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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대학살의 공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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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대학살의 공모자다"

[김영종의 '잡설'·7]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축제를 본 소감 ①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축제를 본 소감 ①

<몽골리안 1만 년의 지혜>는 아시아에 살던 몽골리언들이 베링해협을 건너 기나긴 이동 끝에 신대륙에 정착한 이야기다. 그토록 오래된 이야기가 바로 엊그제 일처럼 느껴져 스스로도 놀라웠다.

구전 기록이라서 육성을 듣는 듯 생생한 느낌도 한몫했겠지만, 내 개인적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십수 년 동안 실크로드를 다니면서 북아시아의 애니미즘 문화에 깊이 매료된 뒤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에까지 관심이 확장돼 자연스레 '몽골리언 애니미즘 벨트'가 마음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벨트는 '알타이-몽골 초원-시베리아-알래스카-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로 이어지는 거대한 인종의 띠이자 비슷비슷한 애니미즘을 꽃피운 문화의 띠이다. 한국인이 몽골리언이라는 사실 외에도 우리의 민속이 모두 애니미즘에 속하므로, 이러한 원주민의 문화가 당연히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애니미즘은 다 알다시피 정령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이 만물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원시 신앙이다. 사실 용어의 개념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애니미즘이라는 용어도 알고 보면 '미개한 야만인종'의 삶을 보고 19세기 서양인의 머리에 떠오른 하나의 학술적 아이디어에 불과한 것이다. 기독교를 정점으로 하는 종교 사상의 서열화를 만들어낸 눈으로 볼 때, 애니미즘은 진화 계단의 말단에 위치한 가장 유치하고 미신으로 가득한 종교다.

여기는 서양인의 종교 사상을 비판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원주민의 애니미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한 백인의 기록물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시턴 동물기>로 유명한 시턴이 기독교 문명을 자랑하는 미국의 백인에게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인디언의 복음>을 편찬해 전했는데,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우리의 제도는 무너졌다—우리 문명은 실패작이다. 논리적으로 결론을 어떻게 내리든지 그 문명은 한 사람의 백만장자와 백만 명의 거지를 만든다. 그 문명의 재앙 아래 완전한 만족은 없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이 여태 보아온 것 중에 가장 영웅적이고 가장 신체적으로 완벽하며 가장 영적인 문명을 지닌 사람들을 대표하여 말한다.

우리는 백인들에게 인디언의 메시지, 즉 인간됨의 교리를 내어놓는다. 우리는 그들의 문명이 우리 자신의 문명보다 낫다는 것을 주장하며, 늦기는 했지만 회개와 한탄, 원상복귀, 그리고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니느웨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의 보복과 완전한 멸망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가 더욱더 숭고하고 나은 철학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해볼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인디언의 복음>, 시턴 엮음, 김원중 옮김, 사계절출판사 펴냄, 236~237쪽)


서구 기독교 문명이 내세운 '빛과 진리의 이름' 아래 최소한 1억 명 이상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학살당했다. 시턴이 고백했듯이 애니미즘에 바탕을 둔 가장 영적인 문명을 아주 깨끗하게 청소한 천인공노할 범죄가 저질러졌음에도 현대는 그 죄과를 아무도 묻지 않고 있다.

대신 우리 머릿속에는 나치나 공산주의의 죄과 따위만 가득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여기에는 베일에 감추어진 현대 문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베일을 걷어내고 음모를 밝히는 일은 현대인이 무엇보다도 인간의 양심을 되찾는 일이다. (베일에 가려진 현대문명의 음모에 대해서는 2부의 '진보는 퇴보의 다른 이름'에서 구체적으로 살폈다.)

ⓒ김용철

현대 문명의 세례를 받은 나 또한 학살의 공모자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학살의 피해자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후자는 내가 애니미즘을 다시 보게 만들고, 애니미즘을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삶으로서 체화하기를 끈질기게 촉구한다. 애니미즘은 제국주의가 전 지구촌에서 강탈한,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인류 대다수가 살아온 실제 삶인 것이다.

애니미즘을 글로서가 아닌 삶에서 만나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하던 나에게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축제를 볼 기회가 왔다. 지인(2007년 <원은 부서지지 않는다>를 출간한 손승현)의 안내로 나바호 원주민의 예비체이(Yei Bi Chai)와 평원 원주민의 파우와우(powwow)를 참관하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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