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6·2 지방선거의 결과를 개별 국책사업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만은 없다. 총괄적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의 시대착오적 국정운영 스타일에 대한 반감이 이번 선거에서 분출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개발독재 시대 건설회사의 CEO출신이다. 그런 CEO의 사고방식으로 마치 기업을 운영하듯이 나라를 운영해왔다. 바로 이점이 국민의 마음속에 불편한 심기를 심었던 주된 요인이었다. 어떻든 이번 선거를 계기로 국책사업을 재조정하고 국정운영 스타일도 전면 재조율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 이전의 두 차례에 걸친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참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아무런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고 건성으로 말만 했을 뿐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정부다. 앞으로 이명박 정부가 진정 반성하는지를 우리 국민은 예의주시해야 한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사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긍정적 측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측면도 보이고 있다. 불과 2년 반 전에는 한나라당이 압승을 하더니 이번에는 야당이 압승을 하였다. 그토록 짧은 기간에 우리 정국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한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왠지 우리 사회가 한 쪽 날개로만 날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회의 양극화와 결부지어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심화를 걱정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현상은 가치관의 양극화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대립이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보수 인사들은 텔레비전 뉴스도 보기 싫어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이번에는 진보 진영 인사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 비치기가 무섭게 텔레비전을 꺼버린다.
언론매체조차도 양쪽으로 갈려 있다. 보수 성향 신문이 있고 진보 성향 신문이 있다. 보수성향 신문은 진보 진영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기에 급급하고, 진보 성향 신문은 보수층의 기득권 수호를 질타하기 바쁘다.
정당도 보수 쪽과 진보 쪽으로 쫙 갈려 있다. 보수 진영은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의 편을 들고 있고, 진보 성향의 인사들은 야당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여당과 야당은 줄곧 팽팽하게 맞서서 싸움질만 해댔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민생문제 해결을 고민한다든가 시끄러운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시원하게 타협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여당과 야당도 그렇게 싸움질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자체가 정당들로 하여금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게 한 면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사업과 같은 사회적 현안을 놓고 국민들 사이에 찬성론과 반대론은 무성했지만 중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러니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당의 속성상 타협안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가치관에 있어서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것은 중간층이 약화됨을 뜻한다. 그러나 수적으로 보면 극보수나 극좌는 언제나 소수에 불과하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결집해서 자신들의 독자적 목소리를 내면 이들이 언제나 선거 결과를 결정짓게 되어 있다. 소위 중위투표자 이론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중간층의 성향은 극보수도 아니고 극좌도 아닌, 중도노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결과도 온건한 중도노선으로 낙착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 정치판에서 보듯이 보수와 진보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락가락 하는 선거결과는 생각하기 힘들다.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선거결과가 널뛰기 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중간층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줏대 없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2년 반 전에는 이들이 보수진영에 붙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압승하였고 이번에는 진보진영에 동조했기 때문에 야당이 압승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6·2 지방선거 개표가 진행될 당시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 ⓒ프레시안 |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중간층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그 대신 보수층과 진보층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양쪽 끝이 너무 기세등등하니까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감히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이 그간의 사회적 분위기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중간층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기 전까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여당은 이런 사람들을 자기편이라고 생각하고 마냥 느긋해 있다가 한 방 맞은 꼴이다. 여론 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가 크게 달라진 이유도 중간층 사람들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이미 내려졌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워낙 요란하게 떠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얘기를 했다가는 양쪽으로부터 뭇매질 당하기 십상이다. 이번 지방선거 직전에 진보적 시민활동가로 알려진 박원순 씨가 한나라당 인사를 지방의 일꾼으로 추천했다고 해서 욕하는 댓글이 인터넷을 도배했다고 한다. 다수의 야당인사를 추천하는 가운데 그저 소수의 한나라당 인사를 추천했다는데도 그랬다.
사실, 진정한 지방자치 시대의 지방선거에서는 전국 정당과 관계없이 지역주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할 일꾼을 뽑는 것이 원칙이다. 박원순 씨는 그런 원칙에 따라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탄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나마 박원순 씨는 양식과 소신으로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용기를 가지지 못한다. 왠지 우리 사회의 중간층이 주눅 들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보수층과 진보층이 더욱 더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가치관의 양극화가 왜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가? 진지한 연구가 필요한 어려운 질문이다. 그냥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이해관계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열린 마음'과 '평형감각'을 잃은 탓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 말은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상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에 노출된다. 그 많은 정보를 모두 우리의 머리 속에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적절히 취사선택하게 되는데, 이 때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과 잘 부합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잘라버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이것이 소위 인지부조화 이론의 한 내용이다.
예를 들면,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기득권 유지에 유리한 정보만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본주의 시장의 문제점을 노출시키는 정보나 자료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편식을 하다보면 보수 성향의 인사들은 점점 더 보수화되고 보수 세력 확장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물론, 이런 논리는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도 편식을 하다보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진보 이념을 열심히 전파하게 된다.
얼마 전 인지부조화 이론에 대한 얘기가 어느 신문에 실렸다. 요지는, 천암함 사건이 북한의 어뢰공격 때문이었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마치 진보 진영 사람들에게만 인지부조화 이론이 적용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보수층에게도 에누리 없이 적용된다. 오히려 보수층을 덮친 '인지부조화의 덫'이 훨씬 더 심각하고 위험스럽다. 자칫 체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위기도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한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는 신자유주의 가치관에 경도된 금융 실무가와 정책 당국자들이 금융대란의 징후를 줄기차게 외면한 결과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어쨌거나,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는 보수진영이나 진보진영 모두 '열린 마음'과 '평형감각'을 가지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지식인부터 앞장서서 열린 마음과 평형감각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양 진영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특히 중간층에 있는 지식인들이 기죽지 말고 떳떳이 나서서 양쪽의 인사들의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 한 쪽 날개로 날다가는 기우뚱거리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가 양쪽 날개로 착실히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좌우를 아우르는 건전한 중간층이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우선 가치관의 양극화부터 완화된다면, 경제적인 양극화(빈부격차)도 점차 누그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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