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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을 넘나드는 '임진강 물새' 정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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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을 넘나드는 '임진강 물새' 정대세

[기자의 눈] '정대세'에게서 읽는 메시지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강 건너 갈밭에서 가을 새만 슬피 울고
메마른 들판에서 풀뿌리를 캐건만

협동벌 이삭바다 물결 위에 춤추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내 고향 북녘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를 못 하리라."


'임진강'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이 노래는 원래 금지곡이었다. 북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북한 국가를 작사한 '프롤레타리아 시인' 박세영이 글을 쓰고 고종환이 곡을 붙였다. 그래서 북한에서의 제목은 '림진강'이다. 박세영의 고향은 경기도 고양. 임진강 너머 고향이 그리웠나보다.

그런데 이 노래가 남쪽에도 널리 퍼졌다. 재일조선인을 주인공으로 한 일본 영화 <박치기>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돼 전국 극장에 울려 퍼지더니, KBS 드라마 <서울 1945>에도 가수 적우(赤雨) 부른 노래로 삽입돼 안방에도 울려 퍼졌다. 가수 양희은도 불렀고, <박치기>의 후속편인 <박치기, Love & Peace>에서는 팝페라 가수 임형주도 불렀다.

ⓒ연합뉴스
이 노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가 있다. 바로 2010 남아공 월드컵 북한 팀 스트라이커 정대세 선수. '재일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기본으로 남한 국적을 갖고 북한 축구 대표팀 선수로 뛰고 있으니 그야말로 남과 북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임진강 물새'다.

단지 여권의 '국적'란을 갖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드라마 <겨울연가>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고 노래방에서는 원더걸스의 '텔미'를 부르고,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축구 칼럼을 쓰며, 스스럼없이 "박지성 팬이 됐다"고 말한다. 이근호, 조원희, 김남일과 같은 선수들과도 친하다고 한다.

이 뿐인가. '북한 축구'에 대해서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수비 위주 축구다. 재미있는 축구는 아니다. 축구는 원래 놀이인데, 이걸 무시하고 승부를 위한 축구를 한다"고 과감한 비평도 늘어놓을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그의 머릿속에 휴전선은 없다. 정대세가 아니면 누구더러 '임진강 물새'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의 '쿨'한 자유로움의 매력에 브라질 전에서 보여준 '뜨거운 눈물', 그리고 실력까지 더해져 정대세는 남쪽 사람들의 큰 응원을 받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축구는 축구로만 즐기자'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2010년 6월 우리가 받은 메시지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월드컵 기간이니 축구에 빗대보자.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전방 공격수와 미드필더, 후방 수비진이 간격을 유지하며 상대편을 압박하는 전술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전방과 후방의 간격이 너무 넓다. 젊은이들이 최전방에서 세계적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겨루고 있지만 후방에서는 보수단체들이 골대를 지키고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최근 참여연대에 대한 보수단체들의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보면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간격은 더욱 벌어진 것 같다. 축구 경기 보다가 참여연대 앞 시위 기사를 보면 가슴이 탁 막혀온다. 도대체 누가 이 간격을 좁혀놓을 수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이 간격을 좁힐 리더십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또한 정대세에 열광하는 만큼 일본 땅에 있는 다른 많은 '정대세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정대세를 '축구만 좋아하는 청년'으로만 해석하며 의미 부여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정대세가 일본에서 축구로 성공하고자 했다면 제 이름과 말을 버리고 일본에 귀화해 일본 학교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훨씬 더 빨리, 훨씬 더 크게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근성 하나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그렇게 정체성을 지키며 살고 있는 정대세와 같은 동포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한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고 한다.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않고 외국인 등록증 국적란에 '朝鮮'을 유지하고 있는 '조선적' 동포는 7만여 명에 이른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3대, 4대에 걸쳐 제 이름과 말을 지키고 사는 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남북 분단을 인정할 수 없다"며 온갖 불편을 무릅쓰고 '조선'이라는 국적을 지키며 사는 고집쟁이들이다. 물론 "하와이에 가고 싶어서" 한국 국적을 얻는 젊은 동포들(영화로도 나온 소설 <고>를 참고하시라)도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난 65년 동안 이들에게 너무 무관심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골 깊은 이념갈등을 다시 생각해보고, 재일동포들의 역사적 고난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기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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