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로서는 지난해 7일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이 한나라당의 일방 처리로 통과된 이후 1년 반 가까운 진통 끝에 첫 성과를 낸 셈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2010년의 마지막 날인 31일 올 해를 몇 시간 남기고서야 자신의 '연내 처리'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종편의 성공 여부는 여전히 쉽게 말할 수 없다. 지상파DMB나 IPTV에서 보는 것처럼 신규 미디어 도입 정책의 성공은 단순히 사업자 선정만이 아니라 각 사업자들이 시장에 적응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느냐, 또 이들 매체가 '미디어 다양성'에 기여하느냐 등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종편을 두고는 잿빛 전망이 많다. 과연 각 사업자들의 기대대로 '사양산업'에 몰린 신문의 출구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신문사들도 이같은 우려를 부인하지 않는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종편이 여러곳 허가될 경우 종편은 절대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아니고 특혜도 아니다"라며 "종편 진출사들의 경영이 더욱 어려워져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이 31일 서울시 종로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선정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승자의 저주'? "방송광고 시장은 '블러드 오션'"
종편의 생존 가능성을 따질 때 가장 먼저 기준이 되는 것은 광고 시장이다. 광고 시장이 새로 탄생한 4개의 채널을 먹여살릴 만한 역량이 될 것인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현재 8조원 가량의 방송광고 시장에는 총 188개의 매체가 뛰어들어 있다. 이중 케이블TV의 경우 시청률 0.1%를 놓고 약 100여개가 넘는 방송사업자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김민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시장 상황만 따지면 추가로 가능한 종편 개수는 많아야 하나 정도"라며 "여러 개가 나온 이상 전체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시청률-광고-제작비'의 선순환 구조를 걷는 곳과 악순환에 빠지는 곳의 차이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SBS 출범 당시와 지금의 차이다. 김민기 교수는 "1991년 SBS가 나올 당시 광고 시장은 '대기 물량이 200%'라고 할 정도로 '블루 오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케이블TV, 위성TV 등등으로 200개 가까이 채널이 나온 상황으로 새 채널이 생긴다고 해서 사람들이 TV를 더 보지 않는다. 지금의 방송 광고 시장은 '블러드 오션'"이라고 지적했다.
증권가에서도 종편의 수익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삼성증권 공태현 연구원은 지난 22일 "광고매체로서의 종편 가치는 타 방송사에 비해 낮을 것으로 보인다"며 "방송콘텐츠 품질에 대한 검증이 부족하고 '황금채널'을 확보하지 못하면 케이블 채널과 차별화가 어려운데다 복수의 종편이 허가되면 시청자들이 신규 채널을 구분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분석하는 보고서를 냈다.
종편 생존 조건 1.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라 …조건은 '돈'!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종편의 성공 요인은 '차별화'에 있다. 종편이 보도프로그램을 포함해 예능, 드라마 등 지상파 방송이 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편성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상파 방송과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자칫하면 종편은 여타의 수많은 케이블 채널과 다르지 않은 '다수 중의 하나'에 그칠 수도 있다.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는 "종편이 몇 개 선정되든 각 사업자마다의 사업 모델에 따라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며 "종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 수용자층, 특정 장르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을 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편이 케이블 방송 하나만 갖고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다양한 채널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MPP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주목을 받느냐는 결국 종편의 콘텐츠에 달려있다. 문제는 방송의 콘텐츠는 자본력에 비례한다는데 있다. 김민기 교수는 "방송 콘텐츠 시장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시장이라 방송의 질은 투자한 것만큼 나온다"면서 "SBS는 연간 300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종편이 이정도 수준을 투자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종편 사업자들이 방통위에 제출한 자본금 수준은 조선일보 3200억 원, 동아일보 4100억 원, 중앙일보 4100억 원, 매일경제 4000억 원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체로 2012~2013년 영업이익을 실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에게 OBS는 의미심장한 사례다. 경인방송(iTV) 당시 연간 500억 원 가량의 광고비 수입을 올렸던 OBS는 2007년 다시 출범한 이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광고비 수입을 거두다 개국 3년 만에 초기 자본금 1400억 원을 잠식당했다. 개국 초기 주철환 전 사장의 주도 속에 주목할만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뒷심, 자본력이 모자랐다.
생존 조건 2, 방통위를 닥달해라
각자의 콘텐츠 생산 능력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종편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사실상 방통위가 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특혜다. <조선일보> 등은 일찌감치 '황금채널' 배정을 비롯해 방송광고 금지품목 완화 등 광고 특혜, 세제 지원 등을 요구해왔다.
가장 핵심적인 특혜 정책은 '황금채널' 배정이다. 방통위가 행정 지도 등을 통해 지상파 방송 사이의 번호대를 종편 채널이 차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신규채널인 종편이 시청자들의 눈에 자주 띄게 하려면 지상파 인접 채널을 차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장사로 치면 목 좋은 자리를 잡는 것과 같다.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는 "종편이 자리를 잡는데에는 채널대가 굉장히 중요하다. 정부 지원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관건"이라며 "동시에 종편은 광고를 재원으로 삼기 때문에 방송광고 금지 품목을 뉴미디어나 유료방송부터 완화한다든지 하는 광고 시장 확대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황금채널에는 홈쇼핑 채널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홈쇼핑 채널이 황금채널 사용 대가로 내어온 송출 수수료는 SO들의 주요 수익원이 되어 왔다. 이 때문에 방통위가 종편을 위한 특혜를 시도할 경우 케이블 업계의 반발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SO들이 5개 홈쇼핑 사업자에게 받은 송출 수수료는 총 3854억 원으로 SO의 한해 순이익 2835억 원을 넘는 규모다.
홍명호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정책국장은 "황금채널은 사업자의 영업 권리다. 슈퍼마켓을 운영할 때 물건 공급하는 사람이 '여기 둬라'고 하지는 않는다'면서 "채널 자리 문제는 종편이나 보도채널이 경쟁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종편의 의문, 방통위는 적인가 동지인가
문제는 방통위의 정책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다는 것이다. 방통위가 지난 1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다채널방송서비스(MMS) 도입, 중간광고 확대 등 광고 시장 확대 방안을 밝혔을 때 이들 신문사의 반응은 '충격과 공포' 였다. 이들은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을 심화시킬 것" 라며 사설까지 동원해 방통위를 맹비난했다.
MMS는 디지털 방송 전환 이후 생기는 주파수 여유 대역을 활용해서 추가로 채널을 늘리는 것. 디지털 방송 전환 기존의 지상파 방송 채널당 3~4개의 채널이 생기게 된다. 그간 김인규 KBS 사장은 '코리아뷰' 사업을 추진해왔으며 방통위의 업무보고가 있던 날 KBS, MBC, SBS, EBS 지상파 방송 4사 사장단은 '코리아뷰' 관련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협약식을 열었다.
무료로 20여개의 채널을 볼 수 있게 하는 '코리아뷰'가 현실화되면 종편은 물론 종편이 자리잡을 케이블 방송과 같은 유료 방송에 가입자가 급감하는 등 큰 타격을 입으리라는 전망이 많다. 방통위는 논란이 일자 '검토'로 입장을 바꿨으나 당초 '코리아뷰'에 부정적이었던 방통위가 논의의 장에 MMS를 끌어올렸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변화다.
홍명호 케이블방송협회 정책국장은 방통위의 MMS 도입 검토에 대해 "차라리 방통위가 유료방송 사업자들에게 '이제 유료방송은 필요없으니 사라져라'라고 하는 편이 분명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종편은 같은 유료 방송 내에서 동반 성장을 해야할 파트너의 조건이 있다면 MMS는 생존 기반 자체를 흔드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방통위의 MMS 도입 검토 방침을 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종편 사업자 선정 이후에도 지상파 방송과 종편을 모두 '영향권' 안에 두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 이에 더해 압축 이후 남는 주파수를 방통위가 회수해 종편에 나눠줄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기도 한다.
시청자의 의문, 미디어 시장은 괜찮을까
문제는 종편이 미디어시장에 미칠 영향이다. 김민기 숭실대 교수는 "미디어 산업 전체가 피폐해 질 것"으로 봤다. 실제로 종편이 시장에 진출할 경우 이들은 실제 광고 효과 보다는 기존의 신문사에서 운영해온 광고 영업 조직을 기반으로 각 기업들에게 광고를 요구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민기 교수는 "종편 사업자들은 자신의 광고 영업 능력을 믿는 것이다. 종편이 뉴스 기능이 있고 기존 신문사의 매체력도 있는 만큼 카메라 들이대고 광고를 달라고 할 경우 거부할 광고주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신문사의 불합리한 광고 영업이 방송으로 옮아올 경우 기업들이 방송 광고 자체를 꺼리는 쪽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종편 선정을 앞두고 "오는 2011∼2012년은 미디어 빅뱅의 출발 해가 될 것이다. 앞으로 방송시장에서도 통신시장 처럼 인수합병(M&A)이 나타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산업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는 언론사의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김민기 교수는 "언론에는 진입장벽도 있지만 퇴출장벽도 있어서 통폐합이 되지 않는다"면서 "아무리 어려워도 신문사, 방송사 중 망하는 곳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방통위원회가 통신 산업을 다루듯 방송을 다루다 보니 무책임한 정책이 연달아 나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실제로 내년 하반기 종편이 출범한다고 해도 시청점유율이 높은 지상파 방송의 광고를 가져올 가능성은 낮다. 대신 종편은 소규모 케이블 방송이나 종교방송, 지역방송, 옥외 광고느 신문, 잡지 등 취약 매체의 광고를 끌어모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과도한 사업자 선정이 미디어 전체의 광고 시장의 고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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