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이 연일 언론 지면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노총 기자실에서는 이 위원장을 다루지 않은 신문은 <프레시안>과 <한겨레>밖에 없다는 말이 우스개소리처럼 나올 정도다. 아무튼 이용득 위원장이 유별나게 언론의 각광을 받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용득의 파격 행보…"외자유치 위해 총대 매겠다"
이용득 위원장의 '상종가'는 최근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열린 해외투자자를 상대로 열린 '국가투자설명회'에 참석하면서 시작됐다. 노총 위원장으로는 처음으로 정부 관리들과 함께 해외 투자설명회에 참석한 것도 '화제'이지만, 그보다 그 자리에서 그가 한 발언이 더욱 언론의 구미를 당겼다.
"이제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은 끝났다. 나는 은행 총파업에 앞장서고 두 번이나 투옥된 사람이지만, 노사문제로 한국투자를 꺼리는 사람에게 걱정 말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총대를 매겠다."
"고용창출, 경제활성화를 위해 건전한 투자는 적극 환영한다. 중국 등으로 해외투자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외자유치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한국노총이 직접 중재에 나서는 등 지원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 위원장의 거침없는 발언은 보수언론과 경제지에 연일 대서특필됐다. 외자도입이라고 하면 '빨간 띠'부터 묶던 우리 노조가 그간의 행태에서 벗어나는 '희망의 조짐'이 보인다는 논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이용득 위원장의 행보는 노동계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다.
그러나 이런 파격 행보는 이미 올해 초부터 예견됐다. 지난 4월 한국노총이 코트라(KOTRA)와 손잡고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한 공동협력 약정서'를 체결한 그것이다. 당시 그에 대해 "나라에 대한 책임감이 높고 현실을 정확히 투시하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극찬이 뒤따랐다.
침묵하던 민노당, 드디어 입 열어…"노총 위원장인지 경총 위원장인지"
한편 이용득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민주노총 등은 꿀먹은 벙어리인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들의 생각과 180도 다른 행보를 이 위원장이 보이고 있지만 이렇다 할 비판성명도 내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좀더 지켜보자"는 입장을 거듭해 드러냈다. 그러나 결국 일이 터졌다. 민주노동당이 이용득 위원장에게 공세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노당의 박용진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노총 위원장인지 경총 위원장인지 알 수 없다"고 이 위원장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섰다. 박 대변인은 이어 "(이 위원장 발언의 내용은) 주류의 인식이고 기득권층의 이익을 반영한 인식일 뿐"이라며 사실상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이 위원장을 거세게 몰아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주류로부터 소외받고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를 대변하라고 선출된 사람이 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위원장의 외자유치 행보를 '사용자 이익 대변 활동'으로 싸잡아 비판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신문은 민노당의 비판 발언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이용득 위원장 '감싸기'와 민노당 '때리기'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1일자에 "민노당·한노총 격돌"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고, 이에 뒤질세라 <동아일보>도 4일자에 "투자유치 훼방 놓아 일자리 내쫒는 민노당"이란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어찌 됐든 이용득 '상종가'는 이어지는 셈이다.
의문점 1: '건전한 산업자본', 사전 판단이 가능한가?
한편 이용득 위원장의 행보가 '파격'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이 위원장의 주장대로 단선적인 노동운동에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하더라도 '변화된 모습'이 외자 유치에 '총대 메는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힘든 대목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먼저 '건전한 산업자본'의 성격이다.
한국노총은 민노당의 비판 브리핑이 있던 날 성명을 통해 "민노당이 한국노총의 건전한 산업자본 유치라는 내용을 모르고 이런 소리를 했다면 공부를 더 하기 바란다"라고 반박했다. 건전한 산업자본 유치에 동참하거나 응원은 못할 망정 딴지를 걸어서야 되겠느냐는 항변이었다.
한국노총은 '건전한 산업자본'을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활성화에 기여하는 자본"으로 정의하면서 공장 정상화와 고용창출을 한 볼보기계코리아나 LG필립스 등을 외국인 직접투자의 긍정적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본이 '건전한 산업자본'으로 기능할지 여부는 사전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국노총의 이같은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건전한 산업자본'으로 알았더니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단기적 성과만 남기고 철수한 해외자본의 사례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민주노총의 허영구 부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투기자본과 (건전한) 투자자본을 구분할 수 있는 방도는 사실상 없다"며 "이것이 노동계가 외자유치 활동에 선뜻 나설 수 없는 핵심 이유"라고 설명했다.
외자 유치의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 또한 "사전적으로 투기자본과 투자자본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후적으로만 건전한 투자자본인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허 부위원장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의문점 2: 외자유치가 얼마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나?
다음으로 의문스러운 점은 '건전한 산업자본' 유치 이후에 기대되는 '고용창출 효과'다.
한국노총은 건전한 산업자본의 긍정적 기능으로 '일자리 창출'을 대표적 예로 들고 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비록 논란은 있지만 외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 간의 연관관계는 여러 연구에서 증명되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이 2004년에 실시한 '외자기업 경영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제조업 분야의 853개사에서 모두 26만6000여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났다. 산업연구원의 장윤종 박사는 이와 관련해 "외자도입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자도입과 일자리 증가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창출된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인지는 분명치 않은 부분이다. 일단 '양질의 일자리'란 개념 자체가 모호한 상황인 만큼, 외자유치에 따른 양질의 일자리가 얼마나 창출됐는지에 대해서는 재경부·산자부·노동부 등 관련부처는 물론이고 한국노총마저 그렇듯한 통계를 갖고 있지 않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양질의 일자리란 표현 자체가 매우 주관적"이라며 "이와 관련된 통계를 산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의 정경은 정책부장도 "'양질의 일자리'란 표현은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의 장윤종 박사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 유무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다만 "(외국인투자기업에서는) 본국 노동자보다 국내 노동자가 적은 임금을 받고 있지만, 국내 노동자 간에 비교를 하면 외국인투자기업의 노동자 임금이 다소 높은 경향은 있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외자기업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분명하게 입증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한국노총도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을 두고 일자리 창출 효과라고 주장하지는 않는 만큼, 외자유치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를 주장하기 앞서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책임 있는 노동운동'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이용득 위원장의 운동관은 타당한 구석이 많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책임 있는 노동운동'이 왜 '외자유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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