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말처럼 이젠 옆집에 누가 사는지 신경 끄고 사는 게 예의가 되어 버린 사회에서 이런 대화가 가능한 공동체가 있을까? 마포구 성산동의 '성미산 마을'에선 가능하다.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는 곳, 이웃 간에 담장은 있을지언정 마음의 담장은 없는 곳, 바로 '성미산 마을'에선 공동육아를 15년 넘게 실천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10명 중 9명이 도시에 거주하는 현실에서 공동체는 가능한 것일까? 20일 마포구 성산동 시민공간 나루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열린 제1회 '인간도시포럼'은 이런 질문의 답을 성미산 공동체에서 찾으려는 이들을 불러 모았다.
'인간도시컨센서스'와 민주당 김진애 의원실이 주최한 이 포럼의 첫 회 제목은 그래서 '인간도시 만들기, 성미산 공동체에서 배우다!'이다. 김진애 의원은 "정말 이렇게 많은 분이 와 주실 줄 몰랐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목말라 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방증이다"라며 환호했다. 좁은 홀에는 100여 명이 빼곡하게 들어앉았다.
이 자리에는 대학의 교수와 학생, 각 자치단체의 공무원들, 시민단체 활동가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찾아온 이들 등 공동체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이 궁금해하는 성미산 공동체는 과연 어떤 곳일까.
▲ '성미산 마을'의 사례를 통해 '사람 사는 도시'를 만들어 보자는 포럼이 열렸다. ⓒ프레시안(이경희) |
성미산 마을은 애초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는 아니었다. 1994년 이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협심해 공동육아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서울시가 성미산에 배수지를, 땅 소유주인 한양학원 측이 아파트를 세우려 하자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한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계기로 '성미산 마을'이라는 이름도 얻고 공동체도 공고해졌다.
현재는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과 방과후 어린이집이 총 5개, 생활협동조합, 대안학교인 성미산 학교, 반찬가게인 동네부엌, 마을 카페인 작은나무, 소출력공동체라디오인 마포 FM 등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성미산 마을 공동체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1000여 명 정도 된다.
"성미산 마을을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마을 투어가 끝나고 다시 마을극장으로 모인 사람들은 과연 '인간 도시 만들기'가 가능한지에 대해 토론했다. 뜨거운 화두는 아무래도 성미산 마을의 사례가 '보편'이냐 '특수'냐의 문제였다. 과연 성미산 마을 사례를 다른 곳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지, 확장이 가능 한 모델인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김진애 의원도 "오늘 마을을 탐방하면서 이것이 특수한 케이스인지, 보편으로 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조금은 특수한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세대가 가질 수 있는 '육아'라는 끈끈한 계기가 있었고, '성미산 싸움'을 통해 공동체를 결속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청중들 사이에선 이 운동이 '중산층 이상'만 할 수 있는 경제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저소득층은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모여서 회의 한 번 하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을 사업에 공동출자 등 자본이 필요한 일들이 대다수다. 성미산 마을의 어린이집은 한 달에 50만 원 가량한다고 하고 마을 식당은 친환경 재료를 써 음식값이 아무래도 천 원이라도 더 비싸다.
이런 질문에 대해 성미산주민대책위원장인 문치웅 씨는 "지금이야 역사가 오래돼 전문가들도 많이 오고 해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만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초기에 시작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출자금이 필요해 건물 담보로 차입도 하고 해서 우리 동네에 빚이 많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결국 서로가 가진 '끈끈한 신뢰'가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켜올 수 있었던 힘"이라고 강조했다. 신뢰가 바탕이 되니 "오늘은 누구 집 가서 밥 먹어라, 자라" 이런 생활이 가능하고, 이런 가운데 아이도 어른도 행복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믿음을 바탕으로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꿈이다.
그러나 대표적 생협인 '한살림'의 윤형근 상임이사는 "성미산이나 생협이 중산층 운동이라는 건 분명하다. 한계를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하고 보편화할 때도 그게 포인트가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운동이 '육아나 먹을거리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라는 걸 인정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은희 도시연대 사무국장도 "마을 만들기의 한계를 한계로 보지 말고 도약의 기회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을 만들기에서 나타나는 계급 문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고민하고 새로운 전망을 가지고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노동자 마을' 등 다양한 형태의 마을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미산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은 그 형식이 아니라 '가치'"라고 강조했다.
신명호 한국도시연구소 소장도 "성공한 공동체 운동은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는 열정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공사례를 매뉴얼로 만들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고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의 한 어린이집 입구. ⓒ프레시안(이경희) |
이런 한계들을 어렵게 하는 것은 '관'과의 관계이다. 마을 만들기는 때때로 상위법과 충돌하고 재개발의 광풍은 애써 노력해 온 것들을 물거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김은희 사무국장에 따르면 실제로 부평 문화의 거리의 노점 관리제는 상위법인 옥외광고물에 관한 법과 충돌했다. 매달 5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대구삼덕동에서 진행된 공동체는 재개발 광풍에 휘청거렸다.
그래서 이 자리에 모인 전문가들은 구청 등 관련 기관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나가서 서로 지원,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는 재개발 위주의 도시 개발을 바꾸는 것이다. 정석 경원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집이건 동네건 오래되면 고쳐 쓰는 게 상식인데, 집도 동네도 헐고 새로 지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공동체를 어렵게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낙후된 곳이라도 재개발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지역이 겉으로는 슬럼화되는 것 같아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는 곳인데 재개발이 오히려 슬럼의 낙인을 찍고 여지를 안 준다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성북구의 '장수마을'을 예로 들며, 그 지역을 철거나 재개발이 아닌 방식으로 살려보겠다는 노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것이 '진짜 도시개발'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 행사를 주최한 인간도시컨센서스 조명래 공동대표는 "도시 삶터를 어떻게 사람 사는 공간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하는 게 이 포럼의 목적"이라며 "성미산 공동체 경험에서 배워서 보편화시켜보자는 게 첫 번째 토론의 주제"라고 밝혔다. 물론 성미산 공동체도 한계가 있고, 성미산의 경험을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제도, 시장과 충돌할 수 있겠지만, 계속되는 포럼을 통해 지속적으로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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