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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민간인 최소 5291명 미군에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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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민간인 최소 5291명 미군에 희생"

국가기관 첫 통계…피난민·지역 폭격 등이 원인

6·25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가 최소 5000명을 넘는다는 국가기관의 첫 통계가 나왔다.

4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작성한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초기부터 1950년 9·28 수복 무렵까지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141건을 조사한 결과 4091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141건 중 공중 폭격 90건(63.8%)의 희생자가 3608명에 달했다.

서울 수복 이후에도 미군과 관련한 31건에서 1200여 명이 희생된 사실이 진실화해위에서 확인됐다.

6·25전쟁 발발 이후 최소 5291명의 민간인이 미군에 의해 숨진 사실이 국가 기관의 조사를 통해 공식 집계된 것이다.

국가기관이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을 조사해 전국 단위로 이런 통계를 내기는 처음이다.

미군에 의한 희생자 중에는 여성과 아이, 노인 비율이 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복 전 미군에 의한 희생자 1218명 가운데 541명(44.4%)이 여성이었고, 10대 미만 223명(18.3%), 50대 이상 228명(18.7%)으로 집계됐다.

수복 이후 미군에 의한 희생 사건 31건 중 21건은 1951년 1∼2월 사이에 발생했으며, 이들 사건은 피난민 폭격과 지역폭격 또는 초토화 작전 목적의 폭격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난민 폭격 중 대표적인 것은 1951년 1월 강원도 홍천 삼마치고개 사건으로 당시 이동 중이던 3000여명의 피난민 사이에 공산군이 섞여 있을 것이라는 미군 판단에 따라 수백 명이 공중 폭격으로 희생됐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또 지역폭격 또는 초토화 작전용 폭격은 북한군 병력의 은신처로 의심되는 민간인 마을에 대한 군사적 필요와 참전한 중공군의 보급선 등을 차단하지 않는 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판단 등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희생자들은 거주지에서 일상생활을 하거나 가족과 함께 피난을 떠났다가 숨진 사례가 많았으며 일가족이 한꺼번에 몰살당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신청 사건에 한해 민간인 희생 통계를 냈지만 신청하지 않은 사건까지 포함하면 희생자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05년 12월 발족한 진실화해위는 2006년 4월 25일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를 시작했으며, 신청 사건 등 1만1175건을 모두 처리하고서 지난해 12월31일 활동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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