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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동북아 초토화 '백두산 대폭발', 다시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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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동북아 초토화 '백두산 대폭발', 다시 초읽기?

[인터뷰]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 펴낸 소원주 박사

1981년 일본의 한 과학자가 일본 북부 지방에 널리 퇴적된 화산재의 원인을 백두산으로 지목했다. 서기 900년대의 어느 날 일본 열도에 지층을 남길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화산 폭발이 백두산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여러 가지 증거로 미뤄보건대, 이 폭발은 지난 2000년간 지구상에 일어났던 화산 폭발 중 최대 규모였다. 이 과학자의 이름은 마치다 히로시 박사.

1992년, 마치다 박사는 새로운 가설을 제기했다. 바로 이 백두산 폭발로 10세기 동북아시아 강대국 중 하나였던 발해가 몰락했다는 것. 이 가설은 곧바로 역사학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926년의 발해 멸망 사실이 언급된 공식 사서인 <요사(遼史)>를 포함한 동시대의 기록이 일제히 백두산 폭발에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00년 전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계 최대의 화산 폭발이 있기는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큰 폭발이 있었는데도 아무도 기록을 남기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발해가 순식간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진짜 원인이 정말로 화산 폭발일까?

이뿐만이 아니다. 백두산의 화산 활동이 심상치 않다. 최근 백두산 인근에서 지하의 마그마 활동이 활발하면 나타나는 화산성 지진이 100회 이상 관측되고 있다. 천지 주변이 융기하고, 인근 온천의 수온이 높아지는 것도 폭발의 징후다. 백두산은 또 한 차례 포효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사이언스북스 펴냄)을 펴낸 소원주 박사(울산광역시교육청 장학관)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의 해답을 구했다. 소 박사는 1989~1991년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히로사키 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했다. 그는 이 때 한국인 최초로 일본 북부의 백두산 화산재를 접했으며, 그 인연으로 20년 넘게 '백두산 대폭발'을 연구했다.

▲ 최근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사이언스북스 펴냄)을 펴낸 소원주 박사(울산광역시교육청 장학관). 소 박사는 20년 넘게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을 연구했다. ⓒ프레시안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의 1000배 규모"

프레시안 : 서기 900년의 어느 날 백두산 대폭발이 있었던 게 사실인가?

소원주 : 오늘날 백두산 대폭발의 사실을 부정하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 1981년, 마치다 박사가 홋카이도, 도호쿠 등 일본 북부에서 발견되는 화산재 층이 백두산 대폭발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나서부터 주로 일본에서 이뤄진 많은 연구를 통해서 백두산 대폭발이 10세기에 실제로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그 규모도 엄청났다. 10세기에 있었던 백두산 대폭발로 약 100세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분출물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이 정도의 양이라면 남한 전체를 1미터 높이 화산재로 덮을 수 있다. 이런 분출량은 과거 2000년간, 즉 서기 이래 지구상에서 일어난 화산 분화 중 최대 규모다. 화산 폭발로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는 초토화가 되었을 것이다.

서기 79년 화산으로부터 10킬로미터 떨어진 폼페이를 순식간에 멸망시켰던 이탈리아의 베수비오 화산 폭발도 이런 백두산 대폭발과 비교하면 애들 장난이다. 백두산 대폭발은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2세제곱킬로미터)보다 50배 이상의 마그마를 분출했다. 또 백두산 대폭발은 최근에 유럽 교통을 마비시킨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의 1000배 규모다.

백두산 대폭발, 왜 기록이 없는가?

프레시안 : 그렇게 엄청난 대폭발이 아무런 기록이 없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

소원주 : 물론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과연 백두산 대폭발은 10세기 동북아시아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이었을까? 생각해보자. 백두산 대폭발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백두산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은 난데없이 화산에 의한 재해를 입어도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에 당시에 동북아시아가 안정된 세력에 의해서 지배를 받았다면, 백두산 대폭발에 관한 기록이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당시는 그럴 만한 사정이 아니었다. 잘 알다시피, 10세기는 중국에서 당나라가 907년에 멸망하고 5대 10국으로 불리는 지방 정권이 난립하던 때였다.

동북아시아에서는 거란의 요(916~1125년)가 발흥해 발해를 멸망시키고 그 땅에 사실상 실체가 없었던 동단국(926~982년)을 세웠다. 한반도 역시 후삼국의 격랑 속이었다. 이런 대혼란의 시기에 유례가 없는 백두산 대폭발이 겹쳤다면? 충분히 기록이 없었을 만한 정황이지 않은가?

더구나 <삼국유사>, <고려사> 등에 서술된 천문, 기상, 지질학적 기록을 검토해 보면 자연재해와 같은 흉사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사실이 발견된다. 더구나 고려의 입장에서 보면, 백두산 대폭발은 건국할 즈음에 영산이 폭발한 것이니 더욱더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정황을 두루 종합해 보면 백두산 대폭발의 기록 부재가 전혀 설명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발해 멸망의 미스터리…열쇠는 '백두산 대폭발'

프레시안 : 아무리 그래도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의 요가 백두산 대폭발을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납득이 안 되는데….

소원주 : 만약 거란이 발해를 침략하기 전에 백두산 대폭발이 일어났고, 따라서 발해의 국력이 쇠진해 있었다면, 거란은 발해 침략을 정당화하고자 백두산 분화 사건을 의도적으로 은폐할 필요성이 있었다. 또 발해를 침략하고 발해를 멸망시킨 이후에 백두산이 대폭발을 했더라도 거란은 이 사건을 은폐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명백한 흉조기 때문이다.

사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발해가 멸망하고 400년이 지나고 나서야 편찬된 <요사>에 백두산 대폭발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니라 발해 멸망을 둘러싼 미스터리다. <요사>를 보면, 동북아시아 최강국이었던 발해가 채 보름 만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으로 나온다. 발해는 어쩌다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진 것일까?

더구나 발해의 수도는 다섯 곳(상경, 중경, 동경, 서경, 남경)이었다. 다른 수도에서 원군이 올 가능성이 있는데도 발해는 상경을 포위당한 지 닷새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스터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고려사>를 보면, 거란에 의해서 멸망하기 전부터 많은 발해인이 고려로 망명하는 길을 택했다. 그들은 왜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또 있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발해를 점령한 거란은 기이하게도 발해의 통치를 포기했다. <요사>를 보면, 거란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 두만강, 쑹화 강의 세 방면에 뻗은 강의 유역에 있는 많은 마을을 폐쇄했다. 멀쩡한 마을을 왜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까? 바로 이런 미스터리야말로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프레시안 : 바로 그런 정황은 발해가 백두산 대폭발로 몰락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소원주 : 그렇다. 백두산 대폭발은 엄청난 양의 분출물을 지상으로 배출해서 백두산 인근을 쓸어버렸을 것이다. 이 화산재는 동해 쪽으로 확산해 발해의 주요 거점들, 즉 중경, 동경, 서경, 남경 등의 도시에 큰 피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남경, 서경은 어쩌면 폼페이처럼 화산재에 덮였을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백두산 대폭발은 대홍수를 야기했을 수도 있다. 백두산 대폭발이 겨울에 있었다면, 폭발과 동시에 산 정상에 있는 수억 톤의 눈이 녹아서 화산재가 물과 섞인 화산 이류가 해일처럼 산 사면을 따라 내려갔을 것이다. 화산 이류는 압록강, 두만강, 쑹화 강을 휩쓸며 마을을 차례차례 매몰시키며 하류에 대홍수를 초래했을 것이다.

백두산으로부터 북쪽으로 250킬로미터 떨어진 상경이야 이런 직접적인 피해로부터 안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지가 잘려나간 마당에 머리가 붙어있다고 한들 발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거란이 덮쳤다면, 자포자기하며 항복하는 길 외에 다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백두산 대폭발로 동북아 문명권 대붕괴"

▲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소원주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프레시안 :
백두산 대폭발이 발해가 멸망한 926년보다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는 반론도 강하다.

소원주 : 책에도 언급했듯이 일본 나고야 대학의 나카무라 도시오 박사가 2002년 백두산 인근의 화산 퇴적물에 묻혀 있는 나무의 나이테를 이용해 폭발 시점을 측정했다. 화산 폭발과 동시에 숯이 된 상태로 보존된 나무의 나이테를 확인해서 백두산 대폭발의 시기를 가늠해보는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나카무라 박사는 백두산 대폭발이 937년(오차±8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오차를 염두에 두더라도 926년 이후다. 그러나 백두산은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최근 호수 바닥의 퇴적물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백두산 폭발 시기가 930년이다. 이처럼 여러 연대가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 연대가 확증된 것은 아니다.

백두산 대폭발 연구를 시작한 마치다 박사는 최근까지 백두산 인근에서 시료를 채취해 나무의 나이테를 통한 화산 폭발 시점 측정을 계속하는 중이다. 2007년 미국 애리조나 대학은 이 시료로 917.1~943.3년(88.9퍼센트)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프레시안 : 926년이라는 시점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이런 지적도 있다.

소원주 : 그렇다. 앞으로 연구가 더욱더 축적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정확한 백두산 대폭발 시점이 나올 것이다. 그것은 926년 이전일 수도 있고 이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백두산 대폭발이 지금 알려진 것과 달리 한 차례가 아니라 수차례였을 수도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백두산 대폭발이 926년 이전이냐 이후냐가 아니다.

어쨌든 백두산 대폭발은 있었고, 그것은 발해를 대표로 하는 10세기 백두산 인근에 터를 닦고 살았던 이들에게 엄청난 재앙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수백 년에 걸쳐서 세웠던 문명은 한 번의 혹은 여러 번의 폭발이 주는 타격 때문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백두산 대폭발을 이겨낼 문명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백두산 대폭발로 인한 이 문명의 몰락이다. 926년 거란이 발해의 수도 상경을 함락한 것은 이 문명의 몰락 속에서 나타난 한 가지 에피소드일 뿐이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이 에피소드에만 매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

"백두산 언제든지 폭발 가능하다"

프레시안 : 지금 다시 백두산 대폭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 일이 1000년 전의 일이 아니라 당장 오늘내일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두산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소원주 : 그렇다. 백두산의 분출물 100세제곱킬로미터에 들어 있는 순수한 마그마는 약 30세제곱킬로미터 정도다. 통상 불안정한 화산은 한 차례의 화산 폭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그마의 10분의 1을 분출한다. 따라서 백두산의 지하에는 지금도 약 300세제곱킬로미터의 거대한 마그마 호수가 존재한다.

이런 마그마가 들끓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후가 최근 계속 확인되고 있다. 화산성 지진이 빈발하고, 최근 100년 이내에 볼 수 없었던 백두산 천지의 융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징후다. 더구나 백두산은 10세기의 대폭발 이후에도 마그마 0.1세제곱킬로미터 정도를 분출하는 폭발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있었다.

프레시안 : 수년 내에 백두산이 폭발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소원주 : 백두산의 화력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러나 백두산이 언제 폭발할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은 화산 폭발의 주기나 규칙을 알아내려고 애쓰지만 화산은 결코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1991년 약 700명의 생명을 앗아간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은 주민들이 화산이라고 인식하지도 않았던 뒷산이 갑자기 부풀어 올라 폭발했다.

화산이 언제 폭발할지를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산이 폭발하지 않을 것을 예측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폭발하지도 않을 화산을 가지고 공연히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일이 반복되면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자들이 진짜로 화산 폭발을 경고했을 때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여러 가지 징후를 통해서 화산 폭발의 가능성을 점칠 수는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백두산이 언제든지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그 폭발의 규모는 10세기의 대폭발보다는 훨씬 적은 이번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수준이 될 것이다. 백두산 대폭발 정도 규모의 폭발은 지구 전체 규모에서도 수천 년에 한 번쯤 일어나는 매우 드문 현상이기 때문이다.

"중국 과학자만 바라봐서는 백두산 재앙 못 막아"

프레시안 : 백두산 폭발에 대한 연구가 지지부진한 이유가 최근의 경색된 남북, 북일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소원주 : 백두산이 다시 저지를지 모를 재앙에 대처하려면 이데올로기나 국경을 초월해야 한다. 중국 과학자만 바라봐서도 안 된다. 사실 중국은 화산 폭발 예측 경험이 부족하다. 미국지질조사국(USGS·US geological survey)의 전문가를 투입해서 정확한 데이터를 얻어야 한다. 그들은 전 세계의 화산을 관측했고, 실제로 폭발을 예측한 많은 실적이 있다.

일본 역시 화산이 많은 탓에 화산 폭발 예측을 비롯한 화산 방재 과학의 수준이 높은 편이다. 화산 분화를 예측하려면 경사계(tiltmeter)를 다룰 수 있는 측지 전문가, 화산성 지진과 미동을 판독할 수 있는 지진 전문가, 그리고 '코스펙(correlation spectrometer)'이라 불리는 상관분광계를 다룰 수 있는 화산 기체 전문가가 필요하다.

요즘 백두산 분화 주기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는데, 화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아주 순진한 발상이다. 화산은 모두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방식대로 폭발할 뿐이다.

프레시안 : 8월부터 일본 오사카의 한국인 학교로 부임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일본에서 백두산 폭발에 관한 연구를 계속 진행해볼 생각인가?

소원주 : 앞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나라의 젊은 과학자들이 우리의 화산에 정면으로 달려들어 과거의 퇴적물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백두산의 미래 화산 활동의 예측, 그리고 화산 재해 방재 분야에서도 공헌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그들의 연구를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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