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 나무 한그루가 있다. 사계절의 바람이 스쳐가는 나무는 서정적이나 불안하게 흔들린다. 홀로 낮을 견디고 밤을 맞는다. 꽃을 피우지만 결국 그것마저 떨어트리고 마는 나무는 베르테르와 닮았다. 많은 뮤지컬 마니아들이 기다리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린 계절, 그렇게 조금 더 감상적이고 상징적인 무대로 돌아왔다. 헐벗은 마음보다 쓸쓸한 음악과 시적인 가사, 환희와 절망을 동시에 피우는 금단의 꽃은 여전하다. 아름다운 낙원 발하임에 드리운 구름의 참혹함과 감동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첫 장면부터 베르테르는 롯데에게 흔들린다. 이미 비극은 시작됐다.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연주되는 '금단의 꽃'은 비극의 서정성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금단의 꽃'은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치명적 가시로 사랑에 아파하는 젊은 남녀에게 상처를 내기 시작한다.
베르테르의 편지로 이루어진 원작이 무대화 되는 과정에서 사랑 외의 것은 대부분 배제됐다. 더불어 자신의 세계에 함몰된 베르테르의 이야기를 보편적 사랑으로 부각시켰다. 이는 2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 내 관객과 소통하기에 아주 효과적이며 뮤지컬은 이를 위해 원작을 수정, 각색, 첨가해 사랑이라는 주제를 더욱 견고케 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표현해 줄 상황들이 삽입 됨에 따라 인물들 간의 사랑과 감정적 밀도가 깊어졌다.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주인공 베르테르와 롯데 외 등장분량에 비해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두 인물 카인즈와 알베르트가 재창조됐다.
뮤지컬을 통해 카인즈라는 이름을 얻은 하인은 베르테르의 거울과도 같다. 베르테르의 분신인 동시에 대척점에 서 있는 카인즈는 베르테르에 앞서 처형당하며 죽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죽음의 과정에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기름을 안고 불 속으로 뛰어 들어도 사랑하고 있다면 마음을 불태우라'는 베르테르의 노래는 결국 자신에게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에 용기를 얻은 순수한 영혼 카인즈는 적극적 행동을 보이는 반면, 베르테르는 끊임없이 머뭇거리며 방황한다. 카인즈가 사랑에 따른 살인을 저지르고 쫓기는 장면에서 그를 대변하는 베르테르는 자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단함과 정당성을 설파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때 괜찮으니 웃어달라며 후회하지 않는다는 카인즈의 고백은 베르테르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기꺼이 품어 아량을 베풀라는 베르테르의 요구와 절대로 구제 받을 수 없을 거라는 알베르트는 팽팽하게 당겨진 평행선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알베르트는 누구의 줄이 끊어질지 짐작하게 된다.
알베르트는 카인즈에 대한 베르테르의 연민의 동기를 파악한다. 자상하나 차갑게 그려지기도 했던 그는 분명 피해자다. 그러나 이성적 행동과 냉철한 사고에 의해 그 아픔이 이해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변화는 알베르트에게 있다. 배우 민영기는 알베르트의 사랑과 아픔, 행동을 충분히 납득시켰으며 사랑방법에 대한 관객과의 교감에도 성공했다. 냉정한 표정 뒤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알베르트의 눈빛은 그의 사랑도 아파하고 있음을 조심스레 알렸다. 배우 송창의의 말끔한 외모는 수줍으면서도 열정으로 가득차 방황하는 청년 베르테르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관객들에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환희의 기쁨을 이야기하는 독백 장면은 송창의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초연 후 10년의 기간 동안 약간의 각색을 거쳐 공연됐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이번 공연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던 3년 전에 비해 감성적이고 격양돼 있으며 직설적이다. 감정의 상태가 직접적으로 언급됨에도 공연은 단조로워졌다. 그러나 관객이 사랑하는 창작뮤지컬임에는 이견을 내놓을 수가 없다. 우리가 오랜 시간 베르테르와 함께 흘렸던 눈물들은 마르지 않은 채 반짝이고 있으며 그 호수가 그의 사랑을, 우리의 사랑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다. 순결한 백포도주 사랑의 추억이 핏물로 무대를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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