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유럽에서 시작된 탄소 시장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는 탄소 배출권 거래 시장 도입을 명시한 녹색성장기본법을 통과시켰고, 각 지방자치단체와 전력거래소를 대상으로 한 시범 사업 역시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이다.
탄소 시장은 말 그대로 탄소를 배출하는 권리를 사고파는 시장을 의미한다. 1992년 기후변화협약 때부터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국제적인 논의가 시작됐고,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는 온실 기체 배출 '권리'를 거래 가능한 것으로 규정한 '배출권 거래 제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는 그만큼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졌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각에선 "공공재인 대기마저 사유화하고 상품화하는 '인클로저 운동'의 현재적 재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앞장서 '저탄소 녹색 성장' 슬로건을 내걸고, 탄소 시장이 일종의 '블루 오션'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상황에서, 과연 배출권 거래제는 지구 온난화를 막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소장 박진희)는 창립 1주년을 맞아 '기후 변화 대응과 탄소 시장'이란 제목의 토론회를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열었다.
이 연구소는 "탄소 시장의 불안정성, 온실 기체 감축 수단으로서의 효과, 형평성 논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탄소 시장 도입의 필요성과 긍정성만 부각되고 있어 균형잡힌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 탄소 시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 토론회 '기후 변화 대응과 탄소 시장'이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열렸다. ⓒ프레시안(선명수) |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탄소 시장의 도입은 그 제도적 가능성과는 별도로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배출권 초과 할당으로 인한 배출 총량 증가와 감축 능력의 경제적·기술적 종속성 문제가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탄소 시장의 문제점으로 △공공재를 사유화해 공공의 편익이 훼손될 가능성 △면죄부 성격의 '미래 오염권'을 인정하는 문제 △시장의 불안정성에 따른 위험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종속성 강화 △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의 '기후 불평등' 고착화 등을 들었다.
그는 이어 "상황이 이러한 데도, 탄소 시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논의없이 국내에서 탄소 시장 도입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만을 토대로 매우 급하게 결정됐다"며 "정부는 탄소 시장 도입에 앞서 기업뿐만 아니라 이 시장의 또 다른 이해 당사자인 노동조합, 시민단체를 포함해 의견 수렴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발제자로 나선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탄소 배출권이 거래되는 '시장의 불확실성' 뿐만 아니라, 탄소 시장 자체를 지탱하는 '과학의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사고팔려는 배출권을 측정·계산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을뿐더러, 기후 과학이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와 맞물릴 때 상당한 불확실성을 내재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한 부소장은 "온실 기체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불확실성이나 이를 측정하는 방법 및 데이터 부족에 따른 불확실성 이외에,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사회적 선택에 따른 불확실성도 함께 존재한다"며 "이러한 불확실성 위에 놓인 탄소 시장의 실패는 어떤 식으로든 지구적인 경제, 그리고 기후변화 완화 수단에 대한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탄소시장이 금융자본의 새로운 '화수분'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본우 연구원(중앙대 사회학과)은 미국과 유럽의 대형 금융 기관들이 2000년대 중반 이후 탄소 시장에 대거 진입한 사례를 소개하며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된 2005년 이후, 탄소 시장은 금융 자본들이 이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자본 축적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탄소 배출권이 선물 계약으로 매매되거나 파생상품으로 유통되는 등, 금융 기관의 자본 축적 도구로 사용될 때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탄소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