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짜리 아들 녀석이 있는 친구가 얼마 전에 전화를 해왔다. 서로의 근황을 말하다가 나온 친구의 이야기가 걸작이었다.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실현하고 있다. 평소에 그런 엄마를 둔 아이를, 그 아이의 친구 녀석들이 부러워했더란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여러 학원을 다니기로 유명한 한 녀석이 친구 아들에게 일갈했다는 것이다. "너, 인생 그렇게 편하게 살면 안 돼."
2010년 한국의 초등학생이 방과 후에 시간당 짜인 일정대로 영어 학원, 수학 학원, 논술 학원에 과학 실험 학원을 돌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은 전혀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집에 와서도 학교 숙제, 학원 숙제, 기타 학습지를 하느라 애쓴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아마도 '안쓰럽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다 그런다더라. 요즘에는 대학가기도 힘들다던데 그렇게라도 해야겠지'인 듯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뛰어놀며 자라야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하는 엄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속 편한 엄마니 상대해서 이로울 것이 없겠다는 취급을 받으며 다른 엄마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서울 지역의 초등학교의 '쉬는 시간'이 경쟁 구도의 교육을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대폭 줄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보통 초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은 10분이지만 최근 3년 사이에 5분으로 축소된 학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안민석 의원(민주당)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아 4월 14일 공개한 '초등학교 쉬는 시간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 587개 초등학교를 전부 조사한 결과 '쉬는 시간 5분제'를 시행 중인 학교는 35개였다. 이 중 77퍼센트인 27개교가 '쉬는 시간 10분제'를 유지하다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 쉬는 시간을 5분으로 줄였다. 2008년 8개교, 2009년 12개교, 2010년 7개교가 새로 늘어난 결과다.
쉬는 시간이 5분이면, 화장실을 다녀오기에도 버겁다. 쉬는 시간을 단축한 학교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에는 활동량이 많아서 생기는 사고 발생 방지를 위해, 고학년의 경우는 방과 후 학원에 다닐 시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언론의 인터뷰에 답변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지키고 도와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공교육 담당자가 학생들을 단지 말썽의 소지가 생길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시류를 핑계 삼아 교육할 시간마저 포기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대해 분노하는 엄마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엄마인가? 세상을 몸으로 겪으면서 커나갈 수 있도록 햇빛 아래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아야 할 시기에 친구를 경쟁 상대로 보도록 훈련받고, 학원을 전전하며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데에 온통 시간을 보내는 어린 아이들을 어쩔 수 없다며 내버려두는 우리들은 죄가 없는가?
꿈의 교육 현장, 덴마크의 교실
▲ <대한민국 엄마들이 꿈꾸는 덴마크식 교육법> ⓒ프레시안 |
아이마다 배우는 시스템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처음 학교에 입학한 1학년 때는 그 아이에게 맞는 배움의 방법이 무엇인지 담임 선생이 주의 깊게 탐색한다고 한다. 시험은 의무 교육 9년 동안 두 번만 치르고, 점수나 순위로 아이를 평가하는 일은 없다. 그저 모든 아이들의 개성과 취향이 있는 그대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덴마크에는 사교육이 없다. 두 번 치르는 시험도 교과서 암기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토론하여 실험, 연극, 미술 작품, 음악 등으로 자신이 말하려 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게다가 방과 후 학교에서는 만들기, 그림 그리기, 컴퓨터 다루기, 레고 맞추기, 퍼즐 놀이, 구슬 꿰기, 음악 교실, 무용 교실, 도서실에 가서 책읽기, 또는 책 빌리기,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기, 운동장에 나가서 놀기, 공예, 목공, 미술, 재봉, 세라믹, 요리, 풀무질, 활쏘기 등의 여러 특별 활동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활동할 수 있다. 그야말로 자율적이고 주체적이며 개성을 가진 창의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유토피아에나 가능할 것 같았던 꿈의 교육 현장은 덴마크의 사회가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삼기 때문에 가능하다. 덴마크 사회에는 거의 서열이 없다고 한다. 더 좋은 직업, 더 좋은 학교 등의 서열이 없다는 것이다. 의사와 벽돌공의 생활 수준은 비슷하다. 물론 의사의 보수가 더 높지만 소득세가 49~60퍼센트인데다가 부가가치세가 25퍼센트에 이르므로 누진세가 적용되어 결국 의사와 벽돌공의 실수입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자들의 조세 저항이 심각하지만, 덴마크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세금이 복지 혜택이 되어 투명하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세금이 높아서 내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개개인이 복지국가를 지탱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복지의 원천이라고 자부한다. 보통사람들은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변호사, 의사, 검사 등의 사회 엘리트들을 공부시켰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만족하므로 행복하고, 남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 구도의 교육
우리나라는 더 높은 서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는 사회다. 좋은 학교가 있고, 좋은 직업이 있다. 상위권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보수, 더 안락한 삶으로 이어지는 등식이 철저하게 지켜지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오히려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도록 돕지 않는 부모는 결과적으로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 여겨지고 비판받는 분위기다.
경쟁은 한국 사회에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경쟁의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디어야 하는 것이라고 아이들은 훈련받고, 내재화한다. 이 덕분에 학원에 다니지 않고 있는 친구에게 "너 인생을 그렇게 편히 살다가는 큰일 난다"는 충고를 초등학교 6학년이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를 고통 속에 빠뜨린다. 공정한 규칙이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사실상 가진 자의 편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거의 정해져 있다. 하지만 부모들은 아이를 경쟁의 대열에 밀어 넣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노력으로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몇 개 안되는 파이를 얻어야 아이의 행복도 보장되고 부모의 노후에도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경쟁의 구도가 심화되면, 가진 자는 더욱 많은 것을 가지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그러한 경쟁의 과정을 겪다보면 외톨이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그 고통은 클 수밖에 없다.
경쟁은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 경쟁 구도 속에서 친구는 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다양한 인간 관계의 측면을 경험하게끔 해주는 소중한 존재가 아니다. 오로지 나의 몫을 빼앗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친구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음 따위는 버려야 한다. 내가 경쟁에서 탈락할 수 있다. 친구의 고통으로 인해 내 몫이 커질 수 있다면 적극 환영이라는 심보가 길러지는 것이다. 이런 구성원들로 가득한 사회에 발전이 가능할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으며, 다른 이들과 함께 해야만 의미가 있고 발전이 있다는 사실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마음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여럿을 이기기는 힘들다. 사회의 산적한 문제들을 단편적인 지식만을 외고 있는 독불장군들이 해결하기 바란다는 것은 무리다.
더욱이 함께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과 함께 지내는 방법을 모르니 왕따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다른 녀석을 지독하게 괴롭히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 정신적으로 불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경쟁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심각한 해를 끼친다.
노예를 만들어내는 교육
덴마크 교육의 주요한 목적은 다양한 소질과 개성을 개발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발견하도록 하고, 독립된 인격체로서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경쟁 구도 교육에서는 불가능하다. 경쟁은 이미 외부 사람들이 좋다고 정해둔 가치를 얻어가는 것이다.
나의 개성은 외면되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가치를 좇다보니 삶에서 행복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남들이 다 좋다는 대학의 인기 학과를 졸업해보아도,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이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찾기 어렵지 않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고, 개인적으로도 시간적으로나 노력 상으로나 큰 낭비다.
경쟁 구도의 교육은 노예를 만들어낸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남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삶이기에 그렇다. 자신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결정이 빠진 삶은 남이 하라는 대로 하는 노예의 삶에 다름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환영받는 아이는 선생님 말씀과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겨를이 없다. '왜?'라는 질문과 그에 따른 고민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권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 질문하지 않고,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살아가는 노예는 진정한 삶의 기쁨을 맛보기 힘들 것이다. 경쟁 구도의 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거나 나의 꿈을 찾지 못하고, 외부의 평가만 신경 쓰게 된다. 게다가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나 기회를 차단당해버리기 쉽다. 그리하여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기 어렵다. 중요한 삶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할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덴마크 아이들은 질문을 많이 던진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을 쓸데없는 질문이라 여기지 않고, 어른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아야 아이들이 질문을 많이 던질 수 있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일상화되면, 아이들은 스스로 답을 찾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자라난 아이들은 커서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게다가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교육 문제의 해결은 꿈이 아니다
덴마크의 교육 현실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인가? 이룰 수 없는 꿈으로 구경만 해야 하는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10년의 한국 사회는 치열한 경쟁 구도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경쟁을 지상 최대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 우리의 아이들은 교육 현장에서 계속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부모들까지 사회 전체가 고통을 겪고 있다.
교육 문제의 해결은 꿈이 아니다. 하지만, 꿈의 실현을 위해서는 거대한 경쟁 구도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경쟁 구도의 교육이 존재하는 한 현실의 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경쟁 구도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아이들을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쟁 구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다.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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