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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쟁'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

[의제27 '시선'] 싹튼 '긴장'…'정치적 통제'가 가능하다는 착각

지난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한 뒤 두 달이 경과하는 동안, 이 사건은 잠재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의 안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군사적 위기 상황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5월 20일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있은 이후 남북한은 적대적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한반도의 긴장을 순식간에 위험 수위까지 올려놓았다.

현 상황의 모든 당사자들이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군사적 대치 지역 중 하나에서 군함이 침몰하여 46명의 장병이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즉 이 사건에는 처음부터 폭발적 원심력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상황에 대한 합리적 대응을 위한 전제조건은 긴장의 강도, 성격, 규모가 에스컬레이션되는 것을 막아 파장의 확대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일이다. 천안함 사건은 그 자체로만으로도 크나큰 비극이지만, 그것의 2차, 3차 효과가 쓰나미를 불러일으키게 된다면 비극은 재앙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남과 북은 너무 일찍, 너무 강한 카드를 내놓고 있고, 너무 공격적이고 단정적인 경고를 주고받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북제재에서 사태의 점화성을 특별히 높인 내용은 대북 심리전 재개, 서해북방한계선 교전 규칙 강화, 서해상에서의 한미 무력시위,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금지 등이다. 이에 대해 북한 정부는 남북관계 전면 단절, 남북 통신채널 단절, 개성공단 육로 차단 위협, 확성기 격파사격 경고, 서해상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쌍방 합의 파기 등으로 대응했다. 이에 한국의 군은 북한 초소 격파, 북한 영토 일부에 대한 공중통제, 대규모 군사작전 등을 경고했다.

지난 며칠간의 사태 전개는 남북 쌍방 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긴장의 수준이 급속히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북이 주고받은 위협과 경고들은 앞으로 양국 정부의 행동과 선택의 폭을 제약할 것이다. 대내적 권위와 대외적 위협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 경고들을 쉽게 거둬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스가 가득 차 있는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 라이터를 들이대고 있는 형국이다. 남북한의 권력집단은 지금 '전쟁'을 너무 함부로 다루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전쟁 발발의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한국의 정부.여당이 군사적 위험 수위를 계속 높여가진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만한 여러 근거가 있다. 무엇보다 군사긴장 고조로 주가가 요동치고 해외 투자자들이 자본을 빼는 것은 전쟁 못잖게 두려운 시나리오일 것이다. 국제환경을 보더라도 전쟁의 가능성이 높진 않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은 미국-중국 간 군사충돌의 개연성을 높이는 중대한 상황이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게 된 중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충돌은 어떤 측면에서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해외 언론들도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의 개연성이 높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영국의 <가디언Guardian>지는 5월 25일 "남북한 전쟁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군이 무기, 식량, 사기 등 여러 측면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분석했다. 독일의 <남독일신문Süddeutsche Zeitung> 역시 5월 20일자 논평에서 북한의 호전적 태도가 권력승계를 위한 내부 통제용 전략인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프랑스의 <르몽드LeMonde>지도 5월 25일 기사에서 북한이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감행할 수 없을 것이며, 남한 역시 남북한 긴장이 증폭되어 투자자들이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보도했다. 최근 커밍스(Bruce Cumings) 등 미국의 여러 동아시아 전문가들 역시 한반도에서 전면전 발발의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 국방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따른 대북조치의 하나로 대북 심리전 재개를 결정한 가운데 24일 중동부전선을 지키는 백두산부대 최전방 GOP 장병들이 확성기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

상황이 이러하다면 한국의 정부.여당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는 남북한 군사적 긴장을 실제적 군사충돌까지 몰고 가지 않고 '정치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엄중함이 있다. 세 가지 이유에서 그러하다.

첫째,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고 주장했던 프로이센 장교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의 전쟁론은 20세기의 전쟁 관념에 큰 영향을 줬다. 그러나 전쟁과 기타 군사적 갈등이 정치권력의 합리적 계산과 결정에 의해 관리되어야 하며 관리될 수 있다고 보는 합리주의적 관점은 현대의 전쟁연구에서 비판 받고 있다.

군사적 갈등의 소용돌이는 누구도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은 제3의 방향으로 전개된다. 일단 군사적 충돌이 오가기 시작하면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방식과 규모로 사회 전체를 전쟁의 논리로 흡입한다. 이렇게 되면 전쟁은, 전면전이든 국지전이든, 더 이상 제한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정치적 선택의 환경을 규정하는 힘이 된다. 특히 군사긴장이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될수록 각국 정부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는 그만큼 줄어든다. 국가들이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예방적 긴장관리체제뿐이다. 이미 궤도에 오른 긴장상황에 대한 처방적 관리의 여지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둘째, 군사적 긴장의 에스컬레이션 과정에서 '우발성'과 '불확실성'이라는 요소를 완벽하게 제거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쟁은 종종 우발적 사건과 그에 대한 반응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정치권력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큰 얼개의 전략일 뿐, 모든 병사들의 행동을 통제할 순 없다. 일반적인 매뉴얼에 따른 행동이 긴장상황에선 거대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1차 세계대전이 그러했다.

또한 군사적 긴장의 어느 지점부터가 진짜 위험한 것인지는 종종 불확실하다. 전쟁연구들은 어떤 전쟁을 가능케 한 구조적 맥락을 설명하곤 하지만, 유사한 구조적 환경에서 항상 전쟁이 발발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키건(John Keegan)은 <제2차 세계대전사>에서 전쟁 발발 당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점차 고조되는 긴장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독일이 '정말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군사적 긴장도가 높은 곳에서는 구조적 환경만 갖고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다 낮다를 함부로 예단하거나, 개전과 확전의 리스크를 폄하해선 안 된다.

셋째, 전쟁의 발발과 확대는 정치권력의 합리적 선택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지점부터는 집단감정의 고유한 동학이 정치적 선택을 규정한다. 그리스 심리학자 멘초스(Stavros Mentzos)는 <전쟁과 그것의 심리사회적 기능>에서 전쟁을 국가가 수행하는 목적합리적 행위로 보는 관점을 신랄히 비판했다. 그런 관점은 (준)전시 상황을 움직이는 사회심리적 동학을 간과한다. 군사적 대결 상황이 만들어내는 공포, 불안, 불신, 증오, 분노, 복수 등의 집단감정은 사회적 균열과 갈등구조를 군사주의적으로 재편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러한 사회심리적 역학이 모든 정치세력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사회환경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즉 적국이 아국을 공격하면, 아국도 적국을 공격하라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커져서 그에 호응해야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한다. 전쟁의 논리가 정치의 논리를 삼킨다는 것이다.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연장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한반도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처음엔 국내적 문제였던 천안함 사건이 남북 관계의 문제가 됐고, 이젠 국제적 문제가 됐다. 이해관계가 복잡해졌고, 변수가 많아졌으며, 상황에 대한 포괄적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은 상당한 수준까지 에스컬레이션 됐고, 우발성과 불확실성의 요소가 현 상황에 미칠 수 있는 파장이 너무 커졌다. 현재 여당과 보수언론 등이 천안함 문제를 선거에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미 상황은 '한국 지방선거'라는 사안을 훨씬 뛰어넘는 큰 스케일로 확대됐다.

지금 우리는 '전쟁'의 위험을 진지하게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여당 일각에선 야당이 국민에게 전쟁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을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 건 보수 정치세력과 언론이다. 5월 25일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한 제3차 국민원로회의에서 "전쟁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전면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발언을 쏟아낸 것은 보수정치 원로들이었다.

올해 3월 26일부터 5월 25일까지 두 달 동안 <조선일보> 기사 제목과 내용에서 '전쟁'이란 단어는 543번 등장했다. '전면전'이란 단어도 29번이나 등장했다. (참고로 2005년~2009년 5년간 같은 시기에 <조선일보>에서 '전쟁'이 언급된 평균 빈도는 370회였다.) '경우에 따라선 전쟁도 불사한다'는 주장과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 중 무엇이 더 철딱서니 없는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전쟁'은 절대 함부로 다뤄선 안 되는 괴물이다. 그것이 아직 씨앗일 때는 물을 뿌려줄 것인지 발로 밟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일단 싹이 트고 나면 순식간에 거대한 식인식물로 자란다. 군사적 긴장을 제한된 정치적 목표에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믿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은 역사적으로 전쟁이 그 어리석은 믿음을 얼마나 참담하게 짓밟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여당과 보수언론들은 전쟁이 정치를 삼키기 시작하면 국가 관료기구와 강제기구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전락할 것인지 상상해보길 권한다.

야당들은 지금이 소박한 평화주의로 실제적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원인규명은 모든 판단을 위한 출발점이지만, 현재 긴장고조의 속도와 규모가 엄중함을 생각했을 때 모든 실질적 조처를 원인규명 이후로 유예해선 안 될 것이다. 나아가 안보 문제를 선거에 이용하지 말라는 비판은 정당하되, 선거에 이용하지 않고 안보 문제에 접근했을 때 어떤 답이 나오는지 말해줘야 할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현실에서 안보와 군사 문제는 피해간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군사적 위기 상황에서 현 정권보다 더 신중히 판단하고, 더 냉철히 예측하며, 더 능숙히 대응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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