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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진실 게임'…'과학자'라면 '쥐구멍'에서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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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진실 게임'…'과학자'라면 '쥐구멍'에서 나와라

[기자의 눈] 진실을 갈구하는 과학자의 자세

1668년 이탈리아의 생물학자 프란체스코 레디는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실험을 했다. 그는 썩은 고기를 넣은 병들을 준비하고 나서, 한 쪽 병은 그대로 두고(A), 다른 쪽 병은 천으로 막았다(B). 시간이 지나자 천으로 막아둔 병은 고기가 아무리 썩어도 구더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때까지 대세였던 자연발생설을 부정한 중요한 실험이었다.

과학사에 길이 남을 이 실험에는 과학 활동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실험의 핵심 원리가 담겨 있다. 레디는 이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 '대조군(A)'과 '실험군(B)'을 비교함으로써 가설을 검증하는 탐구 과정의 한 모범을 보였다.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 실험을 가르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놓고 합동조사단이 내놓은 "과학적인" 조사 결과가 불신을 받고 있다. 특히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이승헌 교수(물리학)는 맨 앞에서 '과학자'로서의 명예를 걸고 합동조사단과 외로운 싸움을 진행 중이다. 이 교수의 잇따른 문제제기를 보면서 레디의 실험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대조군'도 '실험군'도 엉터리

사실 이승헌 교수의 주장은 단순하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밝히는데 한국 군대의 신뢰와 남북 관계의 존망이 걸려 있는 만큼, 수백 년 전 레디가 했듯이 제대로 된 실험으로 그 원인을 밝히라는 것이다. 이 교수의 이런 판단에는 그동안 합동조사단의 활동이 "엉터리"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왜 그런가? 일단 실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대조군과 실험군의 설계가 엉터리다. 일단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침몰은 어뢰 폭발 탓"이라는 가설을 세웠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가설을 입증할 설득력 있는 대조군과 실험군을 고안해야 한다. 일단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침몰해서 두 동강이 난 천안함을 대조군이라 하자.

합동조사단의 가설을 입증하려면 천안함 급의 배가 어뢰 폭발로 인한 버블제트(물기둥)로 두 동강이 날 수 있음을 보여야 한다. 또 그렇게 두 동강이 난 부분의 상태가 천안함의 그것과 비슷한지도 확인해야 한다. 물론 실제로 어뢰를 폭발시켜서 천안함 급의 배를 침몰시키는 실험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선례도 있다. 1989년 4월 19일 미국 해군 아이오와 호가 폭발해 47명(!)의 군인이 숨졌다. 우여곡절 끝에 '제3의' 독립 기관은 해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오와 호의 폭발 당시 상황을 부분적으로 재연해 사고 원인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한 걸음 다가갔다. (☞관련 기사 : "천안함, 美 아이오와호 폭발 사고 조작과 판박이")

천안함 침몰을 재연하는 가장 효과적인 실험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여기서 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국내외의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모여서 적절한 근거에 바탕을 둔 실험을 설계하고, 시민을 납득시킬 때 비로소 온갖 유언비어를 포함한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의혹이 사라질 것이다.

▲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의 '스모킹 건(smoking gun·확증)'을 찾았는가? '가짜' 스모킹 건을 '진짜'라고 우기는 것은 아닌가? ⓒ프레시안

"천안함 침몰=어뢰 폭발" 가설을 입증하려면…

이런 과정이 없다 보니, 합동조사단은 자신이 내놓은 가설("천안함 침몰=어뢰 폭발")을 입증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의혹만 키우는 꼴이다.

우선 그들은 알루미늄 화합물을 검출하려는 목적으로 X선 회절 분석을 하면서, 폭발 실험에서 나온 물질이 알루미늄 판에 붙어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합동조사단은 "이게 무슨 문제냐" 이런 식으로 대꾸를 하고 있는데, 적지 않은 과학 사기 사건을 취재해온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반응이다.

이승헌 교수가 오죽하면 "제3자가 보는 자리에서 알루미늄 판을 쓰지 않은 상태로 폭발 실험에서 나온 물질을 X선 회절 분석을 하면 믿겠다"고 공언을 하겠는가? 굳이 이 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저렇게 얻은 합동조사단의 데이터는 이미 "과학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더구나 합동조사단은 이승헌 교수의 실험을 두고 '수중 폭발을 재연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왜 이 교수 말대로 한 번 더 수중 폭발 실험을 통해서 아예 입을 막을 생각을 않나? 이참에 아예 이 교수를 비롯한 다른 독립적인 전문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좀 더 정밀한 실험을 설계해 검증을 해볼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거기다 고온의 알루미늄이 물과 닿으면 격렬하게 수증기가 발생해 폭발하는 현상을 다룬 선행 연구 중에는 합동조사단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도 있다. 이런 폭발 후에도 X선 회절 분석으로 식별이 가능할 정도의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나올 가능성을 제기한 논문은 그 한 가지 예다. (☞관련 기사 : "천안함 침몰=어뢰 폭발?…알루미늄은 진실을 말한다")

이런 반론에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하면서 피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천안함 침몰의 실체를 규명하는 게 바로 합동조사단의 역할이 아닌가?

익명 뒤에 숨지 말고 공개 논쟁에 나서라!

앞에서 수차례 비판했듯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합동조사단의 활동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 그나마 이승헌 교수와 같은 과학자가 외롭게 목소리를 내면서 합동조사단의 이런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꼭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이들이 있다.

천안함 침몰을 놓고 갑론을박이 진행되는 인터넷 게시판 곳곳에서 과학자를 자칭하면서 합동조사단의 입장을 옹호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정말로 과학 언저리에서 밥벌이를 하는 이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승헌 교수와 같은 문제제기를 과학의 이름으로 단죄하려면 제발 익명의 그늘에서 나오길 바란다.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음습한 쥐구멍에 숨어서 공개 논쟁을 회피하나? 제발 '과학자'라면 자기 이름을 걸고 공개 논쟁에 나서라. 그들에게는 합동조사단의 주장에 토를 달기만 해도 "불바다를 만들겠다"며 가스통을 들고 협박 전화를 거는 든든한 경호원에, 언제든 1면을 내줄 준비가 돼 있는 조·중·동 같은 홍보지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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