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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보다 '무관심'이 더 힘든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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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보다 '무관심'이 더 힘든 아이들

[여름이 무섭다 ②·끝] "방임 아동 위한 사회시스템 확충 필요"

"상류층 자녀는 여름방학이 지나고 9월에 돌아오면 읽기 성적이 15점이나 뛰어오른다. 반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빈곤층 자녀의 읽기 성적은 거의 4점이나 떨어진다. 빈곤층 아이들은 학기 중에는 앞서 가지만 여름방학 동안 상류층 아이들에게 뒤처지고 마는 것이다."(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295쪽)

과거 '여름방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시골 외갓집', '보이스카웃 캠프' 등 뛰어 노는 것이었다. 특히 보충수업, 학원수강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과 달리 초등학생들의 여름방학은 그야말로 '자유'였다. 하지만 최근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초등학생들의 여름방학마저 소득 수준별로 질적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저소득층의 경우 '방학 중 돌봄'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는 방학 중 학습의 기회 정도가 아이들의 성적 차이로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에게도 먼 나라만의 일이 아닌 듯 하다. <프레시안>은 2회에 걸쳐 초등학생들의 방학 나기를 살펴본다. <편집자>

■1편: '초딩'도 계급사회…우주비행 체험 vs PC방 '메뚜기'

<아웃라이어>를 보면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사회학자인 칼 알렉산더 교수가 캘리포니아 학업성과 시험이라 불리는 보편적인 수학 및 일기 평가 시험 결과를 토대로 볼티모어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 650명의 발달과정을 추적한 결과가 나온다. 극빈층, 중산층, 부유층으로 1학년 학생들을 나눈 뒤 여름 방학이 끝난 후 학년이 지날 때마다 학업 성취도를 분석한 것.

조사 결과, 여름방학이 지나고 난 뒤 부유층과 서민층 학생들 간의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칼 알렉산더 교수는 방학 이전인 6월 시험과 이후인 9월 시험 성적을 비교 분석해서 이와 같은 결과는 내놓았다. 알렉산더 교수는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여름방학 동안 이뤄낸 성취도 종합지수를 산정한 결과, 극빈층 아동의 읽기 성적은 0.26포인트 상승했으나, 부유층 아동의 경우 52.49포인트나 증가했다. 서민층의 경우 학교 문을 닫으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격차가 벌어진다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 비영리 교육재단 '지식은 힘 프로그램(Knowledge Is Power Program·KIPP)'이 운영하는 82개 실험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오전 7시30분에 등교시키고 오후 5시에 집으로 보내 보았다. 일반 학교보다 3시간 더 수업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격주마다 토요일에, 여름방학 기간에는 3주 동안 학교에 나오게 했다. 그 결과 KIPP의 8학년 학생(중2)들의 성적은 주에서 평가하는 시험에서 평균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학원수강 등 사교육이 발달한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기 어렵지만, 사실상 학교 공교육 외에는 다른 학습기회가 전혀 없는 미국 극빈층 아이들에게 공교육을 통한 학습기회 부여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례다.

저소득층 가정과 부유층 가정 아동간 위화감 조성돼

여름방학은 부유층 가정 아동과 저소득층 가정 아동 사이의 격차를 심각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는 미국과 같은 통계 등이 나온 경우는 없으나 미국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 목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 교사는 "방학이 끝나도 열흘 가까이 수업에 참석하지 않는 아이들이 꽤 있다"며 "이들은 대부분 해외 연수나 캠핑을 다녀오는 아이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게 다녀온 아이들의 경우, 그렇지 못한 아이들과 자신감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라며 설명했다.

그렇다보니 학습 능력 신장의 차이도 있지만 저소득층 가정 아동과 부유층 가정 아동 간 위화감 조성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전은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교육자치위원장은 "저소득층 아동이 방학 중에 할 수 있는 건 방과후 수업 밖에 없다"며 "하지만 그나마도 주요과목의 보충수업 수준이라 다양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현직 교사는 "학교에서는 방학 동안 여러 캠프를 진행하지만 학기 중 뒤떨어진 아동들을 위한 영어 보충 캠프, 수학 보충 캠프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은자 위원장은 "방학이 지난 후 아이들은 서로 어디에 갔다 왔는지 묻는다"며 "아이들 중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집에만 있는 아동이 있는 반면, 해외 곳곳을 다녀온 아동도 있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결국 아이들 간 위화감이 조성돼 해외연수나 캠프 등을 다녀오지 못한 아이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전은자 위원장은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아이들은 자신의 가족 형편을 잘 안다"며 "그런 것을 파악하고 주위 아이들과 비교를 하면 자긍심이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로롯 캠프에 참여한 초등학생들. ⓒ연합뉴스

저소득층 아동의 성범죄 노출 및 탈선도 우려

학습력 저하와 위화감 조성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방학이나 학기 중에도 방과 후에 방임되는 저소득층 아동이 성범죄 노출 및 탈선 등도 심각한 문제다. 복지부에 따르면 저소득층 방임 아동의 인터넷 게임 중독률은 일반 아동보다 2배, 가출 비율은 10% 이상 높다. 이들은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 성폭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7년 혜진-예슬 양 사건, 2008년 나영이 사건, 2009년 이유리 양 사건은 부모가 일하러 집을 비운 사이에 벌어졌다. 2009년 서울 통계연보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는 전체 부부의 34.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지난 2008년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 2800여 건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범행이 발생한 시각은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가 가장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직장에 간 공백시간대가 범행시간대인 셈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이렇다 할 보호책이나 대비책은 미비한 상황이다. 그나마 지역아동센터나 방과후 수업 등이 저소득층 아동을 돌보는 장치로 마련돼 있지만 돌봄이 필요한 전체 아동을 아우르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2008년 '한국아동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돌봄 공백 상태에 있는 아동은 모두 102만5600명이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2009년 시군구 38곳 저소득층 아동의 부모 1만381명을 조사한 결과 자녀의 문제점으로 '방과 후 방치(37.5%)'를 첫 번째로 꼽았다. 여가 및 문화 활동 부족(28.4%), 성적 부진(10%) 순이었다.

"방임되는 아이일수록 적응 못하고 일탈할 가능성 커"

방임 아동 비율이 높은 수치를 기록한다는 건 범죄에 아동들이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문제도 있지만 탈선과 정서장애에도 쉽게 노출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박사는 "초등학생들을 부모가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임하게 될 경우 일탈 가능성도 높아지고 학력도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과 선우현 교수도 "저소득층 맞벌이 가정의 경우, 아이들이 방임되는 경우가 많다"며 "교육과 보살핌이 강조되는 시기에 다른 또래에 비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학교, 또래들과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될 가능성이 크다"며 "심각해지면 장애 수준의 발달장애, 정서장애 등을 가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시소아청소년정신보건센터가 2008년에 전국 지역아동센터 아동 1만5709명을 조사한 결과 빈곤층이 중산층에 비해 정신질환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가 빈곤층은 15.09%, 중산층은 13.03%였고 사회공포증은 빈곤층이 3.39%, 중산층이 2.4%를 차지했다.

또한 빈곤 아동일 경우 공격성, 불안-우울, 비행 등에 관한 수치가 일반 아동보다 더 높은 걸로 나타났다. 선우현 교수는 "부모나 멘토 등의 역할을 하는 이가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상호작용을 해주지 않을 경우, 정서적으로 방임된다고 한다"며 "저소득층 같은 경우, 일반 가정과 비교해 물리적 방임뿐만 아니라 정서적 방임의 정도도 높다"고 수치가 높은 이유를 설명했다.

▲ 해외 연수를 떠나고 있는 초등학생들. ⓒ연합뉴스

그나마 있는 시스템도 원활히 운영 어려워

이렇게 사회적 '돌봄'이 필요성은 절실하지만 제도적 장치는 아직까지 미비한 실정이다. 2006년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아동지표를 보면 돌봄 서비스를 받는 아동은 지역아동센터에서 6만8050명, 방과후 아카데미에서 8000명, 방과후 보육에서 1만7699명, 방과후 학교에서 30만 명, 방과후 초등보육에서 5만 명 등 44만3749명이었다. 반면 돌봄이 필요한 빈곤 아동은 100만 명을 넘는 실정이다.

그나마 마련된 돌봄 서비스도 저소득층 아동이 이용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방과후 수업의 경우 비용 때문에 여러 과목을 수강할 수 없다. 현재 정부에서는 저소득층 아동이 방과후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연간 30만 원 가량의 바우처(무료수강권)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 금액으로는 1년에 한 과목에서 두 과목의 수업만을 들을 수 있다.

인천의 한 현직 교사는 "한정된 수강권 때문에 어떤 아이는 몰래 들어와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듣기도 한다"며 "아이들의 위축된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지역아동센터의 상황도 열악하다. 정부는 2009년 전국 3500여 개 지역아동센터를 대상으로 상대평가를 실시, 하위 5%에 해당하는 150여 개의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했다. 중단된 지원액은 센터별로 월평균 320여만 원 규모.

이로 인해 서울 2곳, 경남 2곳 등이 폐쇄됐다. 전국 30여 개 센터는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고 20여 개 센터는 아동 수를 줄였다. 이광진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국 간사는 "보건복지가족부는 급식비를 뺀 공부방의 월 운영비만 600만 원이라는 정책연구보고서를 내놓았지만 정작 공부방에 지원되는 금액은 그것의 절반 수준"이라며 "문제는 상대평가를 통해 그것마저도 삭감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적으로 아동을 관리해 줄 수 있는 사회 지원시스템 확충돼야"

엄민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아동을 돌보는 시스템은 학교와 지역, 즉 복지센터 두 곳에서 이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아이를 돌봐주고 식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엄민용 대변인은 "방과후 수업, 지역아동센터 등이 그런 시스템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승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방임되는 아동들을 위해서는 현재 마련된 돌봄 시스템을 보강,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며 "또한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들을 발굴해 공공영역, 즉 시스템에 연결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선우현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저소득 맞벌이 가정 아동의 경우, 방임되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라며 "환경적으로 관리를 해줄 수 있는 사회 지원시스템이 확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우현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외국의 경우, 방임되는 아동들을 위해 정신적인 부분도 돌보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며 "우리나라도 단순히 물리적으로 돌보는 것만이 아닌, 아동들에게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생님 배정 등이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자녀의 학습이나 경험의 기회가 차이가 나는 것은 양극화의 한 단면이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 사회가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 대한 공적 책임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느냐다.

여름방학이 한창이다. 하지만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방학은 그저 방임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기간에 불과하다. 어떤 아이들은 '무더위'보다 훨씬 더 힘겨운 '무관심'과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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