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는 30일 해명자료를 내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내용과 관련해,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점이 없도록 완벽한 사생활 보호 대책을 마련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와 국제공항을 운영하는 인천항공사 및 한국공항공사는 전신스캐너에 대한 시험 운영을 거쳐 7월 중순부터 이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설치된 전신스캐너는 검색 이미지를 보관하거나 출력·전송·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또한 얼굴 등 신체 주요부분은 희미한 이미지로 처리, 국토부는 우려되는 인권 침해 요소를 제거했다는 입장이다.
특히 1차 보안검색에서 의심이 되는 승객이나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있는 요주 승객에 한해 전신스캐너를 사용할 예정이라 우리나라 국민이 이를 통해 검색을 받게 되는 경우는 없을 거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아직까지 권고한 사항을 가지고 국토부에서 수용할지 불수용할지 통보를 해주진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보도된 내용을 보면 사실상 불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듯하다"고 말했다.
▲ 알몸투시 사진. ⓒ국가인권위원회 |
현 정부 들어 정부 기관의 인권위 권고 무시 비일비재
최근 인권위의 조사로 불거진 양천경찰서의 피의자 고문 파문으로 인해 경찰 전체가 들썩이고 있지만 현 정부 들어 정부 기관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사항은 거의 무시되고 있는 수준이다.
올해 초 서울 마포경찰서 경관들이 개인의 집을 방문, 동의 없이 캠코더를 촬영한 것을 두고 인권위는 주의조치를 권고했으나 해당 서장은 이를 묵살했다. 쌍용차 평택공장 농성 사건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지난 5월 당시 경찰이 과도하게 농성장을 봉쇄, 인권을 침해했다고 경찰청에 재발 방지를 권고했으나 이 역시 거절당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인권위가 2009년 경찰에 개선을 권고한 '인권침해 진정 사건' 53건 가운데 12건(22.6%)이 '검토 중'으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가 권고를 하면 수용할지 말지를 답변해야 하는데 아예 답변조차 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알몸 스캐너' 재검토 권고 무시와 같이 정부의 인권 침해 정책에 대한 우려도 철저하게 묵살당하고 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인권위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8년부터 2009년 9월까지 인권에 관한 법령·제도·정책·관행에 대해 8건의 권고를 국가 기관에 내렸다. 하지만 이를 수용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2008년의 경우, 7건, 2009년의 경우 1건의 권고를 했지만 국가기관은 이 중 단 1건만을 '일부 수용' 했다.
문제는 정부나 해당 기관이 인권위 권고를 무시해도 인권위가 이행을 강제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권고한 사항에 대해서는 각 부처들이 수용을 할지 말지를 통보해 준다"며 "만약 불수용 통보를 할 경우, 그 다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고 말했다.
"권고는 정권 성향과 전혀 관련 없는데도 이런 현상이…"
이렇다보니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의 기준이 상당히 후퇴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국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위 권고안을 정부 기관에서 따르지 않고 있다"며 "인권위 권고 내용이라는 게 정권 성향과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애석하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이전 정부에서도 권고 사항을 두고 충돌이 있었지만, 당시엔 가능하면 수용하자는 방향으로 나갔다"며 "청와대 등 핵심층에서 인권위를 존중해주라는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위원은 "정권 핵심층에서 인권위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보니, 하위 부서에서도 인권위 권고를 따르는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위원은 "과거의 경우 큰 정치적 이슈는 어려웠지만 작은 이슈들은 모두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정치적 성향이 없는 사안들도 안 받으려는 경향이 매우 높아졌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권고 기능이라는 게 결국 윤리적 기능을 하는 장치"라며 "이것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에 따라 인권의 척도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권위의 본래 기능에 대해 사회가 약속을 지키고, 권고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한국 사회의 인권이 후퇴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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