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야권 재편'이 화두다. 빈약한 민주당과 실체불분명한 국민참여당, 정체성과 존립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 진보정당까지, 단독행동이 불가능한 진보개혁 야당들 사이의 질서를 생산적으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연합정치의 수위와 틀에 관한 이 고민은 상당기간의 논쟁을 거쳐 갈 것 같다.
서울시장 개표가 막 끝난 3일 오전, <프레시안>이 마련한 '지방선거 평가와 전망' 좌담의 화제는 역시 야권 재편으로 모아졌다. 김종배 시사평론가의 진행으로, 상지대 고원 교수,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 자리를 같이 했다.
▲ 왼쪽부터 우석훈 소장, 김기식 위원장, 김종배 시사평론가, 고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
연합정치, 어떻게 할 것인가?
김기식 위원장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미국 민주당처럼 리버럴부터 사민주의까지 하나의 연합정당 구조 하에서 헤게모니 경쟁을 하는, 각자가 정치적 주장과 대중적 기반을 확장해 가며 새로움 창출하고 변화를 강제해 가는 구조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당들이 정치 기반과 지향을 유지하면서 단일 정당의 틀로 모이자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경험한 선거연합을 뛰어넘는 수위다.
김 위원장은 "선거연합은 경쟁보다는 거래를 통한 분점의 게임으로 흐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별로 경쟁을 촉발시키지 않는다"며 "연합이 혁신과 맞물리기 위해선 실질적 경쟁이 가능한 구조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미래를 놓고 다투는 자리이고 비전과 혁신의 동력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라면 현재의 선거연합은 답을 못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자기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자기 틀을 깨는 혁신 방식을 택해야 한다"면서 "집권 가능한 대안적 모델은 자유주의부터 사민주의까지 모여 각자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지고 경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노회찬, 심상정도 업그레이드 되고, 유시민도 저항세력을 극복할 수 있고, 정동영 손학규도 '마의 30%'를 넘을 수 있다"고 했다.
연합이 '승리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고원 교수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은 단순하게 갈라진 게 아니라 정치운동 과정에서 맥락을 가지고 갈라진 것"이라며 "이런 구조 속에서 연합정치를 해나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적 여건"이라고 했다. 또한 현재의 야당 체제가 "정치적 다양성과 대표성의 확장을 폭넓게 가져 갈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했다.
우석훈 소장은 연정 체제에 방점을 뒀다. 그는 "다음 총선과 대선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이냐는 논의를 해야 할 문제이지만 당 자체를 없애라고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본다"면서 "어떤 방식의 연정을 구축할 것이냐가 생산적"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번 지방선거 같은 선거연합 형태가 생산적 구조냐, 혹은 연정 체제에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은 갖춰졌느냐에 대해서도 부정적 진단이 많았다.
김 위원장은 "단일화가 필요조건화 된 상황에서 민주당은 자기 혁신의 노력 없이 단일화를 명분으로 활용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장치로 사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원 교수도 민주당의 '패권주의'를 지적하며 "연합 당사자들의 정치적 독자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필요한데 그런 게 이뤄지지 못했다"고 했다. 우석훈 소장도 "기준도 없고 상식적 절차도 없는 단일화는 깨질 확률이 무척 높다"며 "지금 같은 단일화 논의로는 패자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룰의 부재와 승자독식 구조를 지적했다.
진보정당의 경직된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우석훈 소장은 "진보신당의 경우 비록 2~3%라도 현재 같은 (승자독식의) 단일화 게임의 룰이라면 더 큰 비중을 요구할 것 아니냐"며 "그런 요구를 민주당이 받아들이면 연정 형태가 가능하겠지만, 그게 아니면 진보신당은 총선과 대선도 끝까지 독자적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김기식 위원장은 "진보정당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나가는 게 진보의 파이를 키우는 것인가에 대해 전략적 가치를 확고히 해야 한다"며 "큰 판으로 자기 체급을 바꿔서 헤게모니를 잡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40대 표심'이 끌어올린 '40대 기수론'
한편 참석자들은 6.2 지방선거가 "정치적으로는 야권의 승리이지만 야권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국민들의 반MB 심판 의지와 동력이 이런 결과를 견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4대강 사업과 천안함 북풍몰이 등 국민 뜻에 역행한 이명박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표로 심판했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었다.
우석훈 소장은 "4대강과 천안함 사건이 상당히 작용했다. 기초단체장의 압승은 폭넓은 정권 반대 정서가 수도권에 있었던 것"이라며 "오세훈 시장이 얻은 '강남 3구' 몰표에는 계급적 성격도 부각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원 교수는 "천안함 북풍, 반전교조 선동을 통해 심판 의지를 억압하는데 일정부분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선거를 앞둔 수일 사이에 (심판의 민심이) 압축적 폭발이 일어났다"고 했다.
참석자들이 구체적으로 주목한 건 40대의 표심 변화였다. 김기식 위원장은 "핵심은 40대의 야성 회복"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 생활인으로서의 경제적 민감성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던 40대의 표심이 지난 2년 간의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오만 때문에 다시 변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처안함 사건으로 한반도에 긴장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한나라당의 압승 시 발생할 수 있는 오만에 대한 견제심리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고원 교수는 "젊은층과 더불어 40대의 선택이 분기점을 가르는 역할을 했다"며 "MB식 정치가 20~30대에는 거부감을, 40대에는 피로감을 줬다"고 했다. 우석훈 소장은 "4대강 반대론이 밑바닥에서 실제로 많이 움직였고, 직간접적으로 시민단체와 인적 연결고리가 많은 40대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물론 40대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이번과 같은 개혁적 패턴을 유지할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김기식 위원장은 "40대는 대안이 뭐냐를 따져서 차선이나 차악도 선택한다"며 "40대의 변화가 이번에는 야권에 유리했지만, 이 흐름을 연결해내려면 심판의 동력의 빈자리로 남아있는 대안 부분을 채워주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부각된 야권의 40대 리더십, 즉 세대교체의 의미도 적지 않다. 김기식 위원장은 "야권의 40대 기수들이 대거 당선된 현실은 민주당이 변화하지 않으니 인물이라도 바꿔서 정당을 바꾸고자 하는 바람이 투영된 것"이라며 "정당이 만들지 못한 새로움을 국민들이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야권 재편의 과정에서 차세대 주자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컸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은 구세대의 낡은 기득권이 장악하고 있어서 변화가 안 일어나는 것이다. 차세대 주자들이 등장해 개별적, 집단적 권력의지가 생기면 혁신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우석훈 소장도 "진보정당도 세대교체의 문제가 있다. 차세대 리더를 내고 논의를 주도할 것이냐는 문제가 중요하게 나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고원 교수는 "세대교체를 통해 야권이 직면한 있는 터널 같은 정체 국면에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있지 않나 싶다"면서도 "다만 희미하다고 말한 건 차세대 깃발에 가치나 노선이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진보정치의 핵심은 감동 정치다. 아직 감동 부재의 정치를 극복 못하고 있다"면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리더군들이 가치와 노선을 세워내고 감동의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3일 오전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진행된 좌담 전문.
"야당의 승리? 국민의 승리!"
▲ 김종배 시사평론가 ⓒ프레시안(손문상) |
김기식 : 이번 선거는 국민의 승리다. 정당이나 후보가 선거를 치렀다기보다는 국민이 선거를 치렀다. 정치적으로는 야권의 승리이지만, 야권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국민들의 반MB 심판 의지와 동력이 이런 결과를 견인해냈다고 본다. 막판으로 가면서 견제심리가 살아났다. 또한 북풍에 대한 반작용, 한나라당이 압승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권력의 오만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면서 국민들 스스로 주변에 투표를 독려하고 심판 의지를 모아낸 것이다. 국민의 심판의 의지가 선거를 좌우했다.
우석훈 : 4대강과 천안함 사건이 상당히 작용했다고 본다. 기초단체장 선거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한 것 같다. 광범위한 반MB의 그릇, 즉 단일화 효과냐 정책의 문제냐 등 복잡한 해석이 필요하겠지만, 기초단체장의 압승은 폭넓은 정권 반대 정서가 수도권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예전에 비하면 강원도와 경남에서 약진하는 등 지역 몰표 현상도 줄어들었다. 다만 오세훈 시장이 얻은 '강남 3구' 몰표를 보면 계급적 성격이 부각되는 것 같다.
고원 : 심판 선거였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젊은층 투표율이 결정적이었다고 하는데, 이와 더불어 40대의 선택도 분기점을 가르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동안 이명박 정권이 겉으로는 친서민·중도실용을 표방하면서도 다른 쪽으로는 정치적 경쟁자들에 대한 핍박과 보복을 통해 민주주의를 대거 후퇴시켰다. 또한 스스로 표방하는 친서민·중도실용과 달리 실제론 부자와 건설족 위주의 정책을 펴는 이율배반의 정치를 해왔다. 친서민·중도실용이 대통령 지지율 50%로 나타나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율배반적인 MB식 정치가 20~30대에는 거부감을, 40대에는 피로감을 줬다고 본다.
김기식 : 20~30대의 투표율이 올라간 건 분명해 보인다. 투표율이 지난 2008년 총선에 비해 5% 가량 올라갔다. 하지만 지난 총선 결과와 이번 지방선거 결과의 차이를 20~30대 투표율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핵심은 40대의 변심, 40대의 야성 회복이라고 본다. 지난달 24일 일부 언론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와 어제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세대별 지지율을 보면 서울과 경기도에서 10~20% 가량의 표 변동이 발생했다. 이건 일주일 사이에 40대가 결정적으로 돌아섰다고 봐야한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이명박 정부가 승리한 것은 2002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주역인 지금의 40대가 한나라당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87년 이래 20년 동안 민주화 세력에 투표를 해오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실망감과 생활인으로서의 경제적 민감성 때문에 한나라당 선택했다. 그러나 지난 2년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오만 때문에 표심이 다시 변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대북 강경책으로 한반도에 긴장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한나라당의 압승 시 발생할 수 있는 오만에 대한 견제심리가 생겼다. 또한 주가나 환율이 요동치는 것을 보며 생활인으로서의 40대 불안 요인을 자극했다. 그렇게 회복된 40대의 야성이 심판론의 주된 동력이 됐다고 본다.
김종배 : 심판론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면, 50% 안팎에 이르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떻게 설명이 되나?
우석훈 : 여론조사도 과학적 기법인 만큼 그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일주일 사이에 20% 가량이 바뀌었는데, 이것이 '숨은 표'냐, 아니면 여론조사 때 일부러 거꾸로 얘기한 것이냐가 분명치 않다. 여론조사에 대해 전략적으로 반응하는 게 10%까지 된다고 한다. 다만 서울에는 수치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오세훈 싫다'는 정서가 있었다. 예컨대 작년 겨울 스노보드 대회를 할 때 무척 반감이 심했지만, 여론조사에는 포착이 안됐다. 이처럼 오랫동안 누적된 반감표가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김기식 : 착시현상이 좀 있는 것 같다. 첫째, 국정운영 지지도엔 지지의 의미와 함께 기대와 희망이 섞인 응답도 있다고 본다. 좋아서라기보다 잘했으면 하는 기대다. 대통령 임기가 중반을 넘지 않았는데, 그런 기대도 없다면 남은 임기가 너무 고통스럽지 않겠나. 둘째,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임기 초 촛불 정국에서 10%대까지 내려갔다. 그게 반등해서 회복됐다고 느껴지지만, 원래 집권 2년차까지는 대개 그정도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년차 초반까지는 40%대의 지지율이 나왔고 3년차 상반기 때엔 40%가 넘기도 했다.
고원 : 이 대통령의 지지층을 계층적으로 볼 때 상층에 일정부분 지지세가 있고 가장 많은 지지층은 하위계층에 분포돼 있다. 문제는 하위계층의 사람들이 대체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미조직돼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양적으로는 지지율이 높아보여도 정치적 파괴력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다.
김종배 : 하위계층의 지지는 투표로 연결되는 경향이 낮다고 보는 건가?
고원 : 확산 효과가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한편으로는 이 대통령 지지도가 50%에 이르는 것에 못지않게 반MB 정서도 굉장히 강하게 잠복돼 있다. 지난 10.28 재보선 때도 이 대통령 지지율은 50%에 달했지만 선거에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번 국면이 좀 특수한 건 천안함 북풍, 반전교조 선동을 통해 심판 의지를 억압하는데 일정부분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선거를 앞둔 수일 사이에 압축적 폭발이 일어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보면 예측의 실패에 대한 여론조사 기관의 책임은 사실 크지 않다고 본다.
40대 표심이 일 냈다
김종배 : 종합하면 반MB 결집도보다 친MB 결집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고원 :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북풍이 심판의 의지를 압도하는 조짐이 있었지만, 인위적으로 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한계를 드러냈다. 이런 반칙의 정치가 결과적으로 통하지 않았다고 본다.
김기식 : 결집도의 문제로 보지는 않는다. 원래 보수층의 표는 나올 만큼 나왔다. 50~60대는 원래 투표율이 높았고 충분히 결집해 있었다. 한국사회가 보수화됐다고 본다면, 그건 40대가 그런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2008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은 노무현 정부에 실망한 20~30대가 투표를 포기하고 40대가 한나라당으로 변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에는 20~30대가 적극적으로 투표하고 40대가 야성을 회복했다. 착시효과로 과대평가된 이 대통령의 지지율에 40대가 돌아서 결정타를 먹인 게 선거 변화의 원인이라고 본다.
▲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프레시안(손문상) |
우석훈 : 지난 대선 때 수도권 40대 남자들의 표가 의외로 이 대통령에게 많이 갔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했는데, 이 대통령은 우회전 깜빡이 켜고 좌회전 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사실 이 대통령의 본질은 개혁이라고 착각했던 건데, 지난 2년을 지나며 우회전 깜빡이 켜고 급우회전 하는 것을 본 것이다. 거기에서 돌아섰다. 또한 20~30대에게는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이 대통령의 친근한 이미지, 드라마 속에 비쳐진 이미지가 있었는데, TV나 신문, 라디오를 통해 이 대통령을 경험하면서 '싫다'는 분위기가 넓게 퍼졌다.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색이 엷어진 반면 인물을 보자는 얘기가 선거 현장에서 많았다. 지역과 세대에 상관없이 그런 흐름이 생겨났다고 본다.
김종배 : 한국정치에서 캐스팅보트는 늘 40대였는데, 이들의 야성이 회복됐다면 다음 총선이나 대선까지도 야성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번 지방선거와 같은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고원 : 40대를 해석하는 관점이 나는 조금 다르다. 40대의 본질을 야성이나 진보성으로 보는 건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 40대는 생각만큼 진보개혁적이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상당히 유동성이 있는 계층인 것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출렁이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40대의 표심이 이후의 선거에도 이번 같은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건 지나친 낙관이 아닐까 싶다.
김종배 : 지난해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미디어법 날치기 등을 거치며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화두가 꼭짓점 이르렀을 때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곡선 그리기 시작하는 게 논리적으로 설명 안 된다. 물론 그 즈음 증권시장이 활황국면으로 전환되고, 부동산 값이 오르기도 했다. 민주주의 문제로 한 달을 매달렸지만 야당의 지리멸렬을 보면서 다시 개인화되면서 원위치한 게 아니냐는 진단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40대는 다시 야성을 회복했다? 너무 지그재그 아닌가?
김기식 : 역사적 맥락에서 이들은 20대 시절부터 지금 40대에 진입하기까지 일관되게 민주주의에 대한 세대적 특성을 보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전 세대는 고정적으로 한나라당을 찍는 성향을 보이는 반면, 이 세대는 한나라당을 지지하기도 하고 진보개혁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나이가 들어서 보수화됐다는 일반적 경향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과 총선의 표심을 준거로 한국 40대가 보수화됐다고 진단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물론 이번 같은 경향이 다음 대선까지 이어질 것인지는 물음표다. 이번 지방선거는 심판의 성격, 견제의 성격이 강했던 반면, 다음 대선은 대안을 놓고 싸우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의 차기 대선 주자가 이 대통령과 대립점에 있는 박근혜 전 대표라면, 박 전 대표를 상대로 심판론의 동력을 얻기는 어려워진다. 대안의 문제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20대는 '너 싫어' 만으로도 투표할 수 있지만, 40대는 대안이 뭐냐를 따져서 차선이나 차악도 선택한다. 40대의 변화가 이번에는 야권에 유리했지만, 이 흐름을 연결해내려면 심판의 동력의 빈자리로 남아있는 대안 부분을 채워주느냐가 관건이다.
고원 : 경제가 투표 행태에 끼치는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점에 공감한다. 다만 경제적 평가와 심리가 곧바로 투표행위로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경제를 관리하는 정치적 행태의 부분도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경제 살리겠다'고 당선됐다가 강부자·고소영 논란으로 지지율이 추락했다. 그러다 친서민·중도실용으로 다시 지지율이 상승했다. 본질은 친서민·중도실용과 동떨어졌음에도 행태에 대해 40대가 반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친서민·중도실용의 기조에서도 일탈해 경제 불안을 증폭시킨 것이 사람들 표심을 급속하게 바꾼 요인이 됐을 수도 있다.
우석훈 : 세대적 변수도 있지만, 이번 선거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시민사회가 총동원에 가까울 정도로 개입한 선거가 아닌가 싶다. 4대강 문제가 그렇다. 이게 시민사회와 종교계를 굉장히 많이 움직였다. 4대강 반대론이 밑바닥에서 실제로 많이 움직였고, 직간접적으로 시민단체와 인적 연결고리가 많은 40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확히 계량하긴 어렵지만 시민단체가 움직이면서 몇 %는 따라 움직였다고 본다. 위로는 천안함, 밑바닥은 4대강이었다.
40대 인물론이 먹혀든 까닭
김종배 : 반MB의 실체가 뭐냐는 점도 짚어보자. 수도권의 반MB 정서와 충청권의 반MB 정서는 방점이 조금씩 다른 게 아닐까? 경남과 강원의 반MB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김기식 : 정치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을 지나가고 있다고 본다. 정치권에 세대교체 바람이 분 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인천 송영길, 강원 이광재, 충남 안희정, 경남 김두관…. 이들의 당선은 MB 심판과 함께 국민들이 변화와 대안을 갈구하고 있다는 걸 드러낸 것 같다. 정당의 혁신 혹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 등 변화에 대한 욕구를 새로운 인물에 대한 선택으로 표출한 게 아닌가 싶다. 충남의 경우 이회창, 심대평, 이인제 등 충청권의 기존 정치인들이 퇴장하는 상황에서 우리 지역을 대표할 새로운 정치인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고 본다. 또한 강원도는 이 지역 인물들이 중앙에서 주목받은 적 없었는데, 이광재 의원이 한 때 정권 실세이기도 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변방 강원도를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호소했다. 강원도를 발전시키겠다는 새로운 인물론이 먹혔다고 본다.
71년 DJ와 YS가 40대 기수론을 들어 정치를 변동시켰다면, 이번에는 유권자들이 40대에게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면서 한국 정치의 변화를 강제해내는 역할을 해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들이 40대인 오세훈, 원희룡, 나경원 의원이지 않았나. 야권의 40대 기수들이 대거 당선된 현실은 민주당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인물이라도 바꿔서 정당을 바꾸고자하는 바람이 투영된 것으로 본다. 정당이 스스로 변해서 밥상을 차리지 못하니 사람이라도 바꿔서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선거는 심판의 측면도 국민의 승리지만, 정당이 만들지 못한 새로움을 국민들이 만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우석훈 : 지방선거 고유의 특징도 있다. 김두관 후보는 경남에 계속 머물러 온 사람인 반면, 상대는 위에서 찍어 내린 사람이었다. 안희정, 이광재, 송영길 의원도 그랬다. 지역사람이라는 것을 꾸준히 각인시키고 무얼 좀 해보겠다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결과론적이지만, 이에 반해 대구에서 경기도로 옮긴 유시민 후보, 경기에서 서울로 옮긴 한명숙 후보는 낙선했다. 지방선거는 계속 지역에 머물며 지역현안을 챙기고 많은 일을 한 사람을 찍어주자는 심리와 결합되는 측면이 있다. 총선과 대선은 바람몰이가 가능한지 모르겠으나, 지방선거는 몇 달 전에 와서 찍어달라고 하면 먹히지 않는다고 본다.
▲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손문상) |
고원 : 수도권과 지방을 막론하고 이 대통령의 독주 정치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 피로감이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충청권도 MB 정치에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 부산경남에서도 MB식 정치에 대해 민심이 이탈하는 게 여론조사에서 확인됐고, 강원도도 MB 정부가 강원도에 무얼 해주고 있느냐는 불만이 있었다. 게다가 북풍몰이로 남북관계가 경색돼 긴장과 불안이 고조되면서 MB식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관류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지역 정서나 지역 이슈, 지역 인물론을 통해서 표출이 됐다.
그런 심리들이 왜 친노 브랜드를 단 사람들을 통해 표출됐느냐도 중요하다. MB정치에 대한 대안의 측면에서, 부족하지만 상대적으로 결집해 심판할 수 있는 구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세력이 그들이라는 판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MB정치가 자초한 심판이 주요한 측면이고, 친노 브랜드는 부차적이고 도구적 측면이 강하다. 일단 친노 브랜드가 결집할 수 있는 구심의 근거는 제공하고 있지만, 이직은 세력으로만 존재할 뿐 가치나 노선이 각인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걸 극복하는 게 이후의 과제가 될 것 같다.
김기식 : 이번 선거 통해 친노는 복권됐다고 불 수 있겠다. 안희정 이광재 김두관 등은 노 대통령이 쌓았던 일관성에 대한 신뢰도, 그것의 후광을 확실히 받았다고 본다. 그 세 사람 뒤에 있는 노무현을 보면서 이 사람이 자기 지역 대표 정치인으로 선택했을 때 노력 할 것이라는 신뢰를 줬을 것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그런 신뢰감이 친노 후보들에게는 있었다고 본다.
김종배 : 선거 결과가 친노 후보들의 효과 때문이냐, 야권 단일후보를 지지한 것이냐는 정밀하게 봐야 할 것 같다. 친노 인사들의 복권 차원의 지지인가? 아니면 반MB 단일후보에 대한 지지인가?
김기식 : 한명숙의 선전, 안희정 이광재 김두관의 당선으로 나타난 친노 복권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민참여당에게는 분열적 행태가 노무현 정신이냐는 평가가 있었다고 본다. 노무현은 분열을 원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존재한다. 소위 친노의 적통을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전 장관보다는 민주당에 남아있는 친노들에게 준 셈이다.
김종배 : 친노라는 세력과 국민참여당이라는 정당이 일치가 되지 않고, 당선된 사람들은 민주당 후보이자 야권 단일후보이기도 하다. 당선자들을 친노에 방점을 두느냐, 야권 단일후보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향후 야권 재편 과정의 실마리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우석훈 : 지방선거는 인물이 중요하다. 국민참여당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았다고 본다. 당보다는 인물에 표를 준 게 아닌가 싶다. 지방선거의 인물은 프레임만큼 강한 효과를 갖는다.
김기식 : 범야권의 단일화 효과라면 유시민 후보는 왜 떨어졌을까? 완벽한 단일후보인 유시민 후보는 떨어지고 경남은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이번 선거결과를 단일화 효과, 혹은 친노의 효과라거나 민주당의 저력 때문이라는 식의 단선적 요인으로 보는 것은 적합지 않다. 단일화가 구도를 정리해 심판의 동력을 극대화한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후보 요인과 결합하지 못하면 승리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유시민 후보의 경우 호남 유권자, 진보 유권자들의 거부층이 있었던 것에 비해 완벽한 단일화 안 된 다른 곳에선 후보의 요소가 작용하면서 승리하기도 했다.
우석훈 : 유시민 후보는 대선주자 여론조사를 하면 박근혜 뒤를 이어 2, 3등으로 나올 정도로 야권에선 앞서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경기지사 선거에서 기대에 못 미친 건, 유시민 개인과 국참당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원 : 친노를 기준으로 선거가 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친노라는 개념을 좀 더 정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겠다. 노무현의 가치로서 보느냐, 아니면 인적 관계로 연결된 세력으로 보느냐 인데, 어느 한쪽도 종합적이지는 않다고 본다.
"연합은 승리의 필요조건, 충분조건은 어떻게"
김종배 :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민주당이 아니라 야권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후보 단일화로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 이룬 승리인데, 이 경험이 향후 진행될 수 있는 야권의 재편, 혹은 야당의 재구성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무엇이라고 보나?
김기식 : 연합이 승리의 필요조건임이 확인됐다. 그러나 서울 경기의 패배로 연합이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도 확인됐다. 경남, 강원, 충남의 승리는 단순히 야권 단일화 측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새로운 인물과 지역 문제 등이 맞물려서 이룬 것이다. 여기에 메시지가 있다. 연합정치는 피할 수 없는 당위다. 그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정파는 없다. 다만 충분조건을 어떻게 채워갈 것이냐가 문제다. 동력을 결합해 내고 이 동력을 이후에도 지속할 수 있느냐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미래비전의 동력과 혁신의 동력을 정치사회에서 만들어내느냐가 핵심이라고 본다.
우석훈 : 단일화는 임시 합체 같은 것이다. 각 지역의 선거현장을 둘러보니 차이가 컸다. 안희정과 김두관은 타진영 지지층을 흡수한 단일화 싱크로율이 100%다. 서울의 경우, 민주노동당을 보면 지지층의 50% 정도만 갔다. 민노당 상층부만 적극적이었지 당원들은 실제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합체했느냐에 따라 싱크로율이 달라진다. 프레임 세팅은 매우 복잡하게 작동한다.
고원 : 무상급식, 4대강 등이 야권에 유리한 이슈였는데, 초기에는 빛을 발하다가 천안함 문제에 걸리면서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물론 4대강 이슈는 지속적이었고 밑바닥 흐름이 있었지만, 표면에서 북풍을 반격해내기에는 역부족인 측면도 드러냈다. 반면에 이슈나 정책 의제가 아닌 단일화가 이슈처럼 계속 갔다. 단일화가 필요조건이고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외의 이슈파이팅을 야권에서 못했다. 단일화에 매몰된 측면도 있었다. 단일화가 결과적으로는 효과를 발휘했지만 아직은 덜 발전됐다고 본다. 그 속에 패권주의 논리도 작동해 삐걱거렸다. 크게 보면 그런 이유가 한명숙과 노회찬 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결과만 놓고 노회찬 후보에게 비판적인 여론이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노회찬 후보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비난 받을 일도 아니라고 본다. 연합 당사자들의 정치적 독자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필요한데 그런 게 이뤄지지 못했다. 성숙한 연합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 고원 상지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
선거연합? 연정? 연합정당?
김종배 :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연합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선거마다 계기적으로 모였다가 선거가 끝나면 각개약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일상적 연합을 추진해야 하는 것인지?
우석훈 : 2006년부터 2008년, 소위 '정치의 계절'에 연정체제를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개별 단일화를 여러 번 지켜보니, 기준도 없고 상식적인 절차도 없었다. 그런 게 없는 단일화는 깨질 확률이 무척 높다. 서울도 단일화 테이블은 열렸지만 무엇인가가 맞지 않아 깨졌다. 연정체계가 되면 몰라도 지금 같은 단일화 논의로는 패자에겐 아무것도 없다. 다음 총선과 대선을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지금부터 논의를 해야 할 텐데, 당 자체를 없애라고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본다. 어떤 방식의 연정을 구축할 것이냐가 생산적이지 않을까?
김기식 : 단일화 효과에 대해 민주당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해서 그 틀 안에 자기를 안주시키면서 기득권 구조를 유지하려 하면 미래선거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번 선거에서 단일화가 화두가 된 것은 민주당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과도 그걸 확인시켰다. 단일화가 필요조건화 된 상황에서 민주당이 자기 혁신의 노력 없이 단일화를 명분으로 활용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장치로 사용할 수 있다. 다음 선거가 미래를 놓고 다투는 자리이고 비전과 혁신의 동력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라면 현재의 선거연합은 답을 못 내고 있다.
경쟁을 통해 혁신이 강제된다고 본다. 분리된 정당구조에서 선거연합은 경쟁보다는 거래를 통한 분점의 게임으로 흐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별로 경쟁을 촉발시키지 않는다. 분립된 정당구조에서의 연합구조는 혁신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합이 혁신과 맞물리기 위해선 실질적 경쟁이 가능한 구조가 돼야한다. 미국 민주당처럼 리버럴부터 사민주의까지 하나의 연합정당 구조 하에서 헤게모니 경쟁을 하는, 각자가 정치적 주장과 대중적 기반을 확장해 가며 새로움 창출하고 변화를 강제해 가는 구조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한국 민주당도 그런 동력 없이는 집권에 성공하기 어렵다. 민노당도 이번 선거에서 실리를 챙겼다고는 하지만 민주당에 붙어서 간 것일 뿐이다. 야권 전체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민노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은 각자의 존재 이유와 그 이후의 전략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받은 것이다. 자기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자기 틀을 깨는 혁신방식을 택해야 한다. 합당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범진보개혁 세력이 철학적, 정책적 공감대의 폭을 조금 더 넓게 짜면서 그 안에서 경쟁하는 구도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면 상상컨대, 노회찬, 심상정 같은 정치인들은 대선주자로서의 지지율이 지금보다 굉장히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유시민 전 장관도 네거티브 한 저항세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동영, 손학규 전 대표는 '마의 30%'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차세대 386 정치인들도 현재의 틀 안에서는 한계를 해결 못한다. 이들이 치열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연합의 정신을 살리면서 혁신과 대안의 요구를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고원 : 역사, 구조적 맥락에서 한국사회 정치지형이 (보수, 중도, 진보)삼분위냐 (보수, 진보)이분위냐는 논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분위 구도라고 본다. 그러나 범민주진영을 단일한 진영으로 규정하는 것도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간과하는 것이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중도적 리버럴과 진보정당이 단순하게 갈라진 게 아니라 정치운동 과정에서 맥락을 가지고 갈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연합정치를 해나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적 여건이 아니가 싶다. 그런 걸 유지하면서 가는 게 장점일 수도 있다. 정치적 다양성, 대표성의 확장을 폭넓게 가져갈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이런 것들이 현실 정치에서 생산적이고 성숙한 과정으로 발현될 수 있다. 이번 선거를 보면 선거전략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 선거전략에 밀리고 방어적이었다. 정치적, 정책적 쟁점을 부각시킨 게 하나도 없었다. '존재감 제로'에서 선거를 치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그럼에도 범야권의 단일화 논의 결과 민주당이 가장 많은 이득을 취했다. 물론 민주당이 이런 이득을 취하면서도 선거전략에 무기력한 모습을 견제하고 각성을 촉구할 수 있는 또 다른 세력의 역할들도 없었다. 야권 전체에서 민주당의 안일함을 견제할 수 없는 독과점적 구조라는 것을 자성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김종배 : 우석훈, 고원 박사는 연합정치 질서를 뛰어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김기식 위원장은 연합정당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진보정당의 경우는 어떤가. 진보신당이 이번 선거에서 얻은 실익은 무엇이 있나? 노회찬의길, 심상정의 길로 또 갈라고…. 민노당도 작은 파이를 챙기고 헤게모니를 민주당에 넘기는 게 최대치가 아니었나?
우석훈 : 지방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는 둘을 합치면 하나보다 커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시너지 효과도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노회찬 후보 표를 얻었다면 한명숙 후보가 당선 됐을 것이다. 진보신당의 경우 우리 것이 비록 작지만, 그게 빠지면 아플 것이다 하는 옹색한 데가 있는 게 사실이다. 유연하게 단일화를 보자는 노선과 절대로 우리 길을 가자는 노선이 부딪힌 것이다. 한 쪽에선 2~3%라도 쥐고 있어야 뭐가 있지 심상정처럼 다 주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비록 2~3%라도 현재 같은 단일화 게임의 룰이라면 더 큰 비중을 요구 할 것 아닌가. 만약 그런 요구를 민주당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연정 형태가 가능할 것이고, 그게 아니면 진보신당은 총선과 대선도 끝까지 독자적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
김종배 : 연합이 지방선거라 가능하지 총선과 대선은 더 어렵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더라. 지방선거는 나눌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총선은 그런 게 성립 안돼서 적용될 모델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거연합, 한계와 과제
김기식 : 선거연합이 갖는 효용성이 어디까지인지 냉정히 봐야한다. 중간평가 국면에선 선거연합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 비전을 놓고 다투는 대선의 경우 선거연합은 충분조건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선거연합이나 연립정부가 새로운 실험은 아니다. 87년 이후 그게 한 번도 화두가 아닌 적이 없었다. DJ와 JP 같은 정치 거두들이 한 DJP 연합도 1년이 못가고 끝났다.
한국에서 연립정부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역사적, 정치적, 경험적 조건이 주체와 지지자들에게 존재하느냐는 점에서 회의적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연합이 민주당의 자기 한계와 혁신의 동력을 회피하고 기득권을 강화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진보정당들도 어떤 방식으로 해나가는 게 진보의 파이를 키우는 것인가에서 전략적 가치를 확고히 해야 한다. 큰 판으로 자기 체급을 바꿔서 헤게모니를 잡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밖에서 성을 쌓는 구조로는 어렵다. 하나의 파이를 크게 키우면서 그 안에서 내부 파이 키우는 방식이 옳다. 집권 가능한 대안적 모델은 자유주의부터 사민주의까지 모여서 각자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지면서 경쟁해야 한다. 그게 연합의 필요와 혁신의 필요를 조합하는 길이다. 새로운 비전 속에서 제 정파가 새로운 통합으로 가는 게 맞다. 각 세력은 자기 비전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석훈 : 민노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진로 고민 할 것으로 안다. 진보정당이 정당으로 버틸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니 논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신당과 유시민 사이의 벽, 진보정당과 민주당 사이의 벽은 존재한다. 또한 진보정당도 세대교체의 문제가 있다. 차세대 리더를 내고 논의를 주도할 것이냐는 문제가 중요하게 나올 것 같다.
고원 : 진보정당의 정치적 무기력과 달리 한국사회에 민주당이 담아낼 수 없는 정치적 지형과 층위가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잘 조직할 수 있는 진보정당이 나와야 한다. 연합정치는 필요할 것 같다.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정부를 같이 구성하는 것은 연합정치 개념으로는 관직배당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식으로 연합정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스웨덴 주요 정당은 사민당이지만 노동당은 선거에서 사민당과 지속적으로 연합정치를 한다. 그러나 사민당은 캐비닛 구성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독자성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례가 많다. 요는, 연합정치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한정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캐비닛을 함께 구성하는 방식도 있지만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연합정치가 모색될 수도 있다. 또한 한국사회에는 진보정당이 담아내는 유의미한 공간이 있다.
김종배 : 연합정당이 실현되기 위한 조건인 민주당의 패권적 태도가 해소될 수 있겠나. 그리고 민노당의 경우 정파 문제로 분당까지 했다. 이러한 한국 정당들의 수준으로 볼 때 가능할까?
김기식 : 변화는 자기의 필요가 있어야 되는 것이지 명분과 논리로 되는 게 아니다. 민주당은 자체의 동력이나 부분적 선거연합 전술로 집권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정당에게 있어 자기변화의 동력은 권력의지에서 나온다. 민주당의 세대교체 문제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젊은 486세대는 2012년 선거 뿐 아니라 그 뒤의 선거까지 치러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집권의 경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당 기득권 세대들은 집권보다 현재의 자리만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정당 틀을 바꾸면 기득권이 흔들리니까 싫어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구세대의 낡은 기득권이 장악하고 있어서 변화가 안 일어나는 것이다. 차세대 주자들이 등장해 개별적, 집단적 권력의지가 생기면 혁신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진보정당의 경우, 삼자 정립 구도에서 자유주의 세력을 누르고 일어나는 전략이 가능한가?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은 성과를 챙겼다지만, 민주당을 인정한 상태에서 약간의 지분을 챙긴 것이고 진보신당은 정당으로서 존재의문을 갖게 됐다. 진보정당은 우리끼리 훌륭한 얘기를 할 것이냐, 아니면 과감하게 뛰어들어 큰 파이 속에서 함께 할 것이냐의 판단의 기로에 섰다. 심상정 후보의 고뇌의 찬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라고 본다. 협소한 틀에 갇혀선 꿈을 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넓은 대중의 바다에 뛰어들어서 진보정치의 꿈을 키워보자는 게 심상정 후보의 고뇌라고 본다. 그런 걸 배신이니 뭐니 하는 문제로 볼 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연합정당 구도로 가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정치적 근거가 각 세력에게 있다고 본다.
그런 정당이 뭐냐. 자유주의 세력은 사민주의에 대한 수용성을, 사민주의는 자유주의에 대한 수용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들이 하나의 정당 틀에서 공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빵 없이 자유 없고, 자유 없이 빵 없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민주냐 진보냐로 싸우는데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대 없이 민중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주주의 틀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우리끼리 얘기일 뿐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은 양극화 현실에서 먹고 사는 고민으로 민주주의를 약간 포기해서라도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먹고사는 것을 챙겨보겠다는 거 아니었나. 결국 자유권의 확대와 사민권의 확대는 함께 물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 정도면 이념적으로는 같지 않으나 함께 할 토대는 있는 것 아닌가? 경쟁 속에 어느 쪽이 헤게모니를 잡을 것이냐에 주목해야 한다. 자유주의 일반을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해서 거부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연합정당의 이념적 토대도 얼마든지 합의하고 공유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석훈 : 2007년 대선은 극도의 배금주의와 신자유주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한미 FTA 전선 같은 게 부각됐다. 지금은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내놓았는데 이건 민노당의 오래 전 공약이다. 4대강 반대도 상당히 근접해 있다. 인물과 문화는 맞지 않지만 정책에 대해선 여지가 있다. 정책연합 가능성은 상당히 있다고 본다. 만약 2012년 대선이 4대강 대선이 된다면 질수가 없다고 본다. 약간 강을 깠을 뿐인데 이정도면….
고원 : 진보정당과 리버럴 정당이 정책적으로 많이 접근한 게 정책적 관점이 단일화 됐다는 것은 아니다. 절충과 정책적 실천을 모아낼 수 있는 공감대가 넓어진 정도로 생각한다. 세대교체 문제에 주목한다. 정당이 정체성의 늪에 빠졌을 때 이를 돌파한 건 세대교체였다. 오바마, 캐머런, 블레어, 하토야마…. 이번 지방선거도 야권에서 생긴 리더십 구도가 중요한 세대교체의 분기점을 만들어냈다. 이건 역학의 법칙이니 민주당이나 야권의 세력구도, 계파 구도도 많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세대교체를 통해 야권이 직면한 있는 터널 같은 정체 국면에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있지 않나 싶다. 다자적 경쟁구도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다만 희미하다고 말한 건 차세대 깃발에 가치나 노선이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의 핵심은 감동 정치다. 아직 감동 부재의 정치를 극복 못하고 있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리더군들이 가치와 노선을 세워내고 감동의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
김종배 : 당장의 과제부터 살펴보자.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가 현안이다. 진보대통합의 측면에서 보면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사이가 이번 선거를 통해 더 벌어진 결과를 빚었는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보나?
우석훈 : 진보신당과 민노당의 통합 요구가 밖에서는 많은데 안에서는 거의 제기되지 않고 있다.
고원 : 국민참여당의 현실적 동력은 상실된 측면이 많다고 본다.
김기식 : 객관적으로 국민참여당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통합의 요구가 다수 존재하지만 그런 단순 합당으로는 질서가 안 바뀔 것이다. 혁신적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조심스럽지만 시민사회도 평가해야한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87년 이후 23년 만에 확실한 진영선거를 했다는 것이다. 여태껏 선거는 정당들이 하고 시민사회는 거리를 뒀다. 이번 과정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와 시민사회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모두가 진영선거를 했다고 본다. 시민사회는 정당을 주체로 놓고 연합을 매개하거나 촉진하는 역할자로 끼어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90년대~2000년대 시민운동이 가졌던 여론정치의 한계가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명망성이나 명분, 개인적 인맥을 통한 영향의 정치로 주장을 관철하려 했던 것들이 한계를 보였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시민사회가 연합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 심판론의 동력을 밑바닥에서 형성하고 심판의 동력을 결집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후보단일화 분위기를 조성한 부분도 있지만 그 정치연합의 시도는 4월 하순에 실패로 끝났다. 그 후에 이뤄진 단일화는 정당과 후보들 스스로의 필요와 결단에 의한 것이지 시민사회가 산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회경제적 구조개혁을 추구해 온 애드보커시 조직의 정치사회에 대한 개입력이 이런 방식으로 가능한가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시민사회가 정치사회에 개입하고자 한다면 보다 직접적인 조직력, 힘을 통해 가야 한다. 그걸 통해 시민정치운동적인, 유권자 운동적인 형태로 가지 않으면 이 한계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경계가 무너진 현실에서 논의가 출발해야 한다.
"MB정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김종배 : 좌담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마무리 삼아 여권 쪽에 대한 전망을 부탁한다. 여권의 역학구도에는 얼마나 영항을 미칠까? MB정부 국정운영 기조가 과연 변할까?
고원 : 이번 선거를 통해 MB식 정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본다. 한나라의 우세승이었다면 이명박 정부는 굉장히 공격적 국정운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결과를 맞았는데 같은 기조로 국정운영을 해나가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기조로 밀어붙이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식물 정권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걸 피한다면 당 내의 박근혜 세력, 당 밖의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반대를 컨트롤해나가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박근혜 세력과 어그러진 게 많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은 이명박, 박근혜, 야권, 이런 3자 정치를 하는 것이 있을 텐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이 대통령 선택의 몫이다.
김기식 :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은 불가피해진 것으로 보이고, 박근혜 전 대표 쪽으로 권력의 추가 이동할 가능성이 높은데, 여권은 레임덕을 막으려고 하는 데에 집중할 것이다. 기존의 이명박 정부 행태로 보면, 야권이나 박근혜 세력과 유연한 국정운영을 할지 의문이다. 비슷한 제스추어는 취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권력기구를 동원한 정면돌파를 선택할 가능성이 많다. 레임덕과 정면돌파 사이의 파열음이 여야 뿐 아니라 여권 내부에도 발생할 것이다. 파열음의 정도에 따라 이 정권의 내리막길이 얼마나 빨리 결정되느냐가 결정될 것 같다. 당장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문제를 어떻게 마무리할 거냐부터 4대강, 세종시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석훈 : 이명박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해오던대로 밀고 갈 것이다. 2012년 본격적인 정치시즌이 열리기 전까지 야당 국회의원들은 할 일이 없다. 4대강 현장이든 어디든 갈 데만 있으면 가고 싶어 할 것이다. 여태까지 광장정치를 정치인들이 주도한 걸 본적 없는데, 민주당 내에서 약간 중도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광장정치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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