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지가 살아있는 강. ⓒ길상호 |
지난 7월 작가선언 6.9에서 마련한 낙동강 순례를 함께하면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참여 인원의 대부분이 도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었는데, 강을 보며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강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공원화되어 흐르는 한강만 생각하다가 기암괴석, 습지의 나무와 풀, 모래밭이 펼쳐진 강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탄성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공사로 인해 황폐해진 강의 모습을 보고는 그 참혹함에 마음 아파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만약 살아있는 강의 모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현장만을 보았다면 이렇게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반응은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자연과 격리된 채 도시의 일상에 젖어 있었는지를 반증하고 있었다.
또한 구미보 공사구역 하류 쪽을 걸을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공사 관계자 한 분이 따라와 사진을 찍고 있던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는 강 오른쪽으로 자리하고 있는 버드나무 군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 대기 중인 포클레인. ⓒ길상호 |
나는 습지의 풀들을 왜 '잡풀'이라고 힘주어 말하는지 궁금해져 다시 물었다.
"저게 왜 잡풀입니까? 저 풀들이 강에서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의 답변은 이러했다.
"나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지만, 저 잡풀들은 금방 자라나지 않습니까."
습지의 풀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잡풀'이라는 단어로 요약하고 있는 그 앞에서 나의 얼굴은 굳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겠다고 판단을 한 것인지 살며시 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나는 차광막으로 가려놓은 나무더미와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는 분명 임목 폐기물이라는 팻말과 함께 뿌리가 뽑힌 수많은 나무들이 쌓여 있었다. '나무'와 '잡풀' 사이에서 한 차례 힘이 빠졌던 나는 말라가는 나무더미 앞에서 다시 맥이 풀려버렸다. 조금 남겨놓은 버드나무 군락을 가지고서 친환경적인 공사를 하는 듯 이야기를 펼쳐놓던 그에게 달려가 따져 묻고 싶어졌다. 이 속에 쌓여있는 건 도대체 뭐냐고.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속담이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 공사장의 뿌리뽑힌 나무들. ⓒ길상호 |
정부가 내세우는 4대강 사업의 중요한 취지 중에는 "하천을 건강한 문화생태 공간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항목이 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온 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인간 생활의 편의에 맞게 정돈된 것은 생태이고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는 자연은 폐기 대상이었다. 혹 이 사업을 고안하고 진행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런 관점으로 생태의 개념을 설정해둔 건 아닐까?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그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건 아닐까? 갑자기 수많은 걱정들이 밀려들었다.
▲ 강바닥의 모래를 실어나르는 화물차. ⓒ길상호 |
도시 속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중에는 공원을 자연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빌딩 숲보다는 조금 더 자연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의 자연은 철저히 인간의 편의에 의해 선택되고 재배치된 자연이다. 이런 공간에서 인간 이외의 많은 생명들이 어울려 교감을 나누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공원을 자연으로 여기는 인식이 몸에 밴다면 인간도 생태환경의 일부라는 생각보다는, 인간이 생태환경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더욱 많이 품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어디에서든 기초가 튼튼한 교육을 강조하곤 한다. 한번 잘못된 교육으로 길들여지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무척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 삼락공원의 4대강 사업 반대 현수막. ⓒ길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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