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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평화행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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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평택 평화행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평화야, 걷자!' 4박5일 행진일정 마무리

청와대에서 대추리까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및 한미 FTA 협상 반대"를 외치며 행진한 '평화야, 걷자!' 행사 참가자들이 9일 목적지였던 대추리에 끝내 들어가지 못한 채 마을 입구에서 4박5일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150여 명의 참가자들은 '군사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대추리 입구에서 행진을 막은 경찰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가진 뒤 행진 일정을 끝냈다.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50여 명의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도 집회에 함께 참가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평택 지킴이 선언서'를 낭독한 뒤 7월 22일 대추리에서 열릴 예정인 '범국민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행진을 마쳤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 듯 반갑다"
▲ 행진에 참가한 문정현 신부와 행진단을 마중나온 대추리 할머니가 "견우와 직녀가 만난 것 같다"며 반갑게 인사했다. ⓒ프레시안

이날 행진단은 8일 밤부터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특히 예민해진 모습이었다. 이들은 8일 밤 대추리로 행진하던 도중 미군기지 이전에 찬성하는 '안정리 상인회'의 위협과 폭행에 막혀 다시 평택 시내로 돌아와야 했다. 또한 행진단은 평택경찰서 앞에서 대추리 마을 입구를 통제하는 경찰에 항의하는 농성을 벌이다가 불법집회라는 이유로 강제진압당했고 이 과정에서 45명의 참가자가 경찰에 연행됐다.

행진단은 9일 정오 평택경찰서 앞에서 '경찰 폭력만행 규탄과 평화행진 보장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데 이어 오후 2시30분경 평택역에 모여 다시 대추리로 행진을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상인회가 또다시 쇠파이프 등을 들고 행진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에 불안해하면서도 행진에 나섰다.

그러나 충돌이 예상됐던 원정삼거리에서는 경찰이 미리 상인회를 제지함으로써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이 '여기서부터는 '군사보호구역'이기 때문에 행진을 계속할 수 없다'며 가로막은 탓에 행진은 멈춰야 했다.

행진단은 그 자리에서 마무리 집회를 가졌으며 마중나온 대추리, 도두리의 주민들을 만나 '다시 보게 되니 참으로 기쁘다'며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행진단을 반갑게 맞이한 도두2리의 이장은 "대추리와 도두리의 현실을 보고자 서울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마을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행진단의 안타까운 심정을 짐작할 수 있기에 더욱 안타깝다"며 함께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운 심정을 전했다.

"춤추고 노래하며 즐겁게 행진한 5일"

참가자들은 8일 밤 안정리 상인회와 무력충돌이 있기 전까지 4일 간의 행진은 아무런 문제 없이 즐겁게 진행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참가자는 "우리는 춤추고 노래하며 걸었다"고 말하고서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들이 어젯밤부터 연이어 터지다보니 3박4일의 즐거움이 한꺼번에 허물어지는 듯했다"며 안정리 상인들과의 충돌과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충격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20여일 간의 단식 뒤에도 행진에 참가한 문정현 신부는 "오늘까지 제가 온 거 참 장하죠?"라고 운을 뗀 뒤 "여기에만 오면 경찰과 국방부 때문에 속이 뒤집어지지만, 나 여기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왔소"라고 말해 참가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송태경 행진공동단장은 "유치원생부터 어르신들까지 참가해 더욱 뜻깊은 행진이었다"고 말하고서 "우리의 행진은 이제 끝나지만 고립된 섬과 같은 대추리, 도두리를 위한 평화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 마을 입구에서 경찰에 제지당한 행진 참가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그 자리에 앉아 집회를 가졌다(왼쪽). 행진단을 가로막고 선 경찰 앞에 한 마을 주민이 앉아 있다(오른쪽). ⓒ 프레시안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평택 지킴이 선언서를 통해 "우리는 대추리, 도두리에 평화촌을 건설하겠다"고 밝힌 뒤 그 구체적인 행동으로 △ 7월로 예정된 강제 빈집철거를 막고 대추리, 도두리를 농민의 땅으로 되돌려놓겠다, △ 경찰의 불심검문과 연행 등에 맞서는 평화의 저항을 멈추지 않겠다, △ 전국의 양심을 데리고 반드시 이곳으로 다시 오겠다며 이후 활동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평화는 '함께 나누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번 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놀라운 성과'라고 꼽는 것 중 하나는 행진단이 대부분 개별참가자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한 단체에서 수십 명씩 동원하지 않았는데도 일일 참가자가 200명에 달했던 사실은 주최 측은 물론 참가자들도 놀라웠다는 반응이었다. 참가자들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평화'라는 주제 아래 함께 행진했다는 점은 "평택 문제가 단순한 이념이나 보상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행진의 전 일정에 참가한 대학생 이선화(21) 씨도 그런 개인 참가자 중 한 명이었다. 이 씨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동참하게 됐다"며 참가동기를 밝혔다. 이 씨는 마무리 집회 중 참가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살겠지만 그렇지 못할 주민들을 생각하니 정말 슬프고 안타깝다"며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이 행진에 참가했나?
▲ 마무리 집회에서 소감을 발표하던 행진 참가자가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프레시안

2005년 여름 '전쟁 없는 세상' 등 몇몇 평화단체가 대추분교에서 연 평화캠프에 참가했다.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참가했는데 캠프 도중 국방부가 전경을 몰고 와서는 다짜고짜 주민설명회를 진행한답시고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았는데 그때 너무 화가 났다. 그 전까지는 공권력이나 국방부, 경찰에 대해 나쁜 감정이 없었다. 그 후에 평택 문제를 한동안 잊고 있다가 5월 4일에 벌어진 사태를 보고 다시 평택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5일 간 행진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점은?

걸으면서 도착하는 지역마다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또 촛불문화제와 행진 도중에 전단지를 나눠줬는데 받아보고 긍정적으로 우리를 대하며 힘내라고 말씀하시는 시민들도 많았다. 심지어 행진단에게 힘내라며 몰래 현금 20만 원을 건네준 분도 있었다.

행진단을 응원하는 이들을 보면서 '평화가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집에 방범장치를 달아놓고 그것이 평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평화는 혼자서 담을 쌓아놓는 게 아니라 서로 함께 나누는 것이다. 특히 참가자들이 서로의 기쁨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행진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어젯밤에는 정말 매우 두려웠다. 경찰서 앞에서 참가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경찰을 보고 너무 놀라 실신하기도 했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경찰 근처에만 가도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오늘 걸으면서 평택지킴이들과 어젯밤에 두려웠던 기억을 나누다보니 두려운 마음이 다소 사라졌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전국 방방곡곡의 사람들을 만나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공권력에 맞서서 어제와 같은 순간을 계속 겪어야 하는 주민들을 생각하니 또다시 마음이 아프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계속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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