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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킹 건', 대한민국의 '이성'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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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킹 건', 대한민국의 '이성'을 쏘다

[기고] '스모킹 건'을 둘러싼 프레임 전쟁

국내에서 미국의 진보적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이름이 거론된 지 벌써 오래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 펴냄), <자유 전쟁>(나익주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프레임 전쟁>(나익주 옮김, 창비 펴냄) 등으로 대변되는 그의 대표작은 이른바 '진보 개혁 진영'의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책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 것과 그 내용을 실천하는 것은 천지차이. 천안함의 침몰 이후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쪽은 북한 책임론자이다. 정부의 공식 발표와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가 북한의 어뢰 공격설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그 전부터 북한 책임론자는 프레임 전쟁에서 이긴 상태였다. 4월 7일 이후 대한민국은 '스모킹 건(smoking gun)'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린 것이다.

그 개념이 뉴스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앞서 말했듯 4월 7일, "익명 보도를 남발하는" 이른바 "국가 기간 통신사" <연합뉴스>를 통해서였다. 연합뉴스의 보도 내용을 길게 인용해 보자.

정부 고위 당국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으로서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법의학적, 과학적 검토를 거쳐 대응 방향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놓고 봤을 때 북한이 도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에 대비해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서 "오늘 생존자 기자 회견에서도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가해진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느냐"면서 "지금으로서는 스모킹 건(smoking gun·확증)을 잡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번 사안의 파장은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라며"현실적으로 6자 회담 재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사고 원인 규명시 '단호 대응' 내용 뭘까", <연합뉴스> 2010년 4월 7일자)


▲ 단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찾는 것과 '스모킹 건'을 찾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전자가 후자로 바뀌는 순간 북한은 이미 범인이 되어 있었다. '진짜' 스모킹 건(왼쪽)과 '가짜' 스모킹 건. ⓒ프레시안

이 보도가 나간 이후 여타 언론들, 특히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으로 진작부터 간주하고 있던 언론은 '스모킹 건'이라는 단어를 '핫'하게 만드는 일에 주력했다. 스모킹 건은 무엇인가? 스모킹 건을 찾았는가? 이 증거는 스모킹 건인가 아닌가? 김태영 국방장관과 언론의 인터뷰를 거치며 그 어휘는 '결정적 증거'와 사실상 동의어인 것처럼 쓰였다.

바로 그렇게 북한 책임론자의 반대편에 선 사람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발언권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인가? '스모킹 건'은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몇 가지 사실을 연상케 한다. 연기가 나는 총이 있다는 것. 따라서 누군가는 '범인'이고, '공격'이 있었고, '무기'가 사용되었으며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

단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찾는 것과 '스모킹 건'을 찾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전자가 후자로 바뀌는 순간 북한은 이미 범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있지 않다. 다만 천안함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보와 증거를 틀어쥐고 있었던 국방부 및 관계자의 대응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고 있을 따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을 상대하고자 했던 반대편의 대응이 문제시될 수 있다.

정신없이 흔들리고 속절없이 끌려 다니는 가운데, 정작 해결되었어야 했던 의문은 모두 '스모킹 건'의 연기 속에서 유야무야 흐지부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레이코프의 이름을 들먹이며 코끼리 타령하지 말고, 이럴 때 배운 대로 실천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결국 그 '스모킹 건'은 믿을 수 있는 해명을 바라던 국민 모두의 바람을 쏘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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