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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성범죄자 거세' 논란, 실상과 효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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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다시 불붙은 '성범죄자 거세' 논란, 실상과 효과는?

한나라당·정부 "성범죄자 거세", 어떻게?

월드컵 16강 티켓을 둘러싼 각국 축구 대표팀의 전쟁이 한창인 6월, 국회에서는 또 하나의 조용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거세 논란'이다. 약물을 통한 화학적 거세 뿐 아니라 물리적 거세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마흔 다섯 살 김모 씨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8세 여자 아동을 납치해 성폭행 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포문은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의원이 열었다. 여기에 17일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가세했다.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은 "물리적 거세"까지 주장했다.

이런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정부마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추진해볼 만하다"고 했고,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도 거들었다.

현재 국회에는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 발의로 아동 성폭력범의 화학적 거세를 담은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6월 임시국회에서 아동 성폭력 관련 법안을 우선적으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여당이 주도하고 있는 거세 논란의 실상은 무엇일까?

박선영·전여옥·신상진 "성범죄자에 화학적, 물리적 거세 도입해야"

▲마흔 다섯 살 김모 씨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8세 여자 아동을 납치해 성폭행 한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자에 대한 거세 논란'이 불 붙고 있다. ⓒ연합뉴스
어린 아이를 상대로 자행되는 잔혹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죄자에 대한 '거세' 얘기가 튀어나온다. 이번 김 아무개 씨 뿐 아니라, 역시 여덟 살 여자 아이를 납치해 때리고 성폭행했던 조두순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세 주장은 무엇보다 시쳇말로 '섹시'하다.

박선영 의원은 지난 14일 "이제는 우리나라도 소아성애적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거세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여옥 의원은 17일 대정부 질문에서 "미국의 경우 성범죄자는 출소 후 25년 동안 약 40%가 재범을 저지르고 아동 성범죄의 재범률은 52%로 더 높다"며 "의학적으로 아동 성폭행은 습관성을 가지며 고칠 수 없는 정신병으로 밝혀지기도 했다"고 '거세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 의원은 "끔찍한 일을 저지른 범인들이 앵무새처럼 하는 말이 '술에 취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다', '필름이 끊어져 모르겠다'는 것"이라며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선고 때문에 정부가 흉악범에 대한 온정을 베풀고 있다는 역풍을 맞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의원들의 주장의 근거는 "다른 나라에서도 도입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스위스와 덴마크, 스웨덴 등은 이미 화학적 거세를 입법화하고 있고 독일은 성범죄자에 대한 물리적 거세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리적 거세'를 주장하는 신상진 의원도 "덴마크(1929년), 스웨덴(1944년), 체코(1966년), 노르웨이(1977년), 독일(1969년)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물리적 거세를 도입한 바 있다"며 "체코에서는 지난 10년 간 94명에게 물리적 거세를 시행했다"고 강조했다.

'화학적 거세'란?

국립국어원이 밝힌 거세(去勢)의 뜻은 이렇다.

"동물의 생식 기능을 잃게 함. 수컷의 불알 또는 암컷의 난소를 없애거나 그곳에 방사선을 쪼여 생식 불능이 되게 하는 것을 이른다."

논란이 되고 있는 화학적 거세는 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남성 호르몬 분비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즉 뇌에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성욕에 관계된다는 전제 아래, 약물을 통해 이 호르몬의 분비량을 제어하는 것이다. 이는 전랍선암 등의 치료 과정에서 남성 호르몬을 제거하는 방식을 응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화학적 거세에 쓰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을 제거하는 방법, 둘째, 여성 호르몬을 투여해 남성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방법, 셋째, 남성 호르몬 분비를 차단하는 방법이다.

이 가운데 첫째 방식은 선진국의 화학적 거세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만 따져 거칠게 나눈다면, 두번째 방식이 '미국식'이며 세번째 방식은 '유럽식'이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약물은 MPA(medroxyprogesterone acetate)인데, 일종의 여성 호르몬제다. 그러나 이 약물을 투여할 경우 여성 호르몬 공급에 따른 부작용(몸무게 증가, 홍조, 두통, 기면 등의 가벼운 질환과 더불어 당뇨, 여성형유방, 폐색전증, 혈관염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수 있다.

특히 이 약이 뇌졸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보고도 있는데, 이는 여성호르몬제가 혈액을 끈끈하게 만드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폐경기 여성에게 여성호르몬제가 무조건 권장되지 않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유럽에서 사용하는 약물은 '초산 시프로테론(Cyproterone acetate)'이나 '황체유리호르몬 촉진체(LHRH agonist)'와 같은 남성호르몬 차단제다. 이 역시 장기투여로 인한 부작용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방식도 문제다. 미국식은 강제적인 절차를 이용해 약을 먹이는데, 지속적으로 복용 여부를 감시한다. 그러나 사실상 감시가 24시간 내내 이뤄질 수 없고, 따라서 약을 버리거나, 남성호르몬제를 암시장 등에서 구입해 복용하는 경우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유럽 방식은 범죄자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감옥 투옥 기간을 줄일 목적으로 오용하는 경우가 많고, 역시 완전한 감시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거세가 아닌 약물 치료 시스템 구축이 진짜 예방책이다"

'거세론자'들의 이 같은 거친 주장의 목적은 '아동 성범죄의 예방'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거세와 같은 극단적 방법이 성범죄 근절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아동 성범죄 근절 대책을 오랫동안 공론화시켜 온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대표적이다.

최영희 의원은 '화학적 거세'라는 표현부터 고쳐야 한다고 했다. 여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화학적 거세'의 실상은 '약물 치료'라는 것이다. 최 의원은 "성적 충동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약물 치료를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 이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벌의 차원이라기보다, 치료 시스템 구축을 통한 예방의 차원이다.

최영희 의원은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 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사람 역시 본인의 동의 아래, 혹은 주변의 권유를 통해 약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약물 치료에 앞서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와 같은 단계적 시스템의 구축도 필수적이다.

최 의원은 "본인이 원할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물론 여러 차례 반복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경우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라 강제로 치료를 받게 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산 핑계만 대고 외면하더니 국민 분노에 편승해 '장사'"

그런 면에서 현재 여당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는 '거세 논란'도 최 의원은 "답답하다"고 했다. '화학적 거세'와 같은 선정적인 방식 외에도 수없이 많은 예방 대책이 있음에도 거부한 것은 여당이었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10년 전부터 주장했던 친고제 폐지도, 빈 교도소를 성범죄자에 대한 치유센터로 만들자는 주장도, 단순한 CCTV 설치가 아니라 24시간 모니터 인력을 두고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번번이 코웃음을 친 것은 한나라당"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각종 대책 마련에 필수적인 예산 책정은 온갖 핑계를 대며 외면하던 한나라당이 국민들의 분노만을 겨냥해 '이름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아동성범죄 예방 대책은 세심한 고려를 통해 차분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지 국민의 분노에 편승해 선동적 언사를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말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지만, 여당 의원들의 주장은 "단순한 보복적 성격의 처벌"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여당 일부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는 '화학적, 물리적 거세' 논란이 불편한 이유다.

전문가들 "충분한 논의도 통계적 검증도 없는 거세 주장 우려"

현재 국회의 '거세 논란'을 지켜보는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시했다. 진지한 접근이라기 보다는 선정적인 언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두진경 비뇨기과 전문의는 "이를테면 '법이 통과돼 내일부터 약물투여를 실시한다'고 해도 어떤 약물을 어떻게 투여할지 사회적으로 합의가 돼 있지 않고, 또 지금까지 그런 논의가 많지 않았다"며 "외국에서도 부작용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아 논란이 많고, 이 방식이 범죄를 줄이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공식적인 통계도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시행 방식과 관련해 "화학적 거세가 시행된다고 해도 약을 먹는지 감시할 수 있는 보호관찰 인력을 확보 등 여러가지 준비하고 논의해야 할 사안들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문가는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법이 통과되면 그야말로 검증되지 않은 아무 약이나 쓸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에서 사용하는 MPA 같은 비교적 부작용이 적은 약은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법안을 만든 사람들이 검사 출신이거나 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들이어서 '처벌'에만 방점을 두고 있다"며 "사실 약물을 이용하는 정확한 규정, 부작용 여부 등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매우 세심한 접근이 필요한데, 이 분야는 '법률가'들이 나설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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