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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원희룡, 당신을 보수당에서 제명한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천안함은 한국 보수의 리트머스 시험지

합동조사단의 조사 발표를 통해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에 의한 것임이 명백히 밝혀졌습니다. 어뢰의 부품들, 선체 변형 판독, 시뮬레이션, 그리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종합하여 얻어진 신뢰할 만한 결과입니다. (…) 단호하고 치밀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국가 안보의 큰 틀에서 국론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이 위기를 한반도 평화의 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앞서간 46명 애국 장병들의 희생을 승화시키는 길입니다.

원희룡 의원이 지난 5월 20일 블로그(☞바로 가기)에 "북한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란 제목으로 올린 글의 일부다. 나는 두 가지로 놀랐다. 원 의원이 이런 글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생각지 못한 것이 한 가지고, 또 한 가지는 이 글에 붙은 수십 개 댓글 내용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경악을 표하며 기대를 거두고 지지를 접는다는 내용이 많았다.

원 의원에 대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적극적 기대보다는 '어떤 짓은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소극적 기대를 갖고 있었다. 소극적 기대라 해서 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 기대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3년 전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열중해서 '어떤 짓은 할 수 없는' 사람인지를 잘 살피지 못했던 것 같다.

소극적 기대를 내가 꽤 명확히 갖게 된 것은 직접 마주쳐본 일이 있기 때문이다. 2001년이었던가? <제민일보> 논설위원 자격으로 그를 인터뷰할 때, 주견이 뚜렷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소소한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을 사람 같았다.

지금도 생각난다. 당시 자기네 당 중진들이 후배 의원들을 마치 군대 고참이 졸병 다루듯 하는 풍속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던 일이. 그때 나는 그의 배짱을 느꼈다. 내 능력과 노력으로 정치하는 건데, 불합리한 '명령'까지 따를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을. 공천과 정치 자금 때문에 졸병 노릇을 자청하던 정치 풍토에서 앞장서 벗어날 만한 인물로 나는 봤다.

그 자신감에 근거도 확실해 보였다.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제주도에서 고등학교 나오면서 대학입학학력고사 전국 1등을 했을 때였다. 대입학력고사 1등을 배출하기에는 제주도의 환경이 열악할 때였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일이었다. 아마 서울대를 거쳐 사법연수원까지 내내 1등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검사 생활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정치를 지향하게 되었다는 이력을 보면 뚝심도 있는 사람 같았다.

요컨대 원 의원에 대한 내 신뢰감은 그의 든든한 '밑천'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만한 능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한나라당을 필요로 하기보다 한나라당이 그를 더 필요로 할 테니 밑천 딸리는 사람들과 달리 당당한 태도를 취할 수 있으리라는 짐작이었다. 이후 그의 활동을 면밀히 살펴보지는 않아도 더러 들리는 얘기로 그 짐작이 대개 들어맞는 것 같았다. 지금 그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들을 봐도 나랑 비슷한 신뢰와 기대를 그에게 걸어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 원희룡은 내가 대면해 본 한나라당 의원 중 '합리적 보수'의 구현에 앞장까지 서지는 않아도 동참은 할 만한 인물로 큰 기대를 건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보수주의란 것이 평화건 국익이건 자신의 출세보다 뒷전에 놓는 것이었던가? 그의 합리주의란 것이 정치적 득실에 따라 합조단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던가? ⓒ프레시안(최형락)

원 의원이 통상외교통일위원장에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분야에서 그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나 궁금한 생각이 들어 블로그를 찾아가 보고 깜짝 놀랐다. 위에 옮겨놓은 것 같은 '듣보잡스러운' 글을 그가 어엿이 내놓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첫 문단에서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다고 한다. 그리고 끝 문단에서는 이 위기를 한반도 평화의 전기로 만들기 위해 단호하고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고 국론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동조사단 발표를 보고 바로 올린 글 같은데, 대한민국 대입학력고사 수석을 한 두뇌의 소유자가 내용은 차치하고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춘 그런 발표를 보자마자 "명백히 밝혀졌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한나라당에서 그런 주장 하는 사람들 중에는 생각을 '할 줄 몰라서' 그러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원 의원의 경우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된다.

그리고 이 사람, '평화'라는 걸 어떤 걸로 생각하는 거지? 단호하고 치밀한 대응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면 상대방이 겁나서 꼼짝 못하게 하는 게 '평화'라고 생각하는 건가? 국론을 하나로 모아야 이뤄지는 것이라면 힘센 사람이 다른 의견을 모두 억누르는 게 '평화'라고 생각하는 건가?

전체주의 사회가 '평온'할 수는 있다. 유신시대의 대부분이 우리 현대사에서는 비교적 '평온'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는 매우 적었던 시기였다. 폭력이 없는 상황을 '평화'라고 한다면.

미디어법 강행 과정 중 원 의원의 행적을 살펴보지는 않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생각하는 원희룡이라면 저런 억지에 묵묵히 동조할 리가 없는데,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걸까 의아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웃기지도 않는 '당론'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나는 원 의원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보다 '어떤 짓은 할 수 없는' 자세를 기대해 왔다. 설령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 하더라도 5월 20일의 합동조사단 발표가 진실을 밝히는 데 형편없이 미흡한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는 수능 전국 1등의 두뇌까지도 필요 없다. 미흡한 주장을 바탕으로 평화와 국익을 해치는 짓은 원 의원이 할 수 없는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년에 여기 쓴 글을 모아 얼마 전 책으로 낼 때 홍세화 선생이 '추천사' 명목으로 보수주의자의 함정을 짚어준 매서운 말씀이 떠오른다.

"그가 바탕을 두고 있는 현실 논리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바꾸어야 할 현실'을 지나치게 압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데, 스스로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지키려고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내가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한 한 시도 잊어서 안 될 말씀으로 가슴에 새겨놓은 구절이다. '바꾸어야 할 현실'을 크게 보려는 홍 선생은 진보주의자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을 크게 보려는 나는 보수주의자다. 서로 다른 길이지만 어울릴 수 있는(和而不同)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진정한 진보가 될 수 없고 '바꾸어야 할 현실'을 통째로 묵살해서는 진정한 보수가 될 수 없다. 서로를 인정하는 진정한 진보와 진정한 보수 사이에라야 좋은 미래를 위한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이 땅에 건전한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탄을 많이 듣는다. 사실 건전한 보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글을 열심히 읽어주는 분들, 원 의원 블로그에 댓글 단 분들 중에도 건전한 보수주의자가 많다. 다만 정치적 조직화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문제다. 대한민국을 세울 때부터 미국의 입김과 이승만 집단의 야욕이 건전한 보수의 길을 막았고, 군사독재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발달은 건전한 보수를 사회 안에 키우지 않을 수 없고, 독재의 질곡이 사라지면서 건전한 보수주의가 정치에 표면화될 길이 열렸다. 한나라당이 말로만이라도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는 것은 이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원희룡은 내가 대면해 본 한나라당 의원 중 '합리적 보수'의 구현에 앞장까지 서지는 않아도 동참은 할 만한 인물로 큰 기대를 건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합리적이지 못한 당론, 그것도 평화와 국익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당론에 앞장서는 꼴을 보며 실망을 넘어 환멸을 느낀다. 평화건 국익이건 자신의 출세보다 뒷전에 놓는 것이 그의 보수주의였던가? 정치적 득실에 따라 합동조사단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그의 합리주의였던가?

천안함 사태를 나는 한국 보수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보고 있다. 정부와 합동조사단의 주장이 합리성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 보수'의 판별이 되고, 평화와 국익을 해치는 정책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보수적 가치'의 존재 여부가 확인된다. 이 주장을 확대재생산하는 사람은 합리주의도 보수주의도 등지는 사람으로 나는 본다.

원희룡의 블로그에 댓글을 단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은 보수주의자의 모습을 많이 확인했다. 그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접는다고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원희룡을 떠나 어디로 갈 것인가? 진정한 보수주의를 따로 찾지 못해 결국 "그래도 그중 덜 나쁜 사람"이라며 원희룡에게 돌아오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의 블로그를 다시 들여다볼 일이 없을 것 같다. 천안함 사태를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에 보수의 떡잎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가기 :필자의 블로그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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