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나잇 스탠드 |
- 영화를 기획, 제작하게 된 배경을 말해달라. 처음부터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는가.
그렇다. 그래도 서독제와 상상마당이 껴있는데, 아이디어를 모으면 일반관객과 직접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 상상마당이 서독제를 후원하고 있고 그래서 상상마당 섹션도 따로 만들고 상상마당 상도 주고 있는데, 상상마당 쪽에서 직접적이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남기는 걸 원했던 것 같다. 그쪽으로 후원정책을 선회하면서, 처음에는 1,500만원으로 단편을 하나 만드는 기획을 제안해왔다. 그런데 그렇게 단편을 만들면 결국 서독제에서 한 번 틀고 말아버리는 결과가 되기 쉽다. 그래서 돈을 더 주면 아이디어를 내보겠다고 했고, 결국 3천만 원으로 단편 세 편을 묶어 옴니버스 형태의 영화를 만들게 된 거다. 3천만 원으로 장편을 만드는 건 좀 웃기는 얘기고, 감독한테도 미안한 얘기니까. 결과적으로 서독제에서 매년 영화를 한 편씩 만들 수 있는 구조가 되긴 했는데, 2009년 후원금으로 만들어야 할 영화는 지금 여러 가지 사정상 지연되고 있다.
- 옴니버스 형태가 된 이유는.
애초 토론은 단편영화를 기획해 이를 묶어서 개봉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각각 단편인데 하나의 단편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기획을 해서 만든다면 관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다. 결국 형태는 옴니버스가 될 수밖에 없는 거고. 지금은 독립 장편들이 많이 개봉하고 있지만, 상업영화와 다른 즐거움이나 가치를 갖고있는 영화라면 단편영화들도 많다. 웬만한 장편보다 좋은 단편들도 많고. 문제는 그런 단편들이 개봉의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사건건>이나 <셀마의 단백질 커피>가 개봉했던 것처럼 간헐적으로 개봉된 때는 있었지만,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야 독립영화를 오래 한 사람이니 지금만큼 장편이 별로 없을 때부터도 단편을 묶어서 개봉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었고. 물론 단편을 묶는 건 처음부터 옴니버스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 첫 기획, 제작영화의 주제를 에로스로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 혹여 첫 제작이라 상업적 고려가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2008년에 서독제가 '섹스 이즈 시네마'라고, 성에 관한 기획을 했었다. 사회적 이슈로는 성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도처에 성산업이 널린 나라에서 그런 관점으로 성을 다루는 영화는 많지 않다. 끝까지 가는 사랑얘기든 결국 파멸하는 얘기든, 헤테로섹슈얼이든 호모섹슈얼이든 담론에 비해 영화가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싶었다.
- 사실 2008년은 충무로에서도 에로티시즘 영화들이 갑자기 나왔던 시기 아닌가?
<쌍화점>이나 <미인도>같은 영화가 있었지만, 이걸 지금 누가 기억하는가. 사회적 맥락, 콘텍스트가 받춰주질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더 많이 기억하지 않나.
- 2008년에 갑자기 성에 대한 영화나 그런 담론이 쏟아진 건, 사회적 억압이 심해졌다는 무의식의 발현 아니었을까.
그런 것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했을 때 나오는 건 결국 폭력과 섹스다. 내가 창작자가 아니니까 이렇게밖에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내부의 토론도 거쳤지만 그걸 넘어서는 건 없더라. 2008년에 그런 기획을 했던 건, 이전엔 대체로 작가 중심이었는데 당시엔 그럴 만한 작가도 많이 발견하지 못하기도 했고, 반면교사로 참을 만한 아시아의 주요 감독을 못 찾은 이유도 있다. 어쨌든 2008년에 그 기획을 하면서, 감독들에게 제안을 한 거다. 편당 분량은 25분에서 30분, 예산은 8백에서 천이고 주제는 섹슈얼리티 혹은 에로티시즘으로. 다들 한 번에 오케이를 했다. 그 세 명의 감독과 나, 그리고 (공동 프로듀서를 했던) 오주은 피디가 2008년 서독제가 끝난 직후부터 두 달 넘도록 계속 만나 토론을 했다.
세 감독 모두 머리를 맞댔던 이상적인 옴니버스 영화 현장
- 처음부터 감독들도 모두 같이 모여 기획회의를 했단 말인가.
그렇다. 처음엔 시나리오를 어떤 방향으로 할지, 에로티시즘은 너무 주제가 넓다고 토론을 하다가 하룻밤의 이야기로 좁혔고,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그 주제로 맞추고. 세 감독 모두 초기 시나리오는 한두 번씩 "이건 안 된다"며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대체로 '노(No) 역할'은 나와 오주은 피디가 맡았지만, 감독들도 조심스럽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들을 개진했다. 모두들 시나리오를 고치거나 다시 쓰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다보니 제작기간이 길어져서 서독제 직전에야 완성됐다. 원래 목표는 9, 10월에 완성돼서 부산영화제 때 상영은 못 하더라도 해외 게스트들에게 홍보하는 거였는데. 편집 때도 토론을 많이 했고 재촬영을 한 사람도 있다.
▲ 원 나잇 스탠드 |
- 많은 옴니버스 영화들은 대체로 감독들이 자기 영화만 만들고 감독들끼리 소통하거나 하는 일은 드물다. 찍을 땐 힘들었겠지만 듣는 입장에선 굉장히 이상적인 옴니버스 영화 현장 같다. 에피소드들이 각자 따로 놀지 않고 어느 정도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영화간 유기적 연결은 없는데. 어쨌든 후반작업 때에도 피디들한테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감독들이 다 같이 모여서 보고 또 토론하고. 감독들끼리 입을 맞추고 피디들한테 얘기를 하기도 하고. 우리가 감독들을 잘 만난 듯하다. 오히려 감독들이 적극적으로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간 브릿지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어야 하지 않나, 제안하기도 하고 실제로 써보기도 했는데 최종적으로 선택이 안 된다. 영화 자체가 나쁘지 않으니까, 괜히 중간에 뭘 삽입하면 오히려 흐름을 깰 수도 싶었지. 깔끔하게 심지어 단편별 제목도 빼는 쪽으로 합의가 됐고 감독들도 모두 흔쾌이 오케이했다. 감독들이 자기 개인의 영화가 아니라 '다 같이 살아야 하는 영화'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래서 잡음도 없었다. 기획에 많이 따라줬고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 에피소드마다 장르가 달랐던 것도 일정 부분 처음부터 분담한 것인가.
그렇진 않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감독들의 성격을 아니까. 각각 어떤 영화들을 만들어왔는지 어떤 스타일인지. 그렇게 기대한 것만큼 딱딱 나온 듯하다. 민용근 감독은 딱 서정적인 단편영화만의 그 느낌에 섹슈얼리티가 들어간 영화를 만들어냈고, 이유림 감독은 원래 모호하게 직접 얘기 안 하면서 여러 복잡한 얘기들을 담으면서 노동문제의 한 가운데에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찍어왔지 않나. 장훈 감독은 원래 장르적인 영화에 강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장훈 감독은 아마 자기 돈도 많이 썼을 것 같다. 규모가 좀 크지.
세 명의 감독, 세 가지 색(色)
- 이유림 감독이 연출한 에피소드를 보며 미스터리를 굉장히 능숙하게 다룬다고 느꼈다.
그런데 관객들이 못 받아들이는 듯해서 좀 안타깝다. 이유림 감독이 편집도 제일 많이 바꾸고 마음고생을 했다. 미스터리라곤 해도 진짜 스릴러가 있는 건 아니고, 주인공 여자가 왜 저러는지도 모르겠다며 짜증내는 관객도 있던데.
- 도저히 속마음을 모르겠는 신비로운 여자라는 게 대체로 남성이 여성을 (일방적으로) 보는 관점인데, 이 영화에선 그런 여자를 묘사하는 방식의 뉘앙스가 많이 다르더라.
화자인 남자주인공이 헤매고 있지만 그 중심엔 여자가 있으니까. 3편 안 좋게 본 사람들 중에는 "호모포비아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 위태위태한 면이 있긴 한데, 참 우리들 얘기 같지 않나? 영화제 가서 놀고 젠체하는 인간들이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는 점에서.
- 세 명의 감독들은 어떻게 선택한 건지.
서독제 본선에 올랐던 감독들 중 다른 옴니버스 영화에 참여하지 않은 감독들로 골랐다. 기획영화니까 얘기도 잘 통할 것 같고 자기 고집도 적절히 조율할 수 있겠다 싶은 감독들이기도 하고. 얘기 꺼낼 때도 참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한번에 오케이들을 해줬다.
- 결국 기획이 성공한 케이스인 듯하다.
글쎄, 기획이 많이 안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에로틱 영화라면서 안 야하다고도 하고. 아마 그게 가장 맹점일 거다. 이 제목이 붙은 순간 반응은 아마 두 부류일 거다. 정말 야한 걸 기대하거나, 이거 분명 낚는 거고 다른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그래서 아예 야한 것에 대한 기대치를 접고 오는 관객도 있는 듯하다. 그런데 독립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관객들은 굉장히 좋아하더라. "이런 게 독립영화의 힘 아닌가"라며 반응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야하게 나오긴 힘들 거라 생각했다. 배우와 감독, 제작자 사이에 확고한 신뢰가 있지 않으면 노출있는 영화는 찍기가 어렵다. 내가 보기엔 독립영화에 야한 영화 없는 건 감독들도 찍기 두려워서인 듯하고. 안 해봤고, 처음부터 맘먹고 쓰지 않으면 안 되니까. 우리영화는 기획영화였고, 시나리오 쓰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지만 시나리오가 완성이 되고서야 캐스팅을 시작했다.
- 배우들이 되게 힘들었겠다, 노출 때문에. 배우들 캐스팅은 어떻게 했는가?
힘들었겠지. 그 현장에 나는 안 갔으니까. 논의하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서로 여러 카드들을 추천하고 만났지만, 결국 감독들이 배우들을 선택했다. 어디까지 노출이 있을 거다 사전에 얘기했고, 사전에 얘기가 모호하게 된 배우들의 경우 감독들이 다시 가서 사과하고 설득하고. 감독도 배우도 서로한테 서로 조심스러워 하고. 오히려 너무 서로를 배려하느라 힘들어하고, 그럼 또 "저 사람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나" 싶어 힘들어하고, 오히려 그랬다.
- 두 번째 에피소드의 여주인공인 최희진 씨는 대체로 지적이고 강단있는 이미지인데, 신비하고 속을 가늠할 수 없는 여자 역할을 굉장히 잘해내서 놀랐다. 화장을 그렇게 세게 하거나 노출을 하는 모습도 처음이었지만.
자신도 놀랐을 거다. 최희진 말고도 다른 배우들도 스스로 많이 놀라지 않았을까. 영화 만들고 나서 최희진 씨를 만나 인터뷰를 해보니, "나도 내 자신을 잘 모르는 게 아닌가, 나한테 안 어울리는 듯하다"고 반응하더라. 사실 우리도 다 놀랐다. 분장하고 화장하고 이런 걸 보니 딱 새침떼기 같더라고.
- 언론시사 때 "영화제 때보다 반응이 더 좋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더 좋은가?
감독들의 의도를 훨씬 더 잘 읽는다는 느낌이다. 장훈 감독 에피소드에선 다들 확실하게 웃고, 민용근 감독 에피소드에서도 반응이 확실하게 온다. 이유림 감독 에피소드에서도 감독 의도대로 "저 여자 대체 왜 저래? 저게 꿈일까?"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독립영화, 지속적 발전에도 시장은 여전히 열악
- 요즘 진짜 흥미로운 영화는 독립영화에서 다 나온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예산의 한계가 있기는 해도 전체적인 만듦새도 좋고 매끈하다. 화면도 잘 뽑고 35mm 필름과의 차이도 많이 극복한 듯하고. 사실 10년 전만 해도 독립영화는 어딘가 거칠고 조잡하고, 좀 '한 수 접고 봐줘야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원나잇 스탠드>도 후보정을 많이 한 편이다. 요즘은 장비도 워낙 좋아졌고, 감독들이 젊어서 매체 적응력도 빠르고 연구도 많이 한다. 새로 나오는 장비들 같은 거에 바로바로 적응하고 관심들도 많다. 디지털 매체만의 미학과 스타일에 대한 고민과 연구도 각자 많이 하고.
▲ 원 나잇 스탠드 |
- 배우들의 층도 두터워진 것 같다. 이름만 덜 알려졌을 뿐이지 연기들을 참 잘한다.
그 사람들이 떠야 하는데. 그게 좀 안타깝다. 최희진 씨도 그렇고, 주류영화와 독립영화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진폭이 넓어야 하는데, 또 한 번 저쪽으로 가면 다시 오기도 힘들지. 매니저 장벽에 쌓이니까.
- 기술이나 장비도 좋아지고 배우 층도 두터워졌는데, 안타까운 건 역시 시장이다.
시장, 배급 문제가 가장 크다.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지 않았고 독립영화끼리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도 <경계도시 2> 이후에 <반드시 크게 들을 것>과 <경>, <원 나잇 스탠드>가 똑같은 극장에서 똑같은 규모로 물려서 상영되는 상황이다. 획기적으로 틀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영화들은 묻히기 아까운 게 많고. 극장 관계자들도 "하필 <아이언맨 2> 틀어야 할 시기에 개봉하냐"며 원망을 하더라. 그런데 우리가 다른 시기를 안 알아봤겠는가. 사실 이것도 개봉이 살짝 밀린 거다. <아이언맨 2>가 아니라도 5월달엔 <하하하>나 <시> 같은 작가영화들이 포진해 있다.
- 독립영화에 대한 매력을 새로이 느끼는 사람들은 계속 보이는데, 이 숫자가 쌓이지는 않는 것 같다.
딜레마다. 독립영화계나 영화 만드는 이들이 꾸준히 영화 만들면서 극복해야 할 문제다. 자기 영화를 틀기 위해 많이들 노력해야 하고, 윤성호 감독이나 이런 감독들도 참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 않나. 아니면 태준식 감독처럼 영화제와 상관없이 공동체 상영을 이어가는 방법도 있고. <저 달이 차기 전에>도 공동체 상영만으로 이미 만 명을 넘었다. 민주노총 커뮤니티가 있고 하니 조금만 움직여도 7천에서 만 명을 모은다. 그래서 작품이 좋거나 일반 관객들이 좋아할 만하면 뒤늦게 개봉을 할 수도 있겠지. 인디스페이스가 있었다면 가능했겠지. 작은 영화들이 획기적으로 돈을 많이 쓰거나 극장을 많이 잡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맥시멈으로 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웃집 좀비>도 그렇고 <원나잇 스탠드>도 거의 마케팅비를 제작비 만큼이나 쓰지만 눈에 잘 안 띄이지 않나. 사실 시장적으로 상황이 참 안 좋다. 독립영화뿐 아니라 한국영화 전체가 그런 듯싶다.
- 처음 독립영화 보는 것에 진입하는 것도 많이들 어려워하고.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는 데이트하면서 보기는 어렵지. 유희하면서 즐기거나 소비하기에는 너무 무거울 수도 있다. 지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관객들의 경우는 영화제나 이창동 홍상수, 외국감독한테서 채울 수 있고. 외국의 마스터피스들을 보는 사람들이 생짜 감독들 영화 보고 만족을 얻겠나. 김성호나 신동일, 윤성호 감독처럼 조금 인정받는 감독들의 영화는 보겠지만. 주류와 비주류의 관객 차가 점점 심해지고 양극화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천만 칠백만 영화는 계속 나오잖아.
- 박스오피스의 1등 영화에만 몰리는구나 싶다. 개인적으로 문화의 중심이 영화에서 이미 옮겨갔다는 생각도 들고.
문화학교 서울 당시에는 오는 사람들이 다들 백수였다. 편의점 알바를 하든, 과외를 하든 해서 최소한 자기 생계를 유지하고 영화 몇 편 볼 정도는 됐다. 그런데 지금 20대들한테는 그럴 여유가 없다. 학교도 휴학하고 알바 하고 있는 상황인데, 영화보러 다닐 형편은 안 되지. 영화라는 게 아무래도 노는 문화다 보니까 생계형 백수들이 많아야 잘 굴러가는데. 요즘은 노는 것도 일 년 확 아르바이트 해서 한두 달 외국 나갔다 오는 식이다. 잘 놀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
- 작년에 인디스페이스가 없어진 공백도 너무 크다.
<경계도시 2>의 홍형숙 감독이 항상 하는 얘기다. <워낭소리>도 GV를 하면서 인디스페이스에서 만 명 가량 들었다. 한 해동안 들 관객의 반이 <워낭소리>에 든 거다. 모든 영화가 그럴 수능 없겠지만, <경계도시 2>도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많이 들었을 영화다. 오히려 <원나잇 스탠드>는 인디스페이스가 아닌 다른 극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극장들끼리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이런 거점들이 서울에 4개는 있어야 하는데 하나마저 사라졌다.
일시적 후퇴일 뿐, 우리는 계속 전진한다
-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도 세 개로 늘었고 인디플러그 같은 회사도 생기는 걸 보면, 독립영화도 나름 시스템 안에서 시장을 만드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굉장히 중요한 노력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독립영화가 너무 상업화됐다"며 나서는 사람들은 이런 걸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글쎄, 영화를 만드는 시스템에서나 투자받은 돈의 성격 때문에 독립영화가 영향 받거니 영화가 달라지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독립영화는 구준히 자기 길을 가고 있지 않나. 이래야만, 혹은 저래야만 독립영화라 규정하는 것도 이미 독립영화적이지 않은 사고라는 생각을 한다. 작은 극장이더라도 극장개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게 인디스페이스가 됐든, CGV 무비콜라쥬가 됐든. 일반관객들에게 영화를 내세우는 그 순간 이미 상업화라 할 수 있고, 관객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보고 미학이든 사회적 의식이든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은 상업영화와 다르지 않다. 한 개관에서 개봉했는데 성에 안 차면 2개관에서 개봉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거고, 이게 또 강북뿐 아니라 강남,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의 개봉에도 욕심을 낼 수 있다. 그 와중에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 된다. 물론 그것이 뭐냐의 기준은 각자 다를 수는 있겠지만.
▲ 원 나잇 스탠드 |
상상마당에서 돈을 받았으니 독립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하고싶은 걸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도록 노력했는가"이고, "독립영화 영역이 얼마나 넓어지고 있는가"이다. 기업의 이미지 마케팅 같은 것에 활용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서로 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범위를 어떻게 보느냐는 각자 다르겠지만. 독립영화가 상업화됐다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상업영화여서 상업적인 전제 를 안 하고 만드는 거라면, 자기 혼자 보거나 영화제에서만 소개하겠다는 얘기인가? 그러나 우리의 욕망은 이미 그것을 넘어서고 있고, 영화제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제를 안 거치고 개봉해보려고 고민하는 감독도 있고. 이런 시도를 해볼 수도 있고, 주류시장에 노크해서 이런 콘텐츠가 있다고 드러낼 수도 있다. 영화제도 너무 주류가 됐다 판단되면 더 실험적인 영화 만들 수 있겠지.
그렇게 전방위적으로 뻗어나가고 분화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독립영화만을 위해서 독립영화 하는 건 아니니까. 독립영화의 사회적 기능이 뭔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뭔지, 이것이 지금의 독립영화의 고민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들의 고민이 "독립영화가 어떤 것인가"였다면, 이제는 우리 만족 외에도 독립영화가 왜 필요하고 무슨 기능을 하는지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이건 영화로 설득해야 하고, 이미 다양한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한독협이나 서독제나 인디포럼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저 영화제가 너무 대중적이라면 우린 더 마이너하거나 실험적인 하겠다, 할 수도 있고. 이미 시도도 해봤고 실패도 해봤고, 또 시도하고. 인디포럼이 영진위와 굉장히 중요한 싸움을 하면서 위치를 만들었지 않나? 한독협이 못하는 영역을 만들어 낸 거다. 미디액트도 독립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들도 마찬가지. '인디피크닉'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한번 봐라. "이래도 안 볼까?" 싶은 영화들이다. 주제도 다양하고 작년과 올해 독립영화계의 대표작인데 그 영화들이 지금 전국을 돌며 상영되고 있다.
상영방식도 마찬가지다. 영화제에서만 틀 것인가? 다양하게 틀어야 하고 기업들과 앞으로도 더 싸워야 한다. 무비콜라주에도 한국영화 전용 무비 콜라주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중이다. 관객이 몇 명이나 들지는 또 그때 그때 고민하는 거고. 작품이 힘이 있으면 노력도 그만큼 하면 된다. <경계도시 2>도 작품이 좋다고 그냥 던져놓고 가만히 있었으면 5천명도 안 들었을 거다. 배급사나 감독이 그렇게 열심히 뛰고 노력해서 만 명으로 끌어올린 거다. 이건 다른 독립영화도 마찬가지다. "내 작품 좋은데 안 봐요" 칭얼대는 게 아니라, 좋은 걸 알리고 타협할 때 타협하고 싸울 때 싸워야 한다. 문제는 영진위와 싸우면서 그 에너지가 다 몰려가버린 상황이지만. 거점도 없어지고 말이다.
- 얼마 전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다시 봤다. 불과 15년 전 얘기인데, 저렇게 싸워서 지금의 독립영화의 위상이 됐구나 싶으면서도, 그렇게 싸우고 쟁취한 것들이 있는 반면 환경이나 조건이 그때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후퇴는 최근 1, 2년의 일시적인 거다. 독립영화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관객들이 있다는 걸 확인한 계기이기도 했다. 힘들긴 하지만 인디스페이스가 없어진 것에 대해 대안을 준비하면서 거점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건 예전에는 전혀 못했던 것들이다. 처음 한독협 사무국장이 됐을 때만 해도 아무것도 없이 월세 고민하면서 대학로에 극장을 알아보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도 영진위에선 "그런 공간 만들면 틀 영화나 있냐"고 했는데 3, 4년만에 요구를 수용해 미디어센터나 전용관도 만들고 했었다.
- 조금만 버티면 나아진다는 얘기인가?
나아진다기보다... 더 도약하기 위해 우리 내부를 점검할 시기라고 판단한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의존도가 높으면 한 큐에 날아갈 수 있다는 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 지금 김동원 감독, 안정숙 전 영진위원장,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을 공동대표로 한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추진위원회'가 꾸려져 있다. 조만간 발기인들을 모을 거고, 올해 안에 활동을 가시화할 거다. 씨네21의 사진전도 독립영화전용관과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명목으로 열린 것 아닌가. 미디액트도 5월 14일 재개관한다. 다들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지원을 안 받지는 않겠지만, 계속 밀어붙이고 정책적 방향에서도 계속 싸우고 타협하고 해야 하는 거고. 정책적으로도 이슈파이팅을 계속 해야 한다. 지원을 받는다고 관객이 느는 건 아니다. 정부의 지원정책도 인프라가 없다 보니 제작비를 직접 주는 식의 지원이었다. 전용관이 없으니 마케팅비를 직접 주고. 지금은 지원방식도 바뀌어야 할 거다.
그렇게 일시 후퇴하는 대신, 지금까지 했던 것에 대해 점검을 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무언가 잘못하긴 한 건가? 잘못을 했다면 그게 무엇일가? 돌아보고 재정비 해야지. 변화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도 고민해야 한다. 영화 만드는 것이든 영화제를 하는 것이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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