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지난 11월 김 구청장을 인터뷰 했었다. 성북구가 서울 22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무상급식 시범실시중이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오세훈, 준비물 없는 학교는 되고 무상급식은 왜 안 되나?") 김 구청장이 3월부터 실시되는 초등학교 1~4학년 전면 무상급식을 앞두고 <작은 민주주의, 친환경 무상급식>(조대엽·김영배·이빈파 공저, 너울북 펴냄)이라는 책을 냈기에 다시 찾아갔다.
▲ 김영배 성북구청장. ⓒ성북구청 |
□ 오세훈과 김영배
무상급식에 관해서는 40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김 구청장은 오세훈 시장의 반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시교육청과 구청 차원에서 주어진 권한 내에서 이미 실시 단계에 접어들었고, '대세'가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은 서울시의 의사결정을 할 뿐입니다. 자치구와 교육청은 법 인격이 다릅니다. 교육청은 시의회에, 구청은 구의회에 예산을 신청해 승인을 받았습니다. 주민투표의 적용 범위는 서울시청 예산에 관한 것이죠. 따라서 주민투표가 성사돼 무상급식 반대 의견이 나오더라도 교육청과 구청이 실시하는 초등학교 1~4학년 무상급식은 그대로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시장이 수백억 원이 드는 주민투표를 고집하는 것은 정치적 입지를 세우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수많은 비용 손실을 낳고 신뢰의 위기를 초래할 뿐입니다."
그래도 오세훈 시장의 여론전에 대한 구민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주민들은 합리적으로 사고합니다. 과잉 복지에 재정위기가 올 수 있다는 오세훈 시장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시고, 학교 시설 개선 주장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렇다고 무상급식을 반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여론은 황희 정승 같아서 어느 한 쪽으로 쏠려 있지는 않습니다. 12월 말에 성북구에서 여론조사 했을 때 학부모 86.4%가 무상급식 전학년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분들이 학교 시설 개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찬반으로만 가르려고 합니다."
오히려 사립학교 교장과 학부모들이 "우리는 왜 무상급식에서 제외됐느냐"고 따지고 있다고 한다.
"성북구에는 사립초등학교가 5곳으로 다른데 비해 좀 많은 편인데, 사립학교에서 불만이 많습니다. 교장단, 학부모 대표 각각 면담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사립학교가 귀족학교인 것도 아니고 교육청 지원도 받는데 무상급식에서 왜 제외했느냐는 겁니다. 대놓고 '내가 당신 당선 시키려고 주변에 선거운동 까지 했는데 이럴 수 있느냐'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립초등학교도 의무교육 대상이기 때문에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입니다. 무상급식을 원하는 여론이 상당함을 알 수 있는 거죠. 가능한 방안을 적극 검토 중입니다."
ⓒ성북구청 |
"우리나라는 두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의해 민주주의 공고화 단계에 와 있다고 봅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리더십의 모습은 '신뢰'입니다. 자기가 한 말은 가능하면 지키고, 잘 못된 건 잘 못 했다고 고백해 평가도 받아야 합니다. 국민들은 신뢰를 파괴하거나 공동체 질서를 흔들려는 시도를 싫어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국민들은 저항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 개헌 논란 등 혼란이 심할 때도 국민들은 싫어했습니다. 제도들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야 합니다. 오 시장이 '틀렸다'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무상급식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인정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기 힘듭니다."
□ 서울과 농촌
김 구청장은 '찬-반'을 넘어 앞으로 어떻게 도시-농촌 간의 유기적인 유통망을 구축할 수 있을지, 어떻게 더 아이들에게 최대한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안전망을 갖출 것인지, 무상급식을 통해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고용을 창출하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커보였다.
"당장 무상급식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고용창출은 없습니다. 서울시가 반대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서울시만 지원하면 초등학교 전학년 무상급식을 할 수 있고, 그러면 권역별 유통센터 같은 것도 만들기 더 쉬웠을 텐데요. 식재료를 전문적으로 검안하고 평가하는 인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아이들에게 먹거리와 관련한 친환경 교육을 하는 사회적 기업도 고려해볼만 할 것입니다."
도시 안에서의 가시적 효과는 적지만 지역 농촌에서의 기대감은 상당하다. 성북구청은 철원 오대쌀, 이천 윤슬미, 예산 미인을 만드는 친환경쌀, 고성 생명환경쌀, 나주 햇살좋은쌀 등을 선정해 MOU를 맺었다.
"서울 초등학생이 65만 명, 중고등학교를 합하면 150만 명입니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시장입니다. 급식시장만 안정적으로 확보되면 생산량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거래를 통한 수익 증대 효과도 있습니다. 농산물 유통이 사실 매점매석 아닙니까. 농민들은 그래도 판로가 불안하니까 유통업자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 급식 시장을 가져보십쇼. 반대로 요즘 각광 받는 생협의 거래 방식처럼 도시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공급처를 가지면 가격 급변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농민들에게 지속가능한 시장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합니다. 농사라는 것이 공산품과 달리 최소 3년은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직거래 품목이 친환경쌀에 그치지만, 다음에는 김치, 그 다음에는 장류 등으로 점점 확대해갈 계획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무상급식은 단순한 아이들 밥 한 끼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성북구청 |
"첫째는 우리가 유통센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죠. 우리가 '갑'인데 여기 저기서 막 들어올 거 아니냐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유통의 문제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했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단 안전성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울시의 반대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키 어려운 점도 있었고. 하루 아침에 하려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두 번째는 아이들 입맛입니다. 아무리 우수한 친환경 재료로 조리를 해도 아이들이 안 먹으면 소용 없잖아요. 시범실시 기간에 아이들이 10점 만점에 8~9점을 주긴 했지만, 영국의 제이미 올리버(로컬푸드 운동가)가 조리해서 줘도 애들이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학부모들은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싫어하면 어쩌나. 음식이라는 것이 민감한 것이라 조심조심 다뤄야 될 부분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화제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난'으로 돌렸다.
"우리 구가 전세금 상승률 1위입니다. 재개발·재건축이 몰려 있는 지역이다보니 전셋값 상승도 가파르고 물건 자체를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단 서울시에는 순환형 재개발을 건의해놨습니다. 용산 참사에서 알 수 있듯이 세입자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줘 저항을 줄여야 개발도 할 수 있습니다. 관내에 임대아파트 1000세대 들어갈 부지를 봐둔 게 있습니다. 자가 주택 소유자들을 위해서는 주택 재정비사업을 활성화 해야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는 신규 주택 수요가 줄어들 뿐 아니라, 자산 증식을 위해 다량으로 주택을 매입하고 그럴 상황이 아니거든요. 이제는 거주자들이 오래 정주할 수 있게 정책을 써야 때입니다. 주거를 개선하려 할 경우 마을 만들기 펀드를 만들고 각자 집을 고치려 할 때 보조금도 주는 거죠. 이 부분은 서울시도 의견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김 구청장의 구상은 무상급식과 마찬가지로 이미 시범사업을 통해 실천 단계에 들어가 있다.
"이걸 성공하기 위해서는 샘플이 필요합니다. '장수마을'이 있는데 거기 구유지가 60% 정도 됩니다. 지역 주민들은 관심이 없는데 구청에서 나가 마을 만들기 할 테니 이거 하자, 저거 하자 그러면 안 됩니다. 지역 주민들의 역량 강화가 우선입니다. 공동체 마을 만들기를 위한 도시 아카데미를 실시했고, TF팀을 만들어 박원순 변호사가 자문위원장을 맡기로 했습니다. 이제 주민들이 지역 발전의 비전을 스스로 짜고 관에서 도와주면서 지역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올해 안에 성과가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성과가 좋으면 다른 동네로 확산되겠죠."
□ 핀란드와 한국
많은 단체장들이 그러하듯 김 구청장도 '생활속으로'라는 현장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민심을 물었다.
"말씀들을 잘 안 하십니다. 믿을 데가 없어 하는 것 같아요. 한 마디로 '흉흉하다'고 하죠. 선거 때도 구석구석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 때 보다 훨씬 더 합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높은 상황에서 구제역에 자연재해까지 겹치고, 전세·물가 상승 등에 의한 생활고, 정치적 신뢰 추락까지 맞물리다보니 이제는 술자리에서도 정부 욕을 잘 안 합니다. 원래 미우면 욕도 하고 그러다가 포기하면 말을 안 하잖아요. 그래도 예전에는 화도 많이 내고 그랬는데, 이제는 화 내는 단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서민들 생활이라도 우선적으로 빨리 안정시켜야죠."
김 구청장은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가 꾸린 '목민관 클럽'의 일원이기도 하다. 지난 해 가을에는 박 이사와 함께 영국, 핀란드 등으로 지방자치 현장 견학을 갔다 오기도 했다. "성북구에 가져다 쓰고 싶은 아이디어를 얻어왔냐"고 묻자 눈이 반짝였다.
"아까 마을 만들기에서 얘기했던 것이 영국에서 배운 주민역량 강화 프로그램입니다. 주민 스스로가 자기 마을의 비전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종암동사무소를 바꿔 평생학습 아카데미로 만들었습니다. 통장들은 통장 아카데미, 정릉시장·삼선시장 등 지역 상인들은 상인 아카데미, 복지 종사자들은 복지 아카데미, 지역 만들기는 도시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민들 스스로 학습하고 토론해 비전을 제시하는 구조를 지방 자치의 모델로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에 대한 확신을 갖고 왔습니다. 영국도 공공부문을 축소하면서 여러 분야를 분사 형태로 떼어주며 사회적 기업으로 활성화를 했더군요. 영국은 현재 일자리의 7%가 사회적 기업들에게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은 예산의 50%를 공공분야에서 지원을 합니다. 우선 시민사회에서 역량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꾸준히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해줄 계획입니다. 돈만 나눠주는 게 아니라 포럼을 만들어 일할 사람들을 우선 모으는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 설명회를 했는데 40명 정도 올 줄 알았더니 80명이 왔습니다. 종암동사무소 공간에 사회적 기업 센터도 만들었습니다. 협회도 준비 중이고 상반기 중에 다 될 것 같습니다.
핀란드에서는 디자인의 기능성을 배워왔습니다. 디자인 하면 앙드레 김이나 멋드러진 건축물을 생각하는데, 핀란드 사람들은 기능성이 없는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하대요. 아이들에게 공예 교육을 하는데 뜨개질 시간이 있다고 하면 아이들이 집 안에 있는 찢어진 바지나 스웨터를 싸들고 옵니다. 그리고 자기가 천을 잘라 직접 기우면서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자기가 디자인한 옷을 만듭니다. 핀란드 1인당 GDP가 4만5000달러라는데 이런 검소함과 실용성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잘 팔리는 이딸라(iittala), 피스카스(fiscars) 같은 세계적 명품 브랜드가 이런 실용적인 디자인에서 출발한 거 아니겠습니까. 핀란드가 디자인 강국이 된 것은 생활 속에서의 창의성을 길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일상 생활에서 자기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게 문예교육 지원센터를 꾸릴 계획입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해 창조성을 키우면서도 실생활의 기능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방과후 교실도 1번으로 우선 지원하겠다고 공표해 둔 상태입니다. 참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연수였습니다."
ⓒ너울북 |
□ 청와대와 성북구청
김 구청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에서 행정관과 비서관으로 4년 8개월을 근무했다. "권력 최고 상층부인 청와대에서 보는 세상과 구청이라는 풀뿌리 기초단체에서 보는 세상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남북정상회담 끝난 뒤 그만 뒀죠. 출마해야 해서. 청와대에서 바라본 세상이랑 구청에서 바라본 세상이 뭐가 다른가. (잠시 생각) 후회죠.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걸. 그런 거죠. 기초생활수급자 선정할 때 선정 기준에 부양의무자 조항이 있잖아요. 그게 그렇게 문제가 있다는 걸 미처 몰랐죠. 구청에 와서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습니다. 어느 할머니가 친손자 둘을 데리고 삽니다. 큰 애가 1년 유급해서 동생이랑 같이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그런데 손자들 아버지는 집을 나가 사라졌더라고요. 그런데 이 할머니가 재혼을 했는데 영감님은 돌아가시고 영감님 아들이 법적 아들로 돼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못 얻는겁니다. 법적 아들은 집도 있고 잘 사는 것 같은데 이 할머니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고 나몰라라 하는거죠. 구청장인 내가 보증을 선다 해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선별적 복지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이걸 청와대 때 알았더라면' 하고 반성합니다. 꼭 잘 못 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 있을 때는 사람들 개인을 보는 게 아니라 전체를 보다보니 통계 숫자만 보게 됐었죠. 구청장이 된 다음에는 '걸어서 성북 한 바퀴' 같은 걸 합니다. 현장을 봅니다. 차를 탈 때와는 풍경이 완전 다릅니다. 새 소리도 들리고, 꽃도 보이고, 쓰레기도 보이고, 깨진 보도블럭도 보이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보입니다.(웃음) 그래서 즐겁기도 하고 보람 있기도 하지만 더 무겁기도 합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밖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농을 던졌다. "일을 너무 많이 벌린 것 아니에요?"
"할만큼 해야죠. 젊은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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