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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기회주의자' 소리 안 들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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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경필, '기회주의자' 소리 안 들으려면…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진짜 보수'에 대한 '의지'를 보여라

얼마 전 원희룡 의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지난 5월 20일 천안함 합동조사단 발표 직후 그 발표를 전폭 지지한 원 의원의 글을 보고 기가 막혔었다.

나는 합동조사단 발표에 거짓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일 뿐이지 확실히 아는 것은 없다. 분명한 것은 그 발표 내용이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점은 그 후 합동조사단이 당시 발표 내용에 여러 가지 수정을 가한 사실만으로도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아무리 믿어주고 싶어도 믿어주기 힘든 이런 발표를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정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이 선뜻 받아들여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태도도, 합리적인 태도도 아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거짓말에, 그나마 문법조차 못 맞춘 거짓말에 부화뇌동할 수 있는 사람은 올바른 정치인도 아니고 올바른 지식인도 아니다. 앞서의 글에서 천안함 사태를 한국 보수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본다는 말을 했거니와, 그에 앞서 가짜 지식인의 시금석이기도 하다.

그런데 남경필 의원이 '가짜 보수'를 버리고 '진짜 보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는 소리가 들린다. 어? 남경필-원희룡은 한 세트로 보통 통하는데, 남경필은 다른가? 리트머스 시험지를 들이대고 싶은 생각에 얼른 "남경필 천안함"을 검색해 봤다.

남경필 의원, 이 시험은 합격이다. 4월 21일엔가? 천안함 조사에 6자회담 참여국인 일본, 러시아, 중국이 참여하기 바란다는 의견을 발표했다고. 한나라당 의원이 합동조사단 운영의 문제점을 앞장서서 까발리고 나서기까지 바랄 수 있는가? 그런 식으로 해서는 설득력이 모자라리라는 의견을 이렇게 에둘러서라도 표현하면 좀 좋아? 대통령의 대응이 훌륭했다고 한 5월 하순의 발언은 좀 거시기하지만, 정치인이 그 정도 말도 못하겠나.

'진짜 보수'를 논할 치명적 결격 사유가 없다고 보고 그가 내세운 '진짜 보수'의 요건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남경필 진짜 보수"를 검색했는데 목록 꼭대기에 이런 글 하나가 보였다. <동아누리>에 올라온 글이다.

"운동권 같은 남경필은 항상 중도 타령했습니다. 4대강 보다 비정규직 대책 세워야 한다고 야당처럼 이명박을 공격. 남경필은 이재오, 김문순, 박형준처럼 김대중, 노무현, 민주당, 김정일 비판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한나라당만 씹고 정부를 비난하는 짓만 했습니다.

이런 인간이 당대표 출마하면서 한나라당 내 '가짜 보수들' 지칭하면서 보수를 씹으면서 남경필 자신이 진짜 보수인 척. 아주 더러운 야비한 짓입니다"


이게 정말? "한나라당만 씹고 정부를 비난하는 짓만" 했다고? 그러면 '진짜 보수' 맞잖아? 그의 '진짜 보수' 주장을 서둘러 찾아본다. 척결해야 할 '가짜 보수'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1. 병역과 납세의 의무 제대로 안 지키면서 튼튼한 국가 안보 말하는 가짜 보수
2. 봉사 제대로 안 하면서 서민정당 말하는 가짜 보수
3. 친이 친박 계파 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면서 화합과 국민 통합 말하는 가짜 보수
4.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보수의 가치를 논하는 가짜 보수
5. 자기는 법을 제대로 안 지키면서 국민에게는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가짜 보수
6. 국민들에겐 막말하면서 대통령 앞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가짜 보수


▲ 한나라당의 "개혁 성향 소장파"는 늘 잠재적 지지층의 '블루오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도태와 변신의 양자택일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한나라당에게 그 지지층의 필요가 절실하지 않아서 '무늬' 역할에 만족했던 때문이다. 남경필 의원의 "진짜 보수" 주장이 전당대회용에 그칠지 더 큰 변화의 출발점이 될지는 본인의 자세보다 한나라당의 수요에 따라 결정될 것이지만, 지금 보이는 정도의 진지한 태도 자체가 괄목할 만한 것이다. ⓒ프레시안(김하영)
조금 실망스럽다. 전당대회 경쟁자들을 의식한 워딩의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제대로 된 보수'보다 '제대로 된 인간'의 일반적 조건에 치우친 감이 있다. 그래도 의미 있는 얘기다. '제대로 된 보수'가 되려면 우선 '제대로 된 인간'이어야 하니까. 보수주의자 선발의 예비시험 정도로 봐줄 수 있겠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1번. 남경필 자기는 군대 갔다 왔던가? 안 간 것 같은데? 하지만 군대 안 다녀온 것이 보수주의자의 결격 사유는 아니다. 안 갔다 온 놈이 꼭 자기만 갔다 온 것처럼 설치는 게 문제지, 분수를 알고 엉뚱한 짓만 삼갈 줄 알면 된다. 아무튼 중요한 포인트다. 본인 복무 여부와 관계없이 10점 얹어준다. (원고를 보낸 뒤 <프레시안>에서 남 의원이 군대 갔다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기에 깜짝 놀랐는데, 점수를 좀 올려줄 생각도 들지만 그냥 둔다.)

2번. "봉사?" 이건 내가 잘 모르는 거니까 따질 자격이 없다. 패스.

3번. "계파 싸움"이라. 보수주의자라 해서 계파 싸움 하지 말라는 법 있나? 이건 아무래도 전당대회를 의식한 전술용 같다. 감점 5점. 계파 싸움이 지나친 건 사실이니까 많이 깎지 않는 거다.

4번. "표현의 자유"라. 이건 예비시험이 아니라 본고사 문제 같다. 미디어 법 사태 때 남경필도 찬성표 던지지 않았나? 절차상의 문제에 관해서는 옳은 얘기 꽤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결국 찬성표 던지니까 "기회주의자" 소리를 듣는 거다.

실제로 통과된 미디어 법이 모든 보수주의자가 꼭 반대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찬성하는 소신을 가진다고 보수당에서 제명할 생각 없다. 보수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받드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미디어 법 강행 의도가 표현의 자유 훼손에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명백했고 절차상의 문제가 그 정도 심각했다면 아무리 소신과 부합하는 내용의 법안이더라도 기권은 할지언정 찬성은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자의 도리였다. 다만 천안함 조사 발표 지지처럼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마음 너그럽게 먹고 30점만 깎겠다.

5번. "법치주의." 이것도 본고사 수준 문제인데, 매우 요긴하고 훌륭한 지적이다. 20점 얹어준다.

6번. 국민과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라. 대통령에겐 막말하면서 국민 앞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한나라당 사람을 보면 좋기는 참 좋겠다. 그러나 이것도 보수의 기준으로 요긴한 것이 아니라 안상수를 표적으로 하는 전술용 냄새가 심해서 5점 깎는다.

30점 득점에 40점 감점. '진짜 보수'를 논할 자격이 좀 의심스러운 성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필기고사 성적이고, 실제 행동을 어떻게 해 왔느냐 하는 실기고사가 있다. 위에 옮겨놓은 <동아누리>의 글에서 한나라당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이 남 의원에게 "한나라당만 씹고 정부를 비난하는 짓만" 했다고 불평한 것을 근거로 실기 30점을 준다. 남경필에게 '진짜 보수'를 논할 자격을 인정한다.

그런데 엄정하게 채점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하나 눈감고 넘어간 일이 있다. 4대강이다. 그는 4대강 사업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면서 재정과 민심의 측면에서 속도와 방법의 문제를 제기한다. 현실 정치에서 괜찮은 접근 방법이라고 인정은 한다. 원론 차원에서의 반대보다 현실 차원에서의 반대가 나쁜 정책을 막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재정과 민심을 근거로 곤란하다고 하는 것이면 충분한 반대 아닌가.

그렇게 인정은 하면서도 찜찜하다. 정부의 천안함 대응책이 한반도 평화에 회복 불가능한 훼손 위협을 일으키는 것처럼 4대강 사업은 한반도 자연에 회복 불가능한 훼손 위협을 일으키는 정책이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놓고는 현실적 효과보다 원론적 타당성을 중시할 필요가 보수주의자에게 있을 것 같다.

안일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에서 상식과 합리성의 측면에 너무 경쟁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 개혁성과 상대적 합리성만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렇다면 기회주의라는 말을 피할 수 없다. '진짜 보수'를 진짜로 살리겠다는 의지는 없고, 빈사 상태에 놓아둔 채 그 간판만 써먹겠다는 속셈이니까.

'진짜 보수'가 얼마나 위독한 상태인지 투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가짜 보수'가 날뛰는 동안 잠깐 가려져 있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펴냄)에서 뉴라이트의 책동이 진보에 대한 도전이기에 앞서 보수에 대한 참월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보수주의 가치를 위협하는 특권구조 옹호 세력이 다른 어떤 정치 이념보다 먼저 보수주의를 질식시키는 상황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한나라당을 지지한 일이 없지만 내 주변, 특히 어머니 친구 분들 중에는 한나라당 지지자가 많다. '젊은 보수'가 아니라 '나이든 보수'들이다. 대안이 없어서 한나라당을 그대로 지지하고는 있지만 갈수록 맥이 빠지고 있다. 저러다간 정동영 의원이 말리지 않아도 투표소에 잘 안 가실 것 같다.

몇 달 전 친구 두 분을 모시고 요양원 다녀올 때 생각이 난다. 4대강 얘기를 꺼내시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자'들 성토하시는 것이 만일 나도 반대자라면 교육을 시켜주실 태세였다. 나는 4대강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잘 모른다고 납작 엎드린 다음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환경영향평가까지 회피하며 추진하는 데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그럴 리가 있냐고 펄쩍 뛰시다가, 절차 문제는 내가 확실히 파악한 것이라고 보증을 서며 요점을 설명해 드리니까 침울해지신다.

내가 원래 정의감이 약한 사람이라서 노인들 응대를 잘해 드린다. 알 것 알 만큼 아는 사람이 그분들 입장에 서서 생각하려 애쓰니까 내게 정치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요즘은 노인들끼리도 정치 얘기에 흥이 안 나시는 것 같다. 며칠 전 몇 분 모시고 앉았을 때 한 분이 천안함 얘기를 꺼냈는데, 몇 마디 말씀도 못 나누고 한숨만 폭폭 쉬다가 말았다. 그래서 한국의 보수주의가 근년 위기에 빠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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