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그가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완전히 돌아선 것은 '천안함' 때문이다. 그에게 군대는 '악몽'이다. 처음 입대해서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그는 내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군대를 다시 '리콜'하는 것만봐도 섬뜩함을 느낀다.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전쟁까지 불사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는 불안은 넘어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군대를 회피하는 학생이 아니다. 오히려 이 학생은 해외파병을 자원해서 다녀왔으며 가끔은 다시 그곳으로 가서 뭔가를 해볼까를 꿈꾸기도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도 '국가의 부름을 거부한다는 것'에 대해 강력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이번 선거에서 보수 세력이 가장 크게 오판한 것이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그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젊은이들의 악몽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꾸는 두 개의 악몽이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가서 대입 수능을 다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군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분명히 제대를 했는데 꿈속에서 여전히 제대가 남았거나 국방부에서 전산착오라며 다시 입대하라는 통보가 오기도 한다. 전쟁을 불사한다는 말이 나온 이후로 예비군 동원령이 떨어졌다는 괴문자가 돌아다닌 것도 바로 이 악몽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서도 그럼 민방위도 동원되는가 등등을 묻으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집권세력은 천암함이 선거 이슈가 되면 안보 논리가 작동하여 대거 사람들이 보수적인 선택을 하리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군대를 다녀온 젊은이들이 어떤 악몽을 꾸고 있는지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지 않은가?
천암함은 다른 차원에서도 현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을 젊은이들 사이에서 키웠다. "이 정권은 우리를 정말 깔로봐요." 왜 '심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느냐는 말에 대해 한 학생이 한 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천안함이다. 믿을 것을 믿으라고 해야지 저런 어리벙벙한 결과를 가지고 자신들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어이가 없고 자신들을 '깔로 보는' 것 아니냔다.
문제는 북한이 했는지 안 했는지가 아니다. 오히려 조사를 하고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이 정권은 불신을 자초하였다. 계속해서 말을 바꾸었다. 없다던 것도 계속 나타났다. 누가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면 그때서야 새로운 논리를 들이대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거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잡아간다고 윽박지르기나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을 바보 취급하는 이 꼰대스러움을 참을 수가 없다고 한다. 다른 학생들도 이구동성으로 이 정권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하여 투표소로 달려갔다고 이야기했다.
문제는 무엇이 진실이냐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보다 더 흥미진진한 것은 이 진실을 둘러쌓고 펼쳐지는 추리극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면서 성장한 이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이 추리의 가운데에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가짜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는 이야기가 진실보다 더 높이 평가받기도 한다. 어떤 퍼즐이 진짜인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주어진 퍼즐들로 어떤 다른 그림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이들은 열광한다.
가만 내버려뒀으면 북한이 한 것이 아닐까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갔을 수도 있는 것을 어설픈 증거들을 어설프게 들이대면서 오히려 이 진실놀이를 더 자극한 것은 현 정부이다. 그런데도 유언비어를 유포하면 잡아간다느니 하면서 엄포를 놓는 것이 이들이 보기에는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트위터를 통한 선거운동을 통제한다는 것이나 김제동이 잘린 것,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하려는 시도, 글만 쓰면 수사를 하네 마네 하는 것 등 이 모든 자신들에게는 '공기'와 같은 자유를 박탈하는 짜증나는 일로 보인다. 김연아 굴욕 사진에 등장한 유인촌이 네티즌을 고발한 것이 자신들의 유머를 억압하려는 가장 꼰대스러운 작품이었다. 자신들의 놀이터인 인터넷에서도 온갖 규제들이 늘어가고 놀이 기구인 핸드폰과 아이패드 등에 대해 이 간섭 저 간섭을 다하는 것이 못 견딜 지경이다.
웃자고 한 일에 웬 경찰? 이들에게 '자유'는 웃음이고 놀이이다. 인터넷은 찧고 까불고 노는 곳이다. 그런데 이 공간을 억압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자유를 파괴하고 노는 것도, 웃는 것도 금지하고 통제하려는 이 정권이 짜증난다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정권 들어서 자유가 억압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한다. 앙꼬없는 찐빵처럼 강성 신자유주의 정권에 '자유'가 없다.
▲ 교정에서 쉬고 있는 대학생들. 그들이 보기에 '웃음을 억압하는' 현 정부의 행태는 '꼰대스러움'의 극치다. ⓒ프레시안(여정민) |
진정성? 선택이 아닌 심판
"간단하죠. 선택을 하러 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 심판을 하러 투표를 한 것이죠. 지금 구도가 그렇잖아요."
왜 민주당 후보들을 지지하였느냐는 질문에 대해 도영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한국의 정치가 유권자에게 줄 수 있는 권력은 '심판'할 권리 하나밖에 없으며 이 권리를 행사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이미 투표용지에는 커다랗게 동그라미가 그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4지선다도 아니고 그냥 OX 퀴즈였던 셈이다. 자신은 이미 그어진 투표용지를 받아서 그대로 투표를 했을 뿐이다. 투표 예측 결과를 보며 그는 '대박!'이라면서 즐거워했다.
민주당을 찍었다고 하는 친구들의 말은 대부분 비슷하다.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마음에 안 들기는 매한가지이지만 한나라당이 하는 일이 서너배는 맘에 더 안 드는데다 일은 서너배로 더 벌이는데 오만하기까지 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촛불 시위 반성' 발언이나 유인촌의 '교육적 차원' 운운한 것은 거의 충격이었다고 한다. 너무 오만해서 짜증이 난 것이고 이들을 심판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정치라는 것이 뭘 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민주당도 짜증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 짜증나기 때문에 민주당을 찍어준 것이란다.
성향으로 보면 진보신당에 훨씬 가까운 친구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별 고민 없이 민주당을 찍었다고 한다. 집에 가는 겸 투표하러 가는 겸 부산으로 내려가는데 자기네 동네는 아무도 나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냥 민주당을 찍는다고 하며 "부산에서는 민주당 찍는 것도 혁명"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훨씬 더 왼쪽에 있는 내가 왜 민주당을 찍어야하느냐는 그런 비분강개라던가 회의 같은 것은 없다.
"그것 말고 주어진 것이 없잖아요." 이들은 지금의 정치 프레임과 그 안에서 자신들의 수행해야하는 역할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도영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심판하는 것만 허용된다. 심판은 복수의 정치이다.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적의 적은 우리 편이다. 오로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적의 적이 적을 무찌를 만큼 힘이 쎈가 아닌가만이 판단의 기준이 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투표를 하겠다고 결심하자마자 '주어진' 선택에 대해서 '진정성' 따위를 운운하며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이 가능하지 않은데 왜 자신들이 괴로워해야하는지 말이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한 지인의 고백처럼 기표소에 들어가 민주노동당도 진보신당도 없는 구청장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중에서 당황했던, 그러면서도 누가 더 당선가능한지를 알아보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고, 어느 한쪽을 찍고 나와서는 차라리 기권을 했어야 하나며 찝찝해한 것과는 너무 다르다. 이것이 이들의 정치가 386들의 정치와 다른 지점이다. 이들의 정치는 386들의 진정성이라는 언어로 읽었을 때 전혀 읽히지 않는다. 그 언어로는 '탈-정치화된 존재'라는 비난과 '이들에게도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 사이의 냉온탕만을 반복할 뿐이다.
▲ 6.2지방선거 개표가 진행될 당시,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 ⓒ프레시안(선명수) |
구도에서 구조로, 진보신당의 불운과 민주당의 횡재
여기에 진보신당의 불운(나는 진보신당의 당원이다)이 있다. 진보신당은 이번 OX 시험문제에 '번외'로 적혀 있던 답안 중의 하나였던 셈이다. 그렇다보니 노회찬은 차악을 위해 사퇴하라는 압력에 시달렸고 선거가 끝난 후에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진보신당은 차악이 아닌 최선을 선택해달라고 호소하였지만 선거의 구조-구도가 아니다!-자체가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굳이 선거의 '구도'가 아니라 '구조'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번 선거를 선택이 아니라 심판이었다는 것을 '구도'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라고 한다면 민주 대 반민주, 자유 대 반자유의 구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구도'는 한국의 정치행태상 무한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87년에서 97년까지 '민주 대 반민주'였다면 이번에는 그 변형태인 '자유 대 반자유'의 형태였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복지 대 반복지', '생태 대 반생태' 등의 형태로 무한반복해서 계속 재생될 것이다. 이 구도에서 한나라당은 이미 '절대악'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구도에서 민주당은 언제든 횡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대립의 '구도'가 아니라 이 대립을 무한대로 반복시키는 '구조'이다. 이 '구조'는 무엇이 최선인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싸움 자체를 '최악 대 차악'로 고정시켜놓고 있다. 이 구조를 깨지 못하는 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선택'의 권리는 박탈당한 채 '심판'의 의무만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구조를 재편하는 것이 사실 이것이 이번 선거에서 '연합' 혹은 '연대' 정치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결선투표제의 도입이라던가 정당명부투표의 획기적 증가, 선거구제의 변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잘 아는 것처럼 민주당은 철저하게 이것을 거부하였다.
따라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간에 얼마만큼의 지분을 서로 나눠 가져야할 것인가라는 점을 가지고는 진보신당의 역사와 정체성에서는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다. 진보신당이 정치를 바라보는 구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신당이 연합 혹은 연대의 정치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구도'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일 경우이다. 즉 정치 혹은 권력의 구조를 진보세력도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게끔 바꾸는 그 협상에는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야권연대는 철저하게 대립의 '구도'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진보신당이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박탈하였다. 더구나 진보신당 역시 이 부분에 대한 그 어떠한 정치적 비전과 역량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나는 이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이번 연합의 정치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운 민주노동당의 역할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진보신당은 몰라도 민주노동당과의 연합이 없이는 다음번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의 과정과 결과에서 확실하게 장악하게 된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정치의 구조를 진보세력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재편할 수 있는 협상을 민주당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약속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민주노동당은 이 '구도'와 '구조'의 정치에 절묘하게 걸쳐져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따라서 이번 앞으로의 연합-연대의 정치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역량과 선택은 진보세력 전체의 정치세력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의 구도에 동의하며 구조에서 지분을 확장시키는 방식이 될 것인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바꾸어내는 힘이 될 것인지 말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선거제도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의 구조에 대한 청사진이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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