두고 있다. 이 단체는 한중일 공동 역사 연구를 통해 근현대사 교육자료인 <미래를 여는 역사> 등을 3국이 함께 펴내기도 했고, 일본에서는 새역모 역사교과서 반대 및 불채택 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누리집(www.ilovehistory.or.kr)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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