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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헌병철 위원장이 있는 한 인권위는 희망이 없다"

[기고]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 직을 사퇴하며

내가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30개월의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한 직후인 2002년부터였다. 영등포구치소, 서울구치소, 의정부교도소 등을 거치는 짧지 않은 옥살이를 하며 감옥안의 인권문제를 꼭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감옥 인권'이라는 분야를 내게 맡겨 주었다.

의욕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지만 작고 초라한 인권단체의 새내기 활동가에게 감옥의 담장은 매우 높고 차가웠다. 수용자들의 민원 서신을 받고 교도소에 문의를 하거나, 수용자 면담을 요청하면 언제나 규정을 들먹이며 거절하거나 아주 제한적인 접촉만을 허락했다. 그러던 중 국가인권위원회가 나를 교정전문위원으로 위촉하였고 그 이후 외부 전문가의 자격으로 20여 차례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과 함께 전국의 구금시설에 대한 실태조사와 방문조사를 다니며 한국 감옥의 현실에 대해 깊고 넓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권단체 활동가의 자격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었던 구금 시설의 문제점들을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의 이름으로 접할 수 있었고 수용자들과의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해결점을 찾아내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내게 권한과 정보를 주고 나는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에게 내가 가진 생생한 경험과 조사 노하우 등을 나누며 최소한 구금시설 조사에서만큼은 나름대로 쓸만한 '민관' 파트너십을 가지고 활동해왔다고 자부한다.

▲ 위촉장을 반납하고 있는 인권위 전문위원들. ⓒ연합뉴스

"뻔뻔한 현병철 위원장 목격하고 전문위원 사퇴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월요일 그토록 애정을 가지고 수년간 수행해 왔던 국가인권위원회 자유권전문위원 '직'을 사퇴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인권시민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명동성당에서 한겨울 노숙농성을 진행했을 때나, 국가인권위원회 대통령직속화에 실패하고 조직의 21%를 축소했을 때에도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지키기 위해 나서 싸웠지 국가인권위원회에 등을 돌리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하고 김양원 위원이나 최윤희 위원 같은 반인권적 인사들이 '국가인권위원'이랍시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때에는 이럴거면 더 이상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권위원회 안에서 대놓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자유인권전문위원과 인권교육전문위원 '직'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 현병철 위원장의 뻔뻔함을 목격하고 나서 이미 알고 있거나, 물어물어 알게 된 다른 전문위원들이나 정책자문위원, 조정위원, 전문상담위원, 행정심판위원, 민간보조금심사위원들에게 현병철 위원장의 퇴진과 인사검증시스템 도입을 요구하며 동반사퇴하자는 제안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몇몇 분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사퇴의사를 밝혀주셨고 그 후로부터 그분들이 직접 나서서 각자의 지인들에게 동반 사퇴를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기자회견 전날인 14일(일) 저녁까지 57명이 동참하셨고 이른 아침 뉴스를 보시고 4명이 추가로 동반사퇴 의사를 밝혀 주셨다. 이렇게 61명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부여한 모든 '직'에서 동반사퇴를 하게 됐다. 우리의 기자회견 기사를 보고 6명이 더 사퇴의사를 밝혀와 지금까지 총 66명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촉한 각자의 '직'을 내려놓았다.

지난 11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 동반사퇴 이후 현병철 인권위원장 퇴진을 요구하는 각계의 사퇴요구가 잇따랐다. 야당 국회의원 41인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사퇴결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기에 까지 이르렀다.

전직 국가인권위원 15명, 전직 국가인권위원회 직원 18명의 현병철 위원장 사퇴 요구 기자회견이 있었고 350여 명의 법학교수와 변호사들이 역시 똑같은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단체들과 장애인단체들이 여기에 동참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주최 주요 행사인 '사회권 심포지엄'의 발표자 10명 중 6명은 10일 서면을 통해 심포지엄 불참 의사를 국가인권위원회에 통보 했으며 급기야 대법원 추천으로 인권위원이 되었던 서울대 조국 교수가 인권위원직을 사퇴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전국 660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현병철 위원장의 즉각 퇴진, 국가인권위 독립성 수호와 정상화를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전국 10개 지역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인권시민단체들 이외에도 의료, 언론, 노동, 교육, 문화, 이주노동자 단체들까지 성명에 동참했으며 10년 전 올바른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하기 위해 피땀 흘렸던 모든 단체들과 인사들이 함께 했다.

지난 9일 국정감사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자신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아무 문제없이 잘 운영하고 있으며 사퇴할 뜻은 전혀 없음을 밝혔다. 자신을 격려하는 이메일이 많다는 황당무계한 말들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인권상황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며 어이없는 소리를 해댔다.

"현병철, 위원장 자격 애초부터 없었다"

현위원장의 이렇게 뻔뻔한 언행에 화답이라도 하듯, 10일 청와대는 유남영 상임위원의 후임으로 인권관련 활동경력이 전혀 없는 김영혜 변호사를 임명했다. 김영혜 변호사는 인권경력이 없음은 물론 반인권적이며 반사회적인 해프닝으로 끝난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명단을 법원의 공개 금지 명령까지 어겨가며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헌법소원 소송대리인을 맡았었고, "천안함 폭침 규탄 결의대회"를 단독 주최하는 등의 편향된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는 '법치주의수호국민연대'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또,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정당한 집회와 시위를 나라의 발목을 잡는 일로 폄훼한 인사이니 김영혜 변호사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여기에 바로 어제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관의 해명으로는 이례적으로 자세하고 긴 스물한페이지의 해설서를 첨부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 최근 논란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장 입장'을 발표했다. 현병철 위원장은 자신의 발언들이 "정확한 사실 또는 전후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되었거나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은 정부뿐만 아니라 어떠한 외부의 힘으로부터도 독립되어야 한다"는 그럴 듯한 말솜씨로 자신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비겁한 결정을 일삼아 왔음을 포장하고 자신에 대한 시민사회의 사퇴 요구를 무시해버렸다.

특히 "헌법의 정신과 가치, 자유와 인권 보호의 원칙, 국제 인권 규범에 따라 오로지 국민들의 인권향상을 위해 전념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이고 "저에게 부여된 소임을 변함없이 충실히 수행하고, 오로지 인권이라는 기준을 토대로 흔들림 없이 업무를 추진하겠다"는 대목에서는 어이없는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용산참사의 경찰진압에 대해서나, 야간집회허용에 대해 현병철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문제 삼고 싶지도 않다. 그가 '인권 문외한'이고 국가인권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을 더 이상 말하기도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오른다.

다만, 현병철 위원장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으로 있었던 고작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에 수많은 인권활동가들과 이 땅의 양심들이 모든 것을 걸고 한걸음씩 발전시켜 온 이 땅의 '인권'을 단박에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더불어 이명박 정부 절반을 지나며 국민의 피와 눈물로 완전히 쟁취했다고 착각하며 이제 더 이상 과거로 회귀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이 땅의 민주주의가 이토록 허약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사무치게 아프다.

현병철 위원장이 버티고 있는 한, 국가인권위원회는 희망이 없다. 때로는 현병철 위원장을 능가하는 무지몽매한 인권감수성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추락시킨 김태훈, 김양원, 최윤희, 황덕남, 한태식 등 비상임 위원들과 새로 임명된 김영혜 상임위원 역시 국민의 인권을 책임질 자격이 없음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참에 현재 남아있는 아홉 명의 모든 국가인권위원들이 모두 사퇴하고 인사검증시스템을 도입하여 인권운동진영과 시민사회와 함께 논의하여 신중하게 국가인권위원들을 새로 선임하는 것은 어떤가? 혹시 현병철 위원장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당분간만 버텨보자는 전술을 택하고 있다면, 이는 정말 큰 오산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하면 몇 배로 더 가슴이 아픈 것처럼, 부족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역할과 기능을 해왔다고 믿으며 뿌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던 국가인권위원회이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국민들은 화가 많이 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유선진당과 한국노총이라는 대표적인 보수 정당과 대중단체에서도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주 극소수의 수구인사들을 제외하고서는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만일 현병철 위원장이 청와대의 지시 없이는 자기 의사로 사퇴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면 청와대는 어서 현병철 위원장에게 문자라도 보내주기 바란다. "그대가 진정 청와대를 사랑한다면 조용히 물러나 달라"고 말이다. 마치 기업의 자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할 때처럼….

▲ 현병철 위원장. ⓒ연합뉴스

"더 버틴다면 강도 높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현병철 위원장이 계속 버틴다면 전문위원, 자문위원의 사퇴를 넘어서는 더 강도 높은 행동을 실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현병철 체제가 유지되는 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하는 모든 행사와 회의, 심포지엄, 토론회 등에 참여하지 말자는 제안을 개인적으로라도 시작하겠다. 또,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 안과 밖에서 많은 활약을 해 왔던 교수, 변호사, 의사 등 전문가들과 인권활동가들에게 앞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연구사업과조사활동을 전면 거부 할 것을 선언하는 공동행동을 조직해 나갈 것이다.

그 시작이 아마 오늘(17일, 수)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개최될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을 훼손하는 이명박 대통령 규탄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결의대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더 이상 주저하거나 일말의 기대로 고민하지 말고 힘과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인권의 불모지 대한민국 땅에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기 위해 사상최대의 폭설과 한파를 견디며 거리로 나섰던 10년 전의 심정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는 청와대 비서실의 일부로 전락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의 추천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되었던 문경란 위원이 지난 1일 사퇴하면서 인권문제에 진보와 보수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떤 입장이 인권의 원칙에 부합하는 가, 반하는 가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명백한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국가인권위원들이 각기 다른 입장과 주장을 하는 것은 다양성의 존중이 아니라 인권감수성이 없다는 증거일 뿐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현병철 위원장의 분명한 잘못과 무능력, '인권정책'이라는 것을 아예 애초부터 가져본 적이 없었던 이명박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

이번 일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몰아가고 전문·자문 위원들의 사퇴를 '좌파인사들의 사퇴'라고 악의적으로 폄훼하는 수구 언론과 기자회견 자리에 난데없이 뛰어들어 "현병철 위원장 잘한다"고 이백 번쯤 고함을 치고 유유히 사라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몇몇 분들을 빼고는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등을 돌리고 외면하겠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구성원들이 형편없다고 국가인권위원회 자체가 소중하지 않아지고 의미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병철 위원장은 청와대의 지시 없이는 자진해서 사퇴할 능력도 없는 분이니 이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현병철 위원장을 물러나가게 하고 김영혜 변호사의 임명도 취소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제대로 일하는, 어디에 내어 놔도 부끄럽지 않은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적합한 인물을 국민들과 함께 인선해야 할 것이다.

인권활동가들이 있어야 할 곳은 국가와 자본이 외면한 이들의 곁이다. 그 자리에서 같이 울고 아파하며 다시는 쫓겨나지 않기 위해 죽는 사람이나, 부당한 해고에 맞서 100일간 곡기를 끊어야 하는 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고 힘에 부친다.

더 이상 인권활동가들이 인권위원장의 사퇴나 국가인권위원회의 파행 운영을 바로잡기 위해 농성을 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하지 말고 현병철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를 떠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제자리로 돌아오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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