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4대강 사업, 저출산 문제, 체벌 문제, 배추값 파동 등을 보며 때로 국가가 도대체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국가는 인간의 삶에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인간이 속한 여러 단위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주의가 워낙 강하다 보니 '국가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과연 국가는 만능이고 개인을 절대적으로 구속할 수 있는가?
지난봄부터 초겨울의 문턱으로 접어드는 지난 7개월 동안 나는 수서경찰서로부터 지속적으로 출석요구서 등기 우편과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한 번은 집 앞에 찾아와 아파트 현관에 명함을 꽂아놓고 가기도 했고, 수십 차례의 전화와 문자, 4~5차례 정도 소환장을 받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귀하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피의 사건(고소인 국가)에 관하여 문의할 일이 있으니 수사과로 출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2009, 8.3 11:00-11:45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 개최
2. 위 집회 시 3회 해산 명령을 하였음에도 도로 점거
3. 계속 불응할 경우, 지휘를 받아 체포영장 신청 예정
같은 방에서 일하는 정책조사원말로는 '스토커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시민들을 대표하는 현직 시의원에게도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소환장을 남발하고, 때로는 체포해 48시간 구금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게 지금의 경찰인데, 일반 시민들에게는 더욱 심할 것이다. 사인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한 공익 요원이 경찰의 조사 이후로 자살했다고 하니 경찰의 집요함은 그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경찰로부터 거의 '스토커 수준'의 통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채증 자료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3일 오전, 나는 문화연대 대표로 8월 1일 개방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는 발언을 했다. 기자회견의 요지는 광장 사용 허가를 서울시와 경찰청 등에 이중 삼중으로 받아야 하고, 기자회견이나 집회 등 의사 표현을 원천 봉쇄한 광화문광장 조례안을 폐지하라는 것이었다.
기자회견 도중 '미신고 불법 집회'라며 수차례 종로경찰서 관계자의 경고 방송이 이어졌고, 사방에서 경찰의 포위망이 점차 좁혀졌지만 솔직히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람 그 누구도 경찰 연행을 염려하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관행이 경찰 경고 방송 후에도 대부분 기자회견을 무사히 마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과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던 참여연대 박원석 사무처장이 기자회견문을 채 끝까지 읽기도 전에 경찰에 연행됐다. (☞관련 기사 : 사람 잡는 광화문광장…'구경꾼'과 '시위대'는 다르다?)
기자회견이 있은 지 8개월이 지난 4월, 경찰의 출석 요구가 시작됐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출석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 경찰은 채증 자료가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난데없는 '범법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서면으로 문서를 작성해서 수서경찰서에 보내기도 했다. 내가 한 것은 분명 기자회견이었으며,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며 출석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찰의 출석 요구 발부 건수가 급증해 최근 5개월간 10만 건을 넘었다고 한다. 한 달 평균 2만 명, 하루 평균 677명 꼴로 경찰에 소환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지난 5월 10여 건에서 6월에는 2만여 건으로 전월대비 92%가 급증했고, 8월에는 2만6495건으로 가파른 증가추세를 나타냈다고 한다. G20 정상회의에 대비해 경찰이 출석 요구를 지나치게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서울시의회는 지난 6.2지방선거 이후 서울광장조례안을 공포했다. 서울광장운영사례를 참고로 나머지 광장조례안도 개정 혹은 폐지될 것이다.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춘 광화문광장 조례는 '개정'이 아닌 '폐지' 대상이다. 시대에 따라 조례도 변하고 법도 변한다. 그리고 정치인은 그 시대정신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국가도 경찰도 검찰도 예외는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움직일 때, 권력을 남용할 때 시민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인권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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