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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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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정부

[기자의 눈] '한미 FTA 반대' 시민행동을 보고

5일 간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이 14일 끝났다. 협상기간 동안 한미 FTA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거셌다. 대규모 집회와 수 차례의 기자회견은 한미 FTA에 대한 반대여론을 더욱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삶이 갈수록 바쁘고 팍팍해지는 가운데서도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서민들이 전례없이 폭넓게 한미 FTA라는 국가적 쟁점에 대해 목소리를 낸 이유는 뭘까?
  
  시민사회, 오랜만에 기지개 켜다
  
  1987년 6월항쟁부터 시작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제도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감소시켰다. 1990년대 중반까지 고양되던 시민사회운동은 1997년에 몰아친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침잠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운동'이 여전히 요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가라앉은 상태가 수 년째 이어져 왔다.
  
  물론 그 사이에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라든가 자이툰 파병 반대 시위 등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시민사회의 조직적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의지의 발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를 계기로 시민사회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이합집산하던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미 FTA 반대'라는 동일한 주제 아래 빠르게 결집했다. 270여 개 단체로 구성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꾸려졌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조직을 통해 정부의 한미 FTA 추진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범국본은 지난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FTA 1차 협상 기간에도 원정투쟁단을 꾸려 현지 항의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규모가 작았고, 한미 양국에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에서 열린 2차 협상 기간에는 양상이 달랐다. 범국본의 조직적인 활동은 한미 FTA에 대한 반대여론을 광범위하게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지난 12일 서울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된 '한미 FTA 저지 국민총궐기' 집회는 노동자와 농민, 빈민 등 6만여 명이 참가해 한미 FTA에 대한 서민들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대중적으로' 표출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정부가 집회는 물론 기자회견까지 봉쇄하는 등 과잉대응하는 모습이 드러나면서 우리 정부가 한미 FTA에 대한 반대여론 확산에 얼마나 곤혹스러워하고 있는지 부각된 것도 이번 한미 FTA 반대 시민운동의 부수적인 성과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물론 한미 FTA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한미 FTA 협상 자체를 중단시키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2차 협상 기간 동안 한미 FTA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대 목소리는 보다 분명해졌고, 그러한 목소리가 한미 FTA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를 보다 깊이 있게 만드는 데는 기여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미 FTA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에 한미 FTA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온 것은 한미 FTA 자체의 파급력과 영향력이 큰 탓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오랫동안 축적된 정부에 대한 서민들의 불신감과 소외감이 밑바탕에서 작용한 탓도 큰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됐고 삼성, 현대 등 주요 대기업들이 세계 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 명에 이르고 빈곤층은 물론 차상위계층(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 이상 120% 미만인 계층. '잠재빈곤층'이라고도 불린다)까지 삶의 위협에 내몰리는 상황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또다른 자화상이다.
  
  더구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을 내놓고, 농민을 위한다면서 개방농정을 지속하는 정책은 정부에 대한 서민들의 울분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사실 월드컵이 아니면 '즐거울 일'이 별로 없는 우리 사회 대다수 서민들이 이번에 한미 FTA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정부, 언제쯤 귀를 열까?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을 자세가 돼 있지 않은 듯했다. 정부가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을 원천봉쇄하는가 하면 집회신고에 대해 거듭 금지통보로 대응했던 것은 공권력을 통해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행위일 뿐 그 이상이 아니다.
  
  또한 정부가 한미 FTA를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두고 "그들이 제대로 몰라서…"라거나 "관련 부서의 홍보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던 점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정부가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는지를 겸허하게 파악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국본은 9월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 FTA 3차 협상에 다시 원정투쟁단을 보내기로 하는 한편 올해 하반기 중에 노동자, 농민, 시민사회단체 등이 두루 참여하는 전 민중적 반 FTA 항쟁을 준비하고 있다. 나라가 두 쪽으로 나뉘어 접점 없는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한미 FTA에 대해 우려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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