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타협 가능성을 내세운 지점은 시간이다. 원천적으로 금지하되, 금지하는 시간의 폭은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이 거론하는 타협 지점은 장소다. 야간 집회를 원천적으로 허용하되, 구체적인 장소에서는 금지하는 안은 가능하다는 것이 민주당 입장이다.
겉으로는 법률 조항을 놓고 싸우지만 여야가 얻고자 하는 진짜 목표는 서울시청 앞 광장이다. '일정 시간 대의 집회 원천 금지'를 내세우는 한나라당 내에는 2008년 촛불집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관련법을 논의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백원우 의원은 이날 "한나라당이 계속 '촛불집회 금지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전날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추가 협상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제2의 촛불집회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민주당에게 서울시청 광장은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수확물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의 다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취임 후 첫 과제로 '서울시청 광장 개방 조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조례가 만들어져도 한나라당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시청 앞 광장에서의 야간 '촛불집회'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한나라 '시간 줄여' 수정안 제시…민주 '위헌 받은 사전허가제와 다를 바 없다'
▲ 겉으로는 법률 조항을 놓고 싸우지만 여야가 얻고자 하는 진짜 사냥물은 '서울 시청 앞 광장'이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은 27일 수정안을 제시했다. 행안위 한나라당 간사인 김정권 의원은 "야간 옥외집회의 금지시간을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로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은 야간 옥외집회가 금지된 시간이라도 집회 장소의 관리자가 동의할 경우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제안했다.
민주당은 28일 이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백원우 의원은 "원칙적 금지, 선별적 허용을 담은 한나라당의 수정안은 원칙적 허용, 선별적 규제라는 민주당의 입장과 여전히 많은 간극이 있다"고 말했다.
'관리자의 동의'라는 예외조항에 대해서도 백 의원은 "서울 시청 앞 광장의 관리자는 오세훈 시장인데 이렇게 되면 위헌 판결을 받은 사전허가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 강행처리 감행할까?
여야의 의견 대립이 좁혀질 기미는 현재로서는 없다. 백원우 의원은 "금지 장소를 확대하는 것은 얼마든지 검토가 가능하지만 원칙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현재 주거 지역, 학교, 군사시설 등으로 한정돼 있는 선별적 규제 장소를 청와대나 정부종합청사 인근까지 확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야간 집회의 원천 허용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안경률 행안위 위원장(한나라당)은 "야간에 발생하는 집회 및 시위로 인해 선량한 국민이 겪어야 할 고통과 불편을 줄이려면 집시법 개정안은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일부 시위대의 자유로운 집회를 위해 국민의 쉴 권리 및 민생치안의 포기는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반드시 6월 임시국회 내에 집시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민주당은 의견 접근 없이 행안위 개최에 협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28일 오전 열린 행안위에도 전원 참석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행안위를 열어 집시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다 하더라도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는, 정상적인 절차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리적 시간의 문제도 있는데다, 민주당 소속인 우윤근 법사위 위원장이 여야 합의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상정이 곤란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한나라당이 상임위에서 단독처리하고, 28일과 29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박희태 국회 의장이 이를 직권상정하는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로는 "집시법 개정안의 강행통과를 시도할 생각은 없다"(김무성 원내대표)는 입장이지만, 일부에서는 단독으로라도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강경론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집시법 개정안이 오는 30일까지 처리되지 못할 경우 7월 1일부터 야간 집회는 전면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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