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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역사는 앞으로 흐르고 있습니까"

[기자의 눈] 2000년 6월과 2010년 12월의 부조리

1.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 국회 출입을 하면서 "민주주의 후퇴"라는 말과 함께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말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촛불시위 당시 공안 정국이 조성되면서이다. 최근 대법원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긴급조치를 빗대 "막걸리 보안법이 부활한다"는 말도 숱하게 들었다.

그런데 사실 1970년대 태어나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기자에게 이 말은 다소 공허한 구호였다. 정치인들이 말하면 '정치성 구호' 정도였고, 나이차가 꽤 나는 선배들과 막걸리를 마시다가 '누구 누구는 막걸리 마시다 박정희 욕 한 번 했다가 끌려가 고문 당하고 징역 살았다'는 추억담일 뿐이었다.

그런데 엄혹한 시절을 온 몸으로 견뎌야 했던 '긴조세대'(긴급조치 세대) 들에게는 "역사가 거꾸로 돌아간다"는 말의 체감 수준이 달랐던 모양이다. "유신시절 같다"는 50대의 선배 언론인은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몸서리를 쳤고, "87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한 '386' 정치인은 "보안사 지하실 풍경이 떠오른다"고 했다.

2.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살면서 딱 세 번 느꼈다. 재수 끝에 당구장에서 전화기(ARS)로 대학 합격을 확인했던 날. 첫 사랑에게 고백하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던 날. 그리고 26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신고를 한 뒤 위병소를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가던 길이다.

사실 '꼬인' 군생활을 했다. 남들은 병장이 되는 순간 내무반 바닥과 합체가 된다는데 전역 열흘 전에 실시된 대대전술평가훈련(ATT)으로 인해 병장 생활 6개월을 '전투 준비'로 정신없이 보냈다. 전역하는 날도 연대전술훈련(RCT)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덕분에 기분은 짜릿했다. 새벽부터 얼굴에 검정칠하고 뛰어다니는 후임병들을 안쓰러운 마음 절반, 걱정되는 마음 절반으로 손 흔들어주고 나왔다.

그런데 그날 서울역에서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사람들이 TV 화면에 우르르 몰려 있어서 뭔가 하고 어깨 너머로 봤더니, 대한민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 공항에서 활짝 웃으며 악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2000년 6월 13일이었다. 부조리였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북괴'와 싸우는 훈련을 하며 '전투준비'에 여넘 었었던 26개월이 거짓말 같았다. '연평도 해전'으로 "진짜 전쟁 나는 줄" 알았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이 북한에 가 있는 것이었다.

그 이후 사람들은 금강산에 관광을 가고 개성공단에서 물건을 만들었다. 기자가 된 후 금강산에서 열리는 행사 취재를 위해 휴전선을 넘던 짜릿한 기분도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다.

3.

11월 23일. TV 화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연평도를 보고 몸이 먼저 반응했다. 포병으로 복무하면서 '비 오듯 포탄이 떨어지는' 포병 화력전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피난 가야지"를 외쳤다. 더구나 사무실은 청와대 근처다.

12월 20일. 군이 연평도 사격 훈련을 발표하고, 북한이 초강경 대응을 천명하면서 다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9일 밤 구글 위성지도로 집 주변을 살펴봤다. 사단급 군부대가 하나 있고, 모 정유사의 대형 유류 저장고도 있다. 만약 전쟁이 나면 우리 동네도 비오듯 포탄이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 시절 우리가 겨누고 있던 표적들이 죄 이런 것들인데, 적도 우리 동네를 겨누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대만의 금문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1958년 중국은 이 곳에 47만 발의 포탄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우리 군에서는 금문도를 모델로 서해5도를 지하 요새화 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오늘날의 금문도 지하 갱도는 과거 '양안 분쟁'의 상징이 돼 중국 본토 주민들의 관광 코스가 됐다고 한다. 한반도는 요새화를 진행하고 있다. '거꾸로'다.

엄혹한 유신시절, 전두환 정권의 철권 통치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이제 나도 몸으로 느끼는 게 하나 생겼다. "역사가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 걸려 있는 남북정상회담 사진. ⓒ프레시안(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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