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초동 방역 실패와 느슨한 방역망도 문제지만, 소·돼지라는 '단백질 상품'을 '찍어내기'에 바빴던 공장식 축산업(factory farming)은 구제역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동물을 '생명'이 아닌 '공산품' 취급하는 한국의 축산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장식 사육의 저주…"구제역 사태는 '예고된 공격'"
전문가들은 이번 구제역 확산의 원인으로 △공장식 밀집 사육 △품종 개량으로 인한 유전자 다양성 소실 △항생제 남용 등, 철저하게 '생산성 증대'만을 목적으로 짜여진 한국의 축산 환경을 꼽는다. 확산의 일차적인 원인은 정부의 방역 실패에 있지만, 따지고보면 국내의 열악한 축산 환경이 구제역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
일단 '공장식'이라고까지 불리는 밀집 사육 형태는 바이러스의 빠른 전파를 낳았다. 정부는 밀집 사육 억제를 위해 체중 400㎏ 이상 한우는 9.2㎡, 젖소는 16.5㎡, 60㎏ 이상 돼지는 0.9㎡의 공간을 보장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기준 자체도 미흡한데다가 현장에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 스톨 안에 갇혀 사는 어미돼지. 분만하기 위한 20일을 제외하곤 앉고 서는 것 외엔 움직일 수 없는 이곳에서 평생을 산다. ⓒ한국동물보호연합 |
여기에 생산성 증대를 위한 품종 개량은 유전적 다양성 손실을 초래해 가축이 질병에 취약해지는 주원인이 됐다. 종 다양성은 인간에 의해서도 직접적으로 위협받았다. 유엔(UN)에 따르면, 현재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6500여 가축 품종 가운데 1350종이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박병상 소장은 17일 열린 '반생명적 축산정책의 종식을 기원하는 긴급토론회' 자리에서 "국내에 사육되는 닭은 죽어라 알만 낳는 암탉, 죽어라 정자만 생산하는 수탉, 그리고 죽어라 살만 찌우는 닭, 이 세 종류만 있다고 보면 된다"며 "이 같은 유전적 다양성의 소실은 결국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홍하일 대표 역시 "평생을 앉았다 일어섰다만 할 수 있는 틀 속에서 보내는 가축들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병에 걸릴 수 있다"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질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된 항생제를 '성장촉진제'라는 이름으로 맞고 있지만, 문제는 세균도 항생제에 저항하도록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구제역 사태는 예고된 공격"이라며 "공장식 축산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 심화되면서 슈퍼박테리아나 신종플루 같은 변종 바이러스 출현이 더 짧은 시기에 더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가축도 빵 찍어내듯…공장식 축산업, '괴물 바이러스' 낳았다
좁은 땅덩어리에 비해 가축의 숫자 자체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사육된 소(육우·젖소)는 모두 335만여 마리로 2000년 213만여 마리보다 100만 마리 이상 크게 늘었다. 돼지 역시 지난해 998만여 마리가 사육돼 10년 전(2000년, 821만여 마리) 보다 100만 마리 이상 늘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에 따르면, 현재 국민 14명 당 한 마리의 소, 국민 4명당 한 마리의 돼지와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박병상 소장은 17일 열린 '반생명적 축산정책의 종식을 기원하는 긴급토론회' 자리에서 "국내에 사육되는 닭은 죽어라 알만 낳는 암탉, 죽어라 정자만 생산하는 수탉, 그리고 죽어라 살만 찌우는 닭, 이 세 종류만 있다고 보면 된다"며 "이 같은 유전적 다양성의 소실은 결국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홍하일 대표 역시 "평생을 앉았다 일어섰다만 할 수 있는 틀 속에서 보내는 가축들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병에 걸릴 수 있다"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질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된 항생제를 '성장촉진제'라는 이름으로 맞고 있지만, 문제는 세균도 항생제에 저항하도록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구제역 사태는 예고된 공격"이라며 "공장식 축산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 심화되면서 슈퍼박테리아나 신종플루 같은 변종 바이러스 출현이 더 짧은 시기에 더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가축도 빵 찍어내듯…공장식 축산업, '괴물 바이러스' 낳았다
좁은 땅덩어리에 비해 가축의 숫자 자체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사육된 소(육우·젖소)는 모두 335만여 마리로 2000년 213만여 마리보다 100만 마리 이상 크게 늘었다. 돼지 역시 지난해 998만여 마리가 사육돼 10년 전(2000년, 821만여 마리) 보다 100만 마리 이상 늘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에 따르면, 현재 국민 14명 당 한 마리의 소, 국민 4명당 한 마리의 돼지와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가축 개체 수의 증가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농가당 사육 가축의 수가 크게 늘고, 대규모 사육 농가 역시 증가했다는 점이다. 소, 돼지, 닭 등의 사육 농가가 점차 '기업농'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
생산성 중심의 정부의 축산 정책 역시 이 같은 밀집 사육을 사실상 부채질했다. 지난 10여 년간 '축산 진흥'만 외쳤지, 방역 인프라 구축은 사실상 뒷전이었다는 지적이다. 당장 일본의 경우, 우리와 사육 규모는 비슷한 실정이지만 방역 인력은 한국의 8배가 넘는다.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해선 일차적으로 사육 규모를 줄여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좁은 영토를 가진 네덜란드와 덴마크, 벨기에 등은 '축산 등록제'의 시행을 통해 축산 농가의 사육 두수를 제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농가별 농경지 면적, 가축 두수, 가축의 품종 등에 대한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미 1980년대에 단위농지면적당 분뇨 생산 허용량을 제한해 농가의 사육 두수를 조절하고 있다.
벨기에는 젖소 100마리, 육우 300마리, 모돈 300마리 등으로 농가별 사육 규모를 제한하고 있다. 사육 두수를 늘리기 위해선 환경자격증을 취득해 관할 행정기관에 신청해야 한다. 덴마크 역시 농가별로 축산 분뇨를 살포할 수 있는 농경지를 확보해야 축산업을 시작할 수 있다.
이 모두가 '가축에게 좋은 환경이 곧 인간에게도 좋은 환경'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생산성 중심의 정부의 축산 정책 역시 이 같은 밀집 사육을 사실상 부채질했다. 지난 10여 년간 '축산 진흥'만 외쳤지, 방역 인프라 구축은 사실상 뒷전이었다는 지적이다. 당장 일본의 경우, 우리와 사육 규모는 비슷한 실정이지만 방역 인력은 한국의 8배가 넘는다.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해선 일차적으로 사육 규모를 줄여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좁은 영토를 가진 네덜란드와 덴마크, 벨기에 등은 '축산 등록제'의 시행을 통해 축산 농가의 사육 두수를 제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농가별 농경지 면적, 가축 두수, 가축의 품종 등에 대한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미 1980년대에 단위농지면적당 분뇨 생산 허용량을 제한해 농가의 사육 두수를 조절하고 있다.
벨기에는 젖소 100마리, 육우 300마리, 모돈 300마리 등으로 농가별 사육 규모를 제한하고 있다. 사육 두수를 늘리기 위해선 환경자격증을 취득해 관할 행정기관에 신청해야 한다. 덴마크 역시 농가별로 축산 분뇨를 살포할 수 있는 농경지를 확보해야 축산업을 시작할 수 있다.
이 모두가 '가축에게 좋은 환경이 곧 인간에게도 좋은 환경'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연합뉴스 |
"더 적게 먹고, 더 적게 기르고, 더 적게 죽여야"
구제역 사태가 '재앙' 수준으로 확산되고 정부의 방역 실패에 대한 비판이 연일 제기되자, 우리 정부도 결국 '축산업 허가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축산 농가들이 제대로 된 허가를 받고 방역 체계를 스스로 갖춰야한다는 취지지만, 구제역 사태로 가뜩이나 민심이 흉흉해진 농가들의 반발 역시 예상된다.
그러나 과도한 육식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없이 '동물 복지'는 공산으로 끝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국내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0년 1인당 19.9kg이었던 것이 2009년에는 36.8kg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따지고 보면 육류에 대한 소비자의 끝없는 욕망과 이윤 창출을 위한 생산자 사이의 '암묵적 합의'가 가축 수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진 셈이다.
홍하일 대표는 "더 적게 먹고, 더 적게 기르고, 그래서 더 적게 죽이는" 방식으로 육류 소비와 축산이 모두 변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엄청난 육류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공장식 축산업이 나올 수밖에 없"고, 결국 이는 구제역이라는 '병원체의 반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병상 소장 역시 "유전적 다양성을 떨어뜨리며 가축을 찍어내는 축산 구조를 소비자들이 거부하지 않는 한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부메랑이 된 '식품'…"인간이 낳은 동물 질병, 인간을 공격한다"
구제역 발생 50일에 접어들면서 일각에선 구제역도 한풀 꺾였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문제는 '구제역 이후'다. 광우병, 에이즈, 신종플루, 조류독감(AI) 등 최근 들어 인수공통전염병(人獸共通傳染病·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걸리는 전염병)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물들의 '반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발견된 새로운 인간 질병 중 75% 정도가 야생동물이나 가축에게서 유래했다"며 "지금은 구제역 사태로 끝날 수 있지만, 생산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사육 환경이 계속된다면 광우병, 에이즈와 같은 제2의 인수공통전염병이 인간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련 기사 : "지금은 구제역이지만 사람이 전염되는 역병 나올 수도")
보다 빠른 성장을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족의 뼈와 살까지 갈아 먹이고, 앉지도 눕지도 못하게 하며 항생제로 더 많은 '단백질 상품'을 찍어내기에 바쁜 축산 환경. 우희종 교수는 이를 두고 "지금도 수많은 동물 바이러스들이 인류계 내로 들어오는 문을 찾으려고 인간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상황에서, 인간의 탐욕이 그 문을 활짝 여는 것과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구제역 발생 50여 일. 소 13만2382마리, 돼지 184만9436마리가 살처분됐다. AI로 땅 속에 묻힌 닭·오리도 357만2187마리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주요 먹을거리들이 죄다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구제역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9일, 타이완에선 30대 남성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동물의 공포, 식품의 공포, 질병의 공포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구제역은 동물이 인간에게 던지는 '경고장'인 셈이다.
구제역 사태가 '재앙' 수준으로 확산되고 정부의 방역 실패에 대한 비판이 연일 제기되자, 우리 정부도 결국 '축산업 허가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축산 농가들이 제대로 된 허가를 받고 방역 체계를 스스로 갖춰야한다는 취지지만, 구제역 사태로 가뜩이나 민심이 흉흉해진 농가들의 반발 역시 예상된다.
그러나 과도한 육식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없이 '동물 복지'는 공산으로 끝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국내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0년 1인당 19.9kg이었던 것이 2009년에는 36.8kg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따지고 보면 육류에 대한 소비자의 끝없는 욕망과 이윤 창출을 위한 생산자 사이의 '암묵적 합의'가 가축 수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진 셈이다.
홍하일 대표는 "더 적게 먹고, 더 적게 기르고, 그래서 더 적게 죽이는" 방식으로 육류 소비와 축산이 모두 변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엄청난 육류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공장식 축산업이 나올 수밖에 없"고, 결국 이는 구제역이라는 '병원체의 반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병상 소장 역시 "유전적 다양성을 떨어뜨리며 가축을 찍어내는 축산 구조를 소비자들이 거부하지 않는 한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부메랑이 된 '식품'…"인간이 낳은 동물 질병, 인간을 공격한다"
구제역 발생 50일에 접어들면서 일각에선 구제역도 한풀 꺾였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문제는 '구제역 이후'다. 광우병, 에이즈, 신종플루, 조류독감(AI) 등 최근 들어 인수공통전염병(人獸共通傳染病·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걸리는 전염병)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물들의 '반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발견된 새로운 인간 질병 중 75% 정도가 야생동물이나 가축에게서 유래했다"며 "지금은 구제역 사태로 끝날 수 있지만, 생산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사육 환경이 계속된다면 광우병, 에이즈와 같은 제2의 인수공통전염병이 인간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련 기사 : "지금은 구제역이지만 사람이 전염되는 역병 나올 수도")
보다 빠른 성장을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족의 뼈와 살까지 갈아 먹이고, 앉지도 눕지도 못하게 하며 항생제로 더 많은 '단백질 상품'을 찍어내기에 바쁜 축산 환경. 우희종 교수는 이를 두고 "지금도 수많은 동물 바이러스들이 인류계 내로 들어오는 문을 찾으려고 인간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상황에서, 인간의 탐욕이 그 문을 활짝 여는 것과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 구제역 발생 50일 만에 살처분된 가축 수는 200만 마리에 이르렀다. 이들 대부분이 제대로된 안락사 과정 없이 고스란히 생매장된다. ⓒ한국동물보호연합 |
구제역 발생 50여 일. 소 13만2382마리, 돼지 184만9436마리가 살처분됐다. AI로 땅 속에 묻힌 닭·오리도 357만2187마리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주요 먹을거리들이 죄다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구제역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9일, 타이완에선 30대 남성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동물의 공포, 식품의 공포, 질병의 공포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구제역은 동물이 인간에게 던지는 '경고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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