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직업을 갖고 있어서 이렇게 잘 뛰나. 보통 인간으로는 그런 순간 스피드를 내기란 불가능하다. 약물 복용? 숨어 있던 슈퍼 히어로? 다행히 한달음에 도망치는 그의 목에는 그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사원증이 걸려있었다. 손 빠른 사진기자들이 멋지게도 인증 샷을 찍어 두었다.
'MBC'가 새겨진 목걸이에 아무 글귀 없이 사진만 박힌 사원증. 어이구야. 얼핏 보면 '가카'표 낙하산 인사에 맞서 줄기차게 싸워오고 있는 이름도 유명한 문화방송(MBC) 기자였다. 기자가 이렇게 빨리 뛸 수 있는 건가. 운동이라는 건 숨 쉬는 것과 숟가락 드는 것 이외에는 일체 하지 않는 기자가? 그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진다. 혹시 MBC에서 비밀리에 북한에 잠입 취재를 시키려 특수훈련을 시킨 기자는 아닐까.
▲ 29일 압수수색을 당한 한국진보연대 사무실 인근에서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한 사나이가 MBC 사원증을 쥐고 빛의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민중의 소리 |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추측은 틀리고 말았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국정원 직원이라고 했다. 그는 압수수색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을 저지하다 사원증을 들켰다.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어쩐지 뜀박질 하나 예술이더만. 특수훈련을 받지 않고는 그렇게 뛰진 못하지. 아마 그 친구는 달리기 특채로 뽑혔을 거다.
근데 왜 하필, 굳이 MBC 기자를 사칭한 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거기에는 기자가 많으니 걸리지 않을까봐? 아님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하니 이런 현장에서 사찰하기 편하리라 생각한 건가. MBC 기자들에게 들킬 염려는 안했을까? 그는 MBC 기자가 '너 누구야'라고 외치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쁜 머리 한참 굴리자 답이 나온다, 그가 MBC를 사칭한 것은 복잡하고 중의적인 의미가 있을 거다. 심오하고 위대한 곳에서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함부로 사칭을 하겠는가. 생각해보자. 문화방송, 즉 MBC. 풀어서 이야기하면 'MB씨'가 된다. 우리의 위대한 가카의 이니셜이다.
사칭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대통령 정도는 사칭해야 '가오'도 잡지 않겠나. 멋지다. 사찰을 하려면 대통령 정도는 사칭하면서 사찰해야지. 안 그런가.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이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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