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임을 내세우는 <추적60분>이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은 오래간만의 일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연주 전 사장이 강제로 해임된 이후 KBS의 시사 프로그램들은 폐지되거나 축소되는 등 고난을 면치 못했고 남아있는 프로그램들도 다루는 소재가 연성화되거나 일부는 친정부, 편파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KBS에서 천안함을 정면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을 낸 것은 의미심장하다. 노종면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KBS 새 노조를 중심으로 한 파업, 오늘 <추적60분>을 지켜낸 힘이 두렵다"며 "KBS, 많이 깨지고 잃었지만 '언론으로의 자각'이란 큰 열매를 맺고 있음을 느낀다"고 평가히기도 했다.
▲17일 '의문의 천안함, 논란은 끝났나?' 편을 방송한 KBS <추적60분> 홈페이지. 18일 오후 현재 <추적60분> '천안함' 편은 '군시설 정보 수정'을 이유로 다시보기가 중단된 상태다. ⓒ한국방송 |
그러나 방송까지 진통은 적지 않았다. 제작진은 방송 당일까지 이화섭 시사제작국장과 '이중 편성'까지 해가며 진통을 겪었다. 그 결과 방송에서는 △천안함 어뢰추진체 잔해물에 붙어있던 가리비를 국방부가 제거·훼손한 것 △지난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 국방부가 천안함 유실 무기를 모두 회수했고 공개하겠다고 밝히는 장면 등은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방부를 비판하는 멘트도 대폭 수준이 낮아졌다.
심인보 기자와 함께 이번 천안함 편을 제작한 강윤기 PD는 방송되기까지의 진통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방송의 '골격'이 흔들리지 않고 무사히 방영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제작 과정에서 데스크와 의견 충돌이 적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흔히 겪는 '조율' 수준이긴 하지만 이번은 특별하긴 했다"고 말했다.
강 PD는 제작 과정에 대해 "천안함 흡착 물질을 분석해 국방부 조사 결과를 검증할 학자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면서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가 (폭발의 증거로 내세우는)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니라고 인정한 것이 이번 방송의 큰 수확이다. 앞으로 흡착물질 논쟁은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부 역시 흡착 물질 분석에 비판하는 국민과 학자들을 비난한 것에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명 대학 학자들, '흡착물질 분석' 나서기 부담스러워 해"
프레시안 :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원회'에서 받은 흡착 물질로 실험한 결과로 방송 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강윤기 : 방송에도 나왔지만 우리는 실험 의뢰를 위해 그 기기가 있는 대학이나 전문가에게 전화한 횟수가 400여 번은 된다. 그 중에는 국방부의 흡착 분석이 잘 됐다는 분도 있었지만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분도 직접 실험은 곤란하다고 답했다. 서울의 유명한 몇몇 대학에는 공문도 보냈지만 거부됐다.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교수들로서는 논란이 되는 사안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이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결국 한 대학의 교수님들이 상의해서 정기영 안동대 교수님이 최고의 전문가라고 추천해주셔서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다.
프레시안 : 천안함 언론보도 검증위에서 받은 흡착물을 분석한다고 했을 때 회사 내에서는 문제 없었나?
강윤기 : 천안함을 주제로 잡고 본격 취재할 때도 데스크에서는 우려를 많이 표했다. (흡착물질 분석을) 하기로 하기까지 긴 논란을 거쳤다. 어제도 불방 소동이 있었는데 제작 과정에서 제작진과 데스크 간의 의견 충돌이 적지 않았다.
▲ 강윤기 KBS <추적60분> PD. ⓒ KBS |
프레시안 : 정기영 교수의 분석 결과는 국방부의 발표 내용과 전혀 다르게 나왔다. 정 교수의 실험 결과가 더 믿을만하다고 볼 근거는 무엇일까?
강윤기 : <추적60분> 제작진이 '천안함 사건의 원인은 좌초다, 폭발이다'라고 확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방송에서 나온 중요한 내용은 '정부가 밝힌 내용이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다', '정부가 사실대로 기술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합조단 관계자가 인정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이근득 국방과학연구소 박사가 "황산염 수화물이라는 것은 저희가 예측한 것 중 하나"라고 말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지만 취재원 보호를 위해 공개하지 않은 다른 학자 역시 '알루미늄 산화물 아닐 수 있다'라고 인정했다. 결국 논란이 정기영 교수와 <추적60분>의 실험이 공정하다 여부를 떠난 거다. 그간의 흡착물 논쟁이 새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면 된다.
정기영 교수 역시 '국방부의 보고서를 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처음에는 실험과 방송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다 실험 결과를 보고는 인터뷰 할 수 있고 확답을 주셨고 자신의 실험에 대해서도 검증을 받겠다고 했다. 천안함 흡착물질에 관해 보고서를 쓰고 학회에 발표하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국내 학자가 천안함 조사결과에 정면으로 문제제기 했다는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결국 '천안함 사건은 폭발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인가?
강윤기 :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정기영 교수도 '기존의 레퍼런스대로라면 알루미늄 산화물이 나와야 하는데 황산염 수화물이 나왔다'면서 만약 폭발이 있었다면 새로운 발견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폭발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학문 체계와는 안맞는 일이 벌어졌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조사 결과에 황산염 수화물이 나왔는데 국방부는 지금도 이 물질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고 답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을 속인 것이고 흡착물 논쟁하면서 반박하는 국민과 학자를 비난한 것은 큰 잘못을 진 것이다. '어뢰 피격' 여부를 논쟁하기 전에 이런 과정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프레시안 : 방송 중에 국방부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이 나온다. <추적60분> 제작진이 모은 것인가?
강윤기 : 우리가 어떻게 감히 국방부 관계자들을 한 자리에 모으겠나. (웃음) 국방부에 공식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두세분 나올 줄 알았더니 해당 분야마다 다 나와서 20여 분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안이 크고 전문성이 있는 주제라 그렇겠지만 생각과는 다른 자리가 됐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국방부가 나름대로 성의있게 취재에 응하고 인터뷰를 해준 것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천안함 모금 방송이 시작…언론인이라면 관심 가질 중요한 문제"
프레시안 : 강 PD는 지난 5월에도 천안함 사건을 주제로 '천안함, 무엇을 남겼나' 편을 제작했었다. 천안함에 계속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을까?
강윤기 : 그때는 사건 초기였고 국방부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원인에 가설을 세우지 않고 접근을 하려고 했고 5월 방송에서는 국방부의 초동대처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다. 국방부가 조사 결과 보고서를 낸 지금은 국방부가 천안함 발표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처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천안함 사건을 처음 다루게 된 것은 천안함 사고가 나고 나서 KBS에서 추모 프로그램을 연속으로 내보낼 때였다. 그때 나도 모금 방송 등에 배정을 받아서 프로그램 제작을 하면서 방송을 많이 했다. 천안함 사건은 한반도의 평화와 국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큰 사건이고 당연히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론을 내려야 하는 사건인데도 그렇지 못한 부분이 보이고 있지 않나. 기자나 PD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법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추적60분>이 이렇게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고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오래간만인 것 같다.
강윤기 : (웃음)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KBS 내에서도 기자나 PD들이 많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많이 격려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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