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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에 대한 열광, '마취'가 없었다면…

[근대 의료의 풍경·29] <제중원> 보고서 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제중원 진료의 하이라이트는 외과였다.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 것처럼 내과계 질병에 대해서는 근대 서양 의학도 별다른 대처 수단을 갖지 못했던 시대였다. 파스퇴르(Louis Pasteur·1822~1895)와 코흐(제28회) 등에 의해 세균성 전염병의 정체와 원인이 밝혀지기 시작했지만 효과적인 예방과 치료는 대체로 몇 십 년 뒤에야 가능했다.

그에 비해 외과는 더 앞선 시기부터 뚜렷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초기부터 근대 서양 의학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도 주로 서양 외과의 능력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는 독일 등 구미의 외과 의사를 초빙해 진료와 의사 양성을 맡기는 한편 사토 스스무(佐藤進·1845~1921) 등을 유럽에 유학시켜 근대 서양 의학을 배워 오도록 했다.

▲ 일본 근대 외과학의 개척자인 사토 스스무(佐藤進)가 펴낸 <외과통론> 제1권의 표지. 사토는 유럽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1876년부터 1880년까지 4년에 걸쳐 24권으로 된 <외과통론>을 펴냈다. 도쿄제국대학 병원장을 거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군의총감(軍醫總監)을 역임한 사토는, 조선과 중국의 의학 분야를 장악하기 위해 설립된 동인회(同人會)의 핵심 멤버로 의료계의 통감부 격인 대한의원(大韓醫院)의 창설준비위원장과 원장을 지냈다. 사토 스스무는 의학 분야의 이토 히로부미였다. ⓒ프레시안
사토는 1869년 메이지 정부가 발급한 제1호 공식 여권으로 독일 베를린 대학 의학부에 유학하여(첫 해는 자비였고 둘째 해부터 일본 정부가 지원했다) 졸업했으며, 1874년에는 아시아인으로는 첫 번째로 의학박사가 되었다. 또 그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로 명성을 날리던 빌로트(Theodor Billroth·1829~1894)의 가르침을 받으며 근대 외과 의술을 익혔다.

이처럼 근대 의학의 도입 과정에서 일본과 조선은 시기뿐만 아니라 방법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일본(인)은 조선과 달리 처음부터 근대 의학의 핵심에 접근하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근대 서양 외과의 바탕은 물론 해부학이다. 르네상스 후기인 1500년대에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1514~1564)가 '인체 해부학'을 새로운 학문으로 정립시켰고, 그때부터 인체의 구조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해부학은 18세기에 해부 병리학을 잉태함으로써 히포크라테스 이래 2000년이 넘도록 군림했던 의학 체계를 환골탈태시켰다.

▲ 베살리우스의 명저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1543년)에 나와 있는 베살리우스의 모습. 베살리우스는 자신의 인체 해부학 연구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해부학이 마침내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Galenos·130~200)의 의학을 지양(止揚)한 새로운 근대 의학 탄생의 견인차 역할까지 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서유럽 이외에 인체 해부학을 스스로 발전시킨 경우는 없었다. 일본에서는 1700년대 중반부터 인체 해부를 시작했는데, 유럽 특히 네덜란드의 영향 때문이었다.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1733~1817)와 마에노(前野良澤), 나카가와(中川淳庵) 등이 각고의 노력 끝에 네덜란드의 해부학 책을 번역하여 1774년에 <해체신서(解體新書)>를 펴냈으며, 그에 앞선 1772년에 가와구치(河口信任)는 처형된 사형수의 시신을 직접 해부하여 <해시편(解屍編)>을 출간했다. 이런 점에서도 일본과 조선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인체의 구조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됨으로써 외과가 발전할 바탕은 이미 마련되었지만, 실제로 외과 의사가 환자들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수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즉 수술 시의 통증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 수술 부위에 생기는 염증을 방지하거나 처리하는 것, 크든 작든 수술에 따르는 출혈을 극복하는 것 등이 해결되기 전에는 제대로 된 수술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 가와구치(河口信任)의 <해시편>(1772년)에 있는 내장도(왼쪽). 1770년 4월 25일 교토에서 처형된 사형수의 시신을 가와구치가 직접 해부하여 그린 것으로, 네덜란드 해부학 책의 번역서인 <해체신서>보다 2년 먼저 출간되었다. 일본은 이처럼 해부학을 일찍부터 받아들였기 때문에 근대 서양 의학을 도입, 수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순조로웠을 것이다. <해체신서> 중의 폐(肺) 해부도(오른쪽). 이때 만들어진 해부학 용어가 오늘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쓰이는 것의 원형인 셈이다. ⓒ프레시안

▲ <해체신서>의 원본인 해부학 책 <Ontleedkundige Tafelen>. 독일의 쿨무스(Johan Adam Kulmus)가 펴낸 <Anatomische Tabellen>의 네덜란드어 판이다. 스키타 등은 네덜란드어를 거의 모른 채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프레시안

그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는 통증의 제거, 즉 마취제의 개발이었다. 마취를 처음 성공시킨 것은 뜻밖에도 당시 서양 의학의 변방국 미국에서였다.

우선 아산화질소가 마취제 후보로 떠올랐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1846년 10월 16일 미국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수술장에서 치과 의사 모튼(William Thomas Green Morton·1819~1868)에 의해 에테르가 뛰어난 마취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모튼은 종기 환자를 에테르로 마취했고, 외과의사 워렌(John Collins Warren)은 환자가 편히 잠든 사이에 환자 목 뒤의 커다란 종기를 무난히 제거할 수 있었다.

이 성공적인 마취와 수술은 보스턴에서 발간되던 신문들에 즉시 보도되었으며, 닷새 뒤인 10월 21일에는 다음과 같이 <보스턴 내과 외과 잡지>에도 그 소식이 실렸다. "이 도시에서 있었던 근사한 일이 신문들에 보도되었는바, 한 환자가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고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오래, 그리고 충분히 처치되었다."

에테르에 이어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 심슨(James Young Simpson·1811~1870) 등에 의해 클로로포름도 못지않은 마취 효과가 있음이 곧 밝혀졌다. 이로써 외과, 더 넓게는 의학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만약 알렌과 헤론 등 서양인 의사들이 몇 십 년 앞서 조선에 왔다면 사람들의 눈길을 별로 끌지 못했을 것이다. 마취제의 개발로 외과가 본격적으로 발전할 채비를 갖추기 전에는 서양 의학이 뚜렷이 내세울 만한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중원의 외과 수술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상세히 살펴보자.

▲ 1846년 10월 16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수술장에서 모튼이 에테르로 환자를 마취하는 모습. 환자는 목 뒤에 커다란 종기가 있었는데, 68세의 외과 과장 워렌(모튼의 바로 왼쪽)이 에테르 마취 하에 그 종기를 제거했다. 환자는 수술 도중은 물론 마취에서 깨어나서도 전혀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모튼은 외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지만, 뒤에 마취 '특허권'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려 남은 생애 내내 고통을 겪다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사실 에테르 마취를 가장 먼저 성공시킨 사람은 미국 조지아의 외과의사 롱(Crawford Williamson Long·1815~1878)이었다. 롱이 에테르 마취를 처음 성공한 것은 1842년으로 모튼보다 4년 앞섰지만,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롱의 성품 탓도 있지만 자신이 한 일의 의의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 롱은 특허권에도 별로 관심이 없어 그로 인한 소용돌이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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