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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를 읽는 다섯 가지 '문화 코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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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를 읽는 다섯 가지 '문화 코드'는?

[화제의 책] 주창윤의 <대한민국 컬처 코드>

다시 월드컵이다. 붉은악마, 노사모, 촛불집회, 블로그, 동성애, 된장녀, 몸짱, 누드, 짐승돌…. 21세기의 첫 10년을 관통해 온 문화 현상을 두루 거쳐 다시 맞은 월드컵 시즌은 마치 산등성이를 나선형으로 굽이돌아 출발점을 내려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문화의 세기'라고 입을 모은 21세기의 첫 10년, 십진법에 익숙한 세상에서 <대한민국 컬쳐 코드>(주창윤 지음, 21세기북스 펴냄)는 다섯 가지로 간추린 문화코드로 우리가 걸어온 지난 10년의 정치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 유목민 코드

2000년대 문화를 규정하는 핵심요인은 단연 인터넷이다. 사람들은 미니홈피, 블로그, UCC 같은 가상공간의 집에 정착하지만, 그곳에서 안정감보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가상공간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벗어 던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떠돈다.


저자는 인터넷 이용자를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유랑하는 주체들의 집합'으로 본다. 2008년 촛불집회는 유랑하는 자아의 특성이 표출된 상징적인 사건이다. 스타만을 추종하는 팬클럽 회원들이, 패션과 미용에만 관심이 있던 '소울드레서' 카페 회원들이 정치참여 집단으로 바뀌었고, 끊임없이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 사이로 이동하며 새로운 전략과 전술로 대응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 UCC 등 1인 미디어는 자기표현에 집중하면서도 끊임없이 타자와 관계를 맺고자 '일촌'을 맺고, '파도'를 타며 강한 이동성을 표출하는 유목민적 특성을 표출한다. 그러나 사이버 군중은 공적 관심이 높게 발현되는 경우에도 담론의 상호교류를 통해 비판적으로 참여하기보다 자신의 입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도피성향도 띄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 참여 코드

저자가 "2000년대 중에서도 한국 사회의 진정한 출발점은 2002년"이라고 규정한 까닭은 월드컵,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효순·민선 양을 위한 촛불집회가 발생한 이후 등장한 '참여세대' 담론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참여세대는 젊은층의 자발적 집단화와 공동체 의식 그리고 개인주의적 세대 문화라는 이중적 특성을 지니며, 하나의 이념 지향성을 가지지도 않는다.

그런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2002년 월드컵의 붉은악마와 그해의 노사모 열풍이다. 저자는 월드컵 열기가 2002년 대통령 선거로 이어졌다고 분석하면서도 열정의 이중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예컨대 2002년 월드컵 기간에 치러진 6.13 지방선거는 48.8%의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고, 6월13일 발생한 효순·미선양 사건은 그로부터 다섯 달이 지나 미군에 무죄평결 소식이 전해진 뒤에야 비로소 주목을 받았다. 월드컵 기간에는 서해교전도 발생했으나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참여 코드의 상징인 '촛불'은 2008년에도 타올랐다. 저자는 2008년의 촛불이 이명박 정부와 진보정치의 무능을 동시에 비판한 점을 들어 촛불집회가 광우병 파동만으로 촉발되었다는 평가는 편협한 시각이라고 했다. 또한 촛불집회는 촛불 문화제나 축제로 열리는 등 저항의 형식과 내용이 새롭게 만들어졌고 저항의 대상도 분명해지는 진화된 형태로 지난 10년을 관통해 오고 있다.

# 몸 코드

2003년, 소위 '몸짱 아줌마'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즈음, 성현아, 권민중의 인터넷 누드 서비스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누드 열풍도 몰아쳤다. 2000년대 들어 '몸'은 소비문화에서 끊임없이 보여지는 선망의 대상이 되어 어느 시대보다 한꺼번에 우리를 지배했다. 2000년대 중후반 들어 대중매체의 '소녀'들은 섹시함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에 이르렀고, 남성 섹슈얼리티의 변화과정에서 '짐승돌'이 출현하기도 했다.

이같은 몸에 대한 잘못된 관심은 몸에 대한 강박관념을 키웠다. 현재의 몸을 부정하거나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몸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의 몸과 화해하는 길을 근원적으로 차단했다. 이로써 '몸'은 만들어진 이미지와 욕망 속에서 부유하게 됐다.

'몸'에 대한 관심과 함께 '얼짱' 열풍도 몰아쳤다. 하지만 얼짱 열풍은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억압된 욕망을 나르시시즘으로 분출하면서 현실 공간으로부터 탈주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한편, 시간이 지나면서 연예계 진출 통로와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는 기호 소비로 의미가 바뀌어 갔다.

# 섹슈얼리티 코드

섹슈얼리티 코드 역시 몸 산업과 대중문화 생산자에 의해 구성됐다. 2000년,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동성애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영화와 드라마들은 감추기 전략을 통해 동성애를 보여주면서 위장된 동성애를 표현했다. 동성애의 현실과 표상된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왕의 남자>,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쌍화점> 등 2000년대 중반 이후 동성애는 유독 남성 동성애를 주로 다뤄왔다. 이는 동성애 영화가 여성 관객을 대상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남성의 섹슈얼리티 코드가 변화한 것도 2000년대의 주목할 만한 문화현상이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으로 상징되는 메트로섹슈얼은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라고 유혹했다. 이렇게 메트로섹슈얼이 소비시장에서 부상하자 남성적 모습이 강조된 위버섹슈얼, 여성 중에서 남성성을 지닌 콘트라섹슈얼이 부상했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주변화된 남성성은 외환위기 이후 '88만원 세대'라는 자조적 표현의 '초식남'으로 의미화되기도 했다.

# 역사적 상상력 코드

2000년대 소설과 영화, TV 드라마의 다양한 작품들이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면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출판 시장에선 <다빈치 코드> <단테 클럽>, <자본론 범죄> 등 사실과 허구의 치밀한 구성을 통한 역사 추리소설이 대중소설의 판도를 바꾸었다.

스크린에선 <실미도>, <그때 그 사람들>, <황산벌>, <쌍화점>, <불꽃처럼 나비처럼>등이 역사와 역사적 권위를 비틀거나 해체하며 새롭게 역사를 읽어냈다. 해체된 역사를 통해 개인적 진실을 읽어내는 '놀이'로서의 즐거움이 골간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역사 드라마 역시 '상상적 역사 서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어나 <허준>, <대장금>, <주몽>, <바람의 나라>, <선덕여왕>, <동이> 등으로 꾸준히 이어져 왔다.

대중매체를 통해 발현된 이같은 역사적 상상력 코드는 탈근대적 사고를 반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일부 고구려를 다룬 역사 드라마의 경우 과잉 민족주의를 넘어 쇼비니즘으로 흐르는 경향이 위험스럽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게릴라 정신과 놀이 정신

저자는 이같은 다섯 가지의 문화 코드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2000년대를 구성하고 있으나, 2000년대 한국문화 구성에서 중요한 핵심 키워드는 유목민 코드와 참여 코드이며 다른 코드들의 영향력을 압도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다섯 가지 코드를 움직이는 힘을 '게릴라 정신'과 '놀이 정신'으로 압축한 저자는 이를 통해 대중이 실천적 주체로 부상했다고 했다. 저자의 지적대로, 그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 역동적이었던 2000년대 한국의 당대문화의 형성 과정을, 이제는 한번쯤 돌아볼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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