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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용하 씨 자살, 이래도 '의료 민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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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용하 씨 자살, 이래도 '의료 민영화'인가?

[기자의 눈] 한 한류 스타의 죽음이 남긴 숙제

고(故) 박용하 씨가 30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이는 서른 셋. 그는 배용준, 최지우와 함께 연기한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한류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의 죽음이 낳은 충격파는 한국의 경계를 훌쩍 넘어 아시아를 흔든다.

아시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던 그가 갑작스레 자살을 결심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유서가 없는 탓이다. 그러나 부친의 위암 치료 부담, 사업 상 어려움 등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리라는 추측에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다. 박 씨의 부모가 받을 충격을 떠올리면, 입을 열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숨짓게 되는 이유는 또 있다. '한류 스타'조차 병원 치료비 때문에 자살을 고민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렇다면, '스타'가 아닌 서민은 말할 것도 없다.

▲ 故 박용하 씨. 생전의 모습. ⓒ뉴시스
가족 가운데 한 명이 암처럼 큰 병에 걸리면,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이 난다. 우선 경제적 부담 때문이고, 두 번째는 간병에 따른 부담이다. 천문학적인 치료비와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간병 부담이 겹치면, 어지간해선 견뎌낼 재간이 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 말은 지금도 그대로 통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고(故) 박용하 씨가 다시 확인시켜줬다.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세상을 뜬 그는, 지독한 불효자로 남게 됐다.

문제는, 이런 불효자가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전망이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은 64퍼센트대에서 62퍼센트대로 축소됐다. 현 추세대로라면, 50퍼센트대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50퍼센트대가 되는 순간, 국민건강보험은 민간의료보험과 경쟁관계가 된다. 삼성생명 등 민간의료보험사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재정 지원을 줄여야 할 상황으로 내몰린다.

여기에 겹쳐, 전체 의료비 지출은 급증하는 추세다. 급격한 인구 노령화가 주요 이유다. 늙으면 아무래도 병원 신세 질 일이 많다. 또 의료기관이 갈수록 영리추구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도 한 이유다. 의료는 전형적인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환자 입장에서 의사가 권하는 진료를 거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특징이 정책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까닭에, 불필요한 과잉진료가 판을 친다.

이런 흐름을 방치하면,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은 한 순간 수직 하락한다. 의료정책 전문가들은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이 50퍼센트대에 접어드는 순간을 '변곡점'으로 꼽는다. 그때부터 급격히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결국,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에 묘사된 상황을 한국에서도 보게 된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런 상황이 뻔히 예상된다는 점, 그리고 해법 역시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입자 본인 부담금을 올려서라도,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확대하고, 그래서 보장성 수준을 더 높이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 운동에 참가하는 전문가들은 1인 당 건강보험료를 평균 1만1000원씩만 더 내면,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을 90퍼센트까지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실현된다면, 큰 병에 걸려도 연간 치료비가 100만 원을 넘지 않게 된다. 고(故) 박용하 씨가 겪었던 고민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해소되는 것이다.

물론,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성공하려면 전제가 있다. '과잉진료'를 통제하고, 건강보험 재정 지출에서 낭비 요소를 없애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어난 건강보험 재정이 병원장과 약국 운영자의 배만 채워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의료 행위 하나하나에 각각 재정 지원을 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대표적이다.

고(故) 박용하 씨의 또 다른 고민거리였던 간병 문제 역시 대안 논의가 풍성하다. 보건의료노조가 추진하는 '보호자 없는 병원' 운동이 이런 사례다. 이는 이른바 '운동권'에서만 나온 주장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7년 4개 병원에서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 사업을 했었다. 보건의료노조의 주장은 이를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정규직 간호사와 간병인 고용을 대폭 늘리도록 의무화해서, 일자리도 늘리고 간병 부담도 줄이자는 주장이다.

총 고용 인구 가운데 보건의료산업 종사자 비율이 OECD 평균 6.12퍼센트인 반면, 한국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100병상당 간호사 수는 136.7 대 27.9로 20퍼센트 대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정규직 간호사와 간병인 고용을 늘릴 여지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싶다.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다 나와 있는데 말이다. 이미 나온 처방이 현실에서 구현되면, 병원비와 간병 부담으로 자살을 택하는 일은 고(故) 박용하 씨로 끝날 듯 싶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다. 기획재정부는 보건복지부의 냉담한 태도에 아랑곳없이 '영리병원'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영리병원' 도입은 건강보험 보장성 약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래야만 '영리병원'이 존재할 수 있다. 대통령은 한술 더 뜬다. 여권이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인 지난 6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보건복지 비서관에 정상혁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했다. 정 교수는 의료계에서도 손꼽히는 의료 민영화 강경파다. 이 대통령 역시 한류 드라마를 즐겨 봤다면, 그래서 박용하 씨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면, '의료 민영화'에 미련을 버리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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