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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밴 암소 30마리, 송아지 25마리 살처분 사흘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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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밴 암소 30마리, 송아지 25마리 살처분 사흘만에..."

[인터뷰] 조인선씨 "내 한마디에 59마리 생명을 묻은 거에요"

생때같은 생명 59마리를 땅에 묻었다. 13년 동안 개량하고 정성으로 키운, 그야말로 '자식 같은' 소였다. 소를 묻고 나서 사흘 후 나온 검사 결과는 구제역 '음성'이었다. 소 주인은 "피를 채혈해간 수의사의 변명이 길어지면서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무서운지 몸서리쳤다. '살처분하라'는 그 한 마디가 59마리의 생명을 땅에 묻었다"고 말했다.

시인 조인선(45) 씨. 그는 13년 째 경기도 안성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는 '농민 시인'이다. 지난해 발간한 시집 <노래>(문학과지성사 펴냄)까지 총 6권의 시집을 펴낸 중견 작가지만, 그는 "소를 키우는 일은 시인에게 축복"이라고 말할 정도로 축산업에 애정이 강했다.

구제역 사태는 그런 그의 축사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그의 집을 비껴갔지만, 그의 말처럼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구제역에 걸리지도 않은 한우 59마리를 차가운 땅 속으로 몰아냈다. 경기도 일대에 구제역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14일의 일이었다.

▲ 가축이 있던 자리엔 황량함만이 가득했다. 살처분으로 텅 비어버린 조인선 시인의 축사. ⓒ김흥구

기자가 당시의 상황을 묻자, 시인은 속담으로 답했다. 짧은 몇 개의 단어 속에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영하 10도 안팎의 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26일, 안성시 일죽면 산북리 조 시인의 농가에서 그를 만났다.

소 키우는 '농민 시인'

시인이면서 동시에 축산농민. 그래서인지 그의 시엔 송아지 키우는 일 등 유독 농촌생활과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소소한 생활의 이야기들이 투박한 언어로 표현돼 '날 것' 그대로의 삶을 노래한다.

지난해 가을엔 시집 <노래>를 8년 만에 펴냈다. 1993년 <사랑살이>(덕우출판사 펴냄)로 등단한 이후 벌써 6번째 시집이다. 그에게 '농민 시인'이란 특이한 이력에 대해 물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다 보니 천직이 됐죠. 김수영 시인도 양계업으로 생활하기도 했으니 시가 돈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직업은 별 의미가 없어요. 소 키우는 데는 애정이 절대적인 법인데, 시 쓰기가 도움이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부끄러울 뿐이죠. 그래도 애정없이 소밥을 주면 소가 탈나는 법이니, 생물을 다루는 직업은 애정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 '농민 시인' 조인선 씨. ⓒ김흥구

시인은 1997년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안성으로 귀향했다. 축산업을 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아 암송아지 10마리와 숫송아지 15마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시인 본인도 축산학과를 졸업한 것이 도움이 됐다. 그는 "논 팔아 소 키우면 먹고 살 것 같았지만, 자본이 없으니 소 한 마리 늘리기 여의치 않았다"며 옛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소는 한 마리 한 마리 늘어 59마리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일이 닥쳤다. 바로 구제역이었다.

살처분 사흘 후 구제역 '음성' 판정…"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무서운지"

지난 5일을 기점으로 안성까지 밀고 들어온 구제역은 삽시간에 안성 일대 축산업을 초토화시켰다. 경기도내 최대 축산 단지 중 하나인 이곳에 구제역과 함께 설상가상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발생하면서, 축산 농가들은 비탄에 빠졌다. 구제역 발생 보름 만인 20일 기준으로 시 전체 사육두수의 33%(9만6083두)에 이르는 돼지가, 3%(2483두)의 소가 살처분 됐다.

▲ 구제역으로 인한 긴장감은 거리 곳곳에서 역력했다. 축산 농가 밀집 지역엔 거리에 오고가는 사람이 없었고, 곳곳에 구제역 관련 현수막이 나붙었다. ⓒ김흥구

조 시인의 축사도 구제역 '광풍'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그는 지난 12일 소 한 마리에게서 구제역 의심 증상이 보여 의심 신고를 한 뒤, 이틀 후인 14일 방역 당국의 지시에 따라 키우던 소 전부를 땅에 묻었다.

"어느날 암소 한 마리가 밥을 먹지 않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어요. 그날은 일죽면을 휩쓸던 구제역에 우리 동네의 한 분도 매몰을 끝낸 아침이었죠. 소를 묶어놓고 주둥이를 벌려보니 윗몸이 헐고 혀를 만지니 바닥이 벗겨져 구제역 의심 증상인 것 같았어요.

순간 멍했습니다. 아수라장이던 면사무소에서 간신히 백신을 구해 예방접종을 한 지 6일째 되던 날이었어요. 고민 끝에 주변 한우농장에 피해를 줄까 걱정도 돼서, 면사무소에 의심 신고를 했습니다."


그날 당장 가축위생연구소 남부지소에서 검사를 나왔다. 채혈을 하고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구제역 같다고 했다. 그날 면사무소에 접수된 의심 신고만 13개 농가에 이르렀다. 당시 그에겐 새끼를 밴 암소 30마리와 출하를 앞둔 비육소 4마리, 그리고 5개월에서 10개월 난 송아지 25마리가 있었다.

▲ 조인선 시인(왼쪽)과 그의 부친(오른쪽). 부친 역시 15년 동안 축산업에 종사했었다. ⓒ김흥구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시청 상황실에서 매몰 예정일을 알려주고,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조 시인은 검사 결과만이라도 나오고 매몰하자고 사정했으나, 그러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여느 때처럼 소밥을 주려는데 어머니가 말리셨어요. 배부른 놈이 죽을 때 더 고통스럽다고…. 생각해보니 내 욕심이었죠. 방역 요원들이 작업하기 좋게 정리하고 조용히 방안에 있었습니다. 주사를 놓는 모습은 차마 지켜볼 수 없었어요. 마지막 인사는 한 번 둘러보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매몰 사흘 후, 담당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검사 결과를 물어봤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는 "소 잡고 동네 인심 잃었다"고 말했다.

"살처분 이후, 동네 사람들이 구제역 걸린 집이라고 수군거리는 걸 보고 한편으론 분했습니다. 그래서 소 묻고 사흘이 지나 알아보니 음성이었어요. 억울함보단 누명을 벗은 기분이랄까. 피를 채혈해간 수의사의 변명이 길어지면서,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무서운지 몸서리쳤습니다. 내 한마디가 59마리의 생명을 땅에 묻은 거에요.

한때 주인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산 뿐이었습니다. 소를 포기하니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부끄러웠죠. 이십 년 공부가 소들이 떼죽음 당하는 것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거죠."


▲ 조인선 시인이 같은 날 구제역 의심 신고를 한 14개 농가의 정밀 검사 결과를 보여줬다. 그의 집만 유일하게 음성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소 59마리는 살처분 된 이후의 일이었다. ⓒ김흥구

"정부 방역 대책, 사후 약방문 식이었다"

빈 축사에는 황량함만 가득했다. 소 주인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조인선 시인은 "매몰 이후 밤에 수면제 없이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실 안성에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2년 이 일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지만, 그 때는 신속한 조치로 조 시인의 농가도 살처분을 피해갈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안동발 구제역이 시작되었을 때도, 설마 여기까지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남의 염병이 제 고뿔만도 못한 이라고, 처음엔이곳에서 안동은 지리적으로 멀게만 느껴졌어요. 정부에선 축산 농가 간 접촉을 금지했고, 그 외에 별다른 설명이 없다보니 우선 정보가 부족했어요. 현싯가 보상이란 말만 들릴 정도였으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일죽면에서 구제역이 터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고,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았어요.

어이없는 것은 이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하고 나서야 방역 초소가 세워지고 이동 통제가 시작됐다는 겁니다. 모든 것이 말그대로 사후 약방문 식이었던거죠. 사실 모든 정책적 결정에는 대통령의 의중이 행정을 지배하기 마련인데, 구제역 발생 50여 일이 지나서야 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아직도 축산농가에서는 음모론이 나돌 정도에요. 속병은 고약으로 못 고친다고, 뜻이 모아져야 힘을 모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구제역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공장식 밀집 사육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제는 친환경적인 축산 환경이 도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에게 축산 농가의 입장에서 의견을 물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브랜드는 하나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요. 사실 모든 고기는 거기서 거긴데, 등급이 매겨지고 값이 차이가 나는 건 혓바닥의 감촉 때문이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풀을 먹여 키운 소는 육색이 안좋다 보니, 더 맛있는 고기를 찾는 소비자에 맞춰 풀보다 농후 사료를 먹이고 거세를 하는 거죠. 그런 문제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 59마리의 소가 매몰된 곳. 시가 세운 표지판이 구제역 가축 매몰지임을 말해주고 있다. ⓒ김흥구

다시 입식을 하기 위해선 또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인선 시인은 계속 축산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생을 노래하는 자가 곧 시인"이고, "생은 죽음으로 이어지는데 그게 축복이 되는 것은 자연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고, 내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서울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내면을 갉아 먹는 것이라 느껴지는 한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시로 이야기한다. 인터뷰를 마칠 때 쯤, 그는 지난해 가을 소를 키우던 당시 썼다는 시 한 편을 기자에게 건넸다. 축사 건너편 소들이 묻힌 곳엔 이제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었다.

이슬이 오고
메뚜기가 앉아있고
개구리가 뱀이 아이들이 나왔다
내가 보이고 성난 아버지와 무덤 속 조상들이 보였다
그렇게 막막한 세월이 선명해지자
풀을 베어 소에게 먹였다
그리고 때가 되어
도축장으로 향하는 소의 눈망울에 이슬이 맺혔다
길다란 울음이었다


(조인선,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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