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만을 뽑는 이화학당(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대해 '성차별을 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낸 사건에 대한 공개 변론이 10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엄모 씨 등 청구인 3명은 평등권, 직업의 자유 및 교육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당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남성만 군대에 가는 것이 부당하다는 헌법 소원에 대해 합헌을 선고한 이래 이뤄지는 '역차별'에 대한 공방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실제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인지 이날 유독 학생들의 방청이 많았다.
청구인과 피청구인, 재판관들의 날 선 공방은 3시간 정도 이어졌다. 특히 이화여대 측 대리인으로 나온 법무법인 화우의 이선애 변호사는 규정을 초과한 긴 변론 시간으로 3번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각 항목별로 조목조목 반박하면 "이것은 꼭 말씀드리고 싶다"는 수식어를 반복했다. 그만큼 이대 측은 청구인들의 입장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강했다.
"남성의 평등권 등 침해" vs "차별 아니다"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것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선 로스쿨을 졸업해야 하고 △이대 정원인 100명은 로스쿨 중 세 번째로 많은 수로 총 정원의 5%에 해당하며 △현재 사법시험 여성 합격자 비율이 40%에 육박해 여성을 위한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분명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청구인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한영의 전용우 변호사는 "차별의 결정적 이유는 남성은 1900명을 정원을 상대로, 여성은 2000명을 상대로 경쟁을 하므로 100명의 정원에 대해서 여성에 비해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 없이 차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마지막 변론에서 "일본과 미국도 여성만을 입학시키는 로스쿨은 없다. 미국의 경우에 공무적 성격을 가진 직업에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청구인측 참고인으로 나온 한국외대 로스쿨 전학선 교수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의 사법시험 합격률이나 법학전문대학원의 합격률을 보면 더 이상 적극적 우대조치가 필요 없을 정도의 합격률을 보이고 있어 여성들만을 위한 합격자 정원을 별도로 둔다는 것은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변호사의 자격이 필요하므로 여성만을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자격으로 한정하는 것은 남성들이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화여대 측은 "이대 로스쿨이 아니더라도 동등한 수준과 시설을 갖춘 로스쿨로 진학할 기회가 충분히 보장돼 있다"며 "남성을 차별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또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학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선애 변호사는 "로스쿨 모집요강은 사학으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자율성에 기초한 조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대리인을 통해 "어떤 내용으로 인가를 신청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대학을 설립‧경영하는 사립학교의 자율적인 판단에 속하는 것"이라며 "남성을 차별대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피청구인 측의 참고인인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하열 교수도 "이화학당의 모집요강은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의 교육목적과 여성 지도자 양성이라는 이화학당의 교육이념을 조화적으로 달성하려는 조치일 뿐"이라고 이화여대 측을 옹호했다.
"재학 중 결혼 불가도 바꿨는데 남학생 입학 금지는 못 바꿔?"
재판관들은 여성만 입학하게 한 것이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것인지 이 사례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국가행위로 볼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물었다. 여학교에 남학생을 들어가게 해달라고 한 초유의 재판인 만큼 청구인들의 헌법소원 목적과 몇 가지 애매한 쟁점들에 대해 재판관들의 첨예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조대현 재판관은 청구인 측에 "이대 로스쿨이 여성만 뽑는다고 해서 이대가 아닌 다른 로스쿨을 지원한 남성이 받는 불이익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전 변호사는 "남성은 이대를 제외한 다른 학교에만 지원할 수 있어 총정원이 100명 줄어들어 지원 비율과 합격자 수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답했다.
목영준 재판관은 이대 측에 "(이 변호사가) 이대의 '전통과 역사'를 반복적으로 말하며 남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는데, 이대가 100여 년 가까이 유지했던 '재학 중 결혼불가' 학칙도 바꾸지 않았냐? 여자만 입학할 수 있다는 전통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여대의 전통과 정체성, 그에 맞춘 교육방법은 이대가 꼭 유지하고 싶은 부분으로 국가기관의 강제에 의해 변경된다면 사학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민형기 재판관은 청구인 측에 "남녀평등이 문제 된다면 사학의 자유는 존중받을 수 없는지 아니면 이 두 가지가 서로 조화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전 변호사는 "남성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산점 등을 통해 합격자 비율에서 여성을 우대하는 정도라면 두 가지가 조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종대 재판관이 문제 삼은 '교과부의 입장'도 중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애초에 로스쿨을 인가해 줄 때 이화여대에 여학생만 입학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진 않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법무공단 측 변호사는 "회의 중 '이화여대가 여성학교라는 점을 고려해야 되지 않나'라는 지적이 나온 것은 사실이나 '여성만 입학하는 것을 고려해도 전체 2000명 중 5%이므로 문제 될 것은 없다'라는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청구인 측은 왜 의학전문대학원이나 약학전문대학원에서는 이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데 유독 로스쿨만 문제 삼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청구인 측은 로스쿨의 경우 뽑는 인원이 매우 적고 이후 판사나 검사 등 공직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형평성과 공정성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