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그대로 '한국'으로 옮겨 놓으면 십중팔구 '비극'이다. 그런데 더 이상 '비극'으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이 나타났다. 바로 '미스 맘마미아'다. '미스 맘마미아(http://cafe.naver.com/missmammamia)'는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의 온라인 공동체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가진 몇몇 엄마들이 의기투합해 2009년 6월 온라인 모임을 만들었다. 현재 카페 회원은 330여 명. 이중 80% 정도가 아이를 기르는 미혼모들이다. 이 모임을 토대로 올해 1월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만들어졌다.
"낙태가 불법? 한국은 낙태를 권하는 사회"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이의 생명이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미스 맘마미아' 첫 화면에 쓰여진 문구다. '당사자 운동'을 시작하는 이들이 내건 첫 번째 목표는 미혼모에 대한 인식 개선이다. "미혼모들도 다른 엄마들과 똑같은 엄마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최형숙 미혼모가족협회 대외협력부장이 밝혔다.
형숙 씨는 2005년 8월 아이를 낳았다. 오랫동안 연애를 하다 헤어진 남자친구와 사이에서 생긴 아이였다. 헤어진 직후 임신 사실을 알았다. 아이 때문에 헤어진 남자친구와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고 그도 처음엔 낙태를 생각했다. 최근 프로라이프의사회에서 낙태 시술을 하는 산부인과 병원을 고발하면서 낙태가 어려워졌지만 그전까지 한국에서 낙태는 '피임' 방법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차마 낙태를 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서울에서 살아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출산을 앞두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면서 그는 오빠에게 연락을 했다. 임신 8개월 째였다. 배가 잔뜩 불러 있는 여동생의 모습을 본 오빠는 말도 안 붙이고 바로 뒤돌아서 갔다고 한다. 며칠 뒤 찾아와 오빠는 형숙 씨에게 임신 중절 수술을 하라고 강요했다.
"임신 8개월에 어떻게 낙태 수술을 하냐고 해도 막무가내였어요. 돈이 얼마나 들어가든 오빠가 대줄테니 애 떼라고. 너 혼자 어떻게 애를 키우냐, 지방에 계신 부모님 생각은 안 하냐는 게 오빠 얘기였죠. 오빠만이 아니라 친구들이며, 후배들이며, 임신 사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낙태를 권했죠."
낙태를 강요받는 것은 최 씨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미혼모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다. 미혼모가족협회 정선옥 사무국장도 마찬가지 지적을 했다.
"임신했을 때 친구들이 모두 낙태하라고 했죠. 아이를 낳고 나서 낙태하라고 했던 친구들한테 되물었어요. 만약 내가 그때 낙태를 했다면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고, 이전의 나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나를 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으니까 아무도 대답을 못하더라구요.
우리 사회는 생명 존중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생명에 대해 책임지지 말라고 하는 사회입니다. 더 이상 섹스가 결혼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연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섹스를 하게 되는데 임신은 누구에게나 들이닥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일종의 '사고'처럼요. 그렇다면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왜 낙태를 한 사람은 떳떳하고 생명을 선택한 미혼모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나요?"
최 씨가 말을 이어 받았다.
"최근 프로라이프 의사회에서 낙태 반대를 주장했는데 낙태가 어려워지면 미혼모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미혼모와 그 아이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 아이들을 또 다 해외로 입양 보낼 건가요?"
▲ '맘마미아'는 미혼모와 딸이 주인공이다. ⓒ영화 '맘마미아' |
"주민센터 사회복지사가 입양을 권하더라"
형숙 씨가 낙태를 거부하자 오빠는 입양을 강요했다고 한다.
"아이 낳는 날 오빠가 병원으로 왔어요. 입양 보내는 걸 자기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내가 새벽 2시에 아이를 낳았는데 당일 11시에 아이를 데리러 입양기관에서 왔어요. 그리고 바로 퇴원해 미혼모 시설로 왔죠.
그 시설에서 보면 엄마들 얼굴이 다 퉁퉁 부어있거든요. 전 애를 낳아서 부어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아이를 입양 보내고 밤새 울어서 부어있는 것이었어요. 저도 병원에서 돌아와 방에 누웠는데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데 내 뱃속에 있던 아이만 없어졌어요. 마치 아이를 난지도 쓰레기 처리장에 버리고 온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시설에 있는 상담선생님에게 얘기를 하니까 아이를 찾아오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평생을 살 수는 없지 않겠냐고.
다음 날 입양기관에 아이를 찾으러 가겠다고 전화하니까 안 된다고 펄쩍 뛰더라구요. 이미 절차에 들어가서 번복할 수 없다고. 그래서 내가 지금 우리 아이가 입양가정에 간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위탁가정에 보낸 것도 아니고 입양기관에 그대로 있는데 왜 못 찾아 가냐고 따졌죠. 그러니까 담당 사회복지사가 여름휴가를 가서 없으니까 3일 후에 전화하라고. 아마 기관에서는 그 기간 동안 내 마음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약속한 날에 아이를 찾으러 갔죠. 병원 신생아실 같은 방인데, 병원 신생아실에는 모빌 같은 것도 달려 있고 아늑한 분위기였는데 여기는 하얀 벽에 침대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어요. 그 삭막한 곳에 내 아이만 혼자 누워 있는 걸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지금도 한 달에 한통씩 아이에게 편지를 써 보관하고 있거든요.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되면 주려구요.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아이를 입양 보내려고 했던 그 일주일 동안을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지난해 국내 입양아동의 84.9%(1116명), 국외 입양아동의 89.3%(1005명)가 미혼모의 자녀였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 여성이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혼모의 경우 아이 아버지 뿐 아니라 다른 가족의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다. 딸의 출산 사실을 뒤늦게 안 형숙 씨 아버지도 형제들에게 "형숙이는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니다. 너희들 중에 누구라도 형숙이와 연락하면 마찬가지로 내 자식이 아니다"고 매우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다른 누구의 도움이나 지지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많은 미혼모들이 입양으로 내몰린다. 선옥 씨는 "미혼모들이 입양을 보내는 이유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서"라고 얘기한다.
미혼모들은 입양을 선택하면서 이 일이 자신과 아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런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입양에 대한 우리 사회의 막연한 '환상'은 외국의 중산층 가정으로 입양돼 풍족한 생활을 하고 덤으로 영어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형숙 씨는 "미혼모 시설에서도 입양과 양육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 하고 입양기관에서는 입양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게 상담에 대한 전부였다"고 말했다.
"시설에서도 그런데 지역사회에서 혼자 아이를 낳는 경우 더더욱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가 없죠. 사실 한국은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장려하는 사회가 아니죠. 제가 아이를 낳고 모자원 입소를 알아보러 동네 주민센터에 갔어요. 사회복지사가 상담실도 분명히 있던데 사람들 다 있는 사무실에 세워 놓고 '미혼모가 어떻게 혼자 아이를 키우냐. 그냥 입양 보내라'고 하더라구요. 모자원에 대해서도 '그게 뭐냐. 그런 게 있냐'고. 주민센터 직원들 중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그럴 정도로 인식이 부족하고 시스템화도 돼 있지 않아요.
내 경험 때문에 입양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해외입양인 단체 등을 통해 입양인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 한 입양인이 그러더라구요. '늘 가슴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다'고. 아이가 엄마와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엄마와 살지 못하는 아이가 행복하기는 힘들지 않겠어요?
정부 정책이 바뀌어서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여건을 어느 정도 갖춰준다면 지금처럼 90%의 미혼모가 입양을 선택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어려도 엄마가 됨과 동시에 책임감이 생깁니다."
선옥 씨는 국내 입양을 장려하기 이전에 미혼모 가정에 대한 지원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강조했다.
"오늘(11일)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입양의 날' 행사에 다녀왔어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연예인들의 이 자리의 이중성에 대해 알까 궁금했다. 입양가족의 행복은 생모의 눈물 없이는 불가능한 거잖아요. 도저히 끝까지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도중에 나왔어요. 이제 사람들이 해외입양의 문제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인식하고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자고 하는데 원가정만 지켜주면 그럴 필요가 없어요."
선옥 씨와 형숙 씨는 입양의 한 주체인 원부모를 철저히 배제시키는 입양 과정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했다. 입양기관에서 아이를 데려오면 입양가정이 결정될 때까지 위탁가정에 보내진다. 위탁기간 동안 월 50만 원 가량과 기저귀 등 육아 용품이 지원된다. 이 돈을 원부모에게 주고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과 입양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하자고 이들은 제안한다.
"입양됐다가 파양되는 아이들도 많아요. 끝까지 입양이 안 된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요보호 아동으로 시설에 넘겨져요. 파양이 되거나 입양이 안 될 경우 원부모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입양 보내는 엄마 입장에서 양부모는 우리 아이를 평생 맡아 키워줄 사람들이잖아요. 당연히 양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입양 관련 세미나에서 이 얘기를 하니까 입양기관 관계자는 '우리 고객인 양부모들이 불편해 한다'고 하더라구요."
지난해 국내 입양이 된 아동 중 866명이 파양됐다.
'양육수당 5만 원'이 성인 미혼모에 대한 지원의 전부
미혼모에 대한 정부 지원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이들에 대한 지원 수준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이다.
'양육 미혼모'들은 차상위계층만 아이가 10세가 될 때까지 월 5만 원을 지원받는다. 입양가족에 대한 지원보다 적다. 국내 입양의 경우 13세까지 입양 양육수당으로 월 10만 원(장애 아동은 55만1000원)과 건강보험 1종 혜택을 지원한다.
올해 미혼모 지원 예산 121억 원이 통과됐지만,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24세 미만 미혼모만 월 10만 원의 양육비를 지원받는다. 24세 이상 미혼모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형숙 씨는 "미혼모 지원은 엄마의 나이가 아니라 아이의 나이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숙 씨는 정부 지원이 미혼모 시설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설에 들어가면 혜택이 많아요. 하지만 시설에서 계속 살 수는 없잖아요. 모자원을 포함해 최장 6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미혼모는 아이와 함께 수십년의 세월을 헤쳐나가야 해요. 물론 시설이 있는 건 좋죠. 하지만 재가에서 있는 더 많은 엄마들도 혜택을 받게 해줘야 해요.
또 시설은 이미지가 좋지 않아요. 그래서 미혼모들이 웬만하면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특히 지방으로 가면 지역사회가 좁다보니까 시설에 들어가는 게 바로 낙인이 되버니가 보니 시설이 텅텅 비어 있어요. 얼마 전에 대구에 가보니까 미혼모가족 14세대가 살 수 있는 시설에 6세대가 살고 있더라구요. 그런데도 정부는 돈을 들여 시설이 더 많이 짓겠다고 해요. 추가로 시설을 짓는 대신 그 돈으로 재가 미혼모들한테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 원가정을 보호하는 게 입양을 활성화하는 것보다 우선돼야 한다. ⓒ연합 |
"그 많은 미혼부들은 어디 있나요"
자영업을 하는 형숙 씨는 지난 4월 30일 가게를 정리했다. 시간이 갈수록 주변 사람들이 형숙 씨 모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애 혼자 키우는 엄마라고 이상한 소문이 돌더라구요. 좀 쉬다가 다시 가게를 열면 그냥 미리 다 공개하려구요. 솔직히 미혼모에 대한 편견 때문에 비난 받으면 매번 똑같이 아파요. 상처가 무뎌지는 게 아니더라구요. 다만 이겨내는 지혜가 생기는 것 뿐이죠.
한국에서 미혼모로 산다는 건 땅 위에서 살다가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호적에 내 성을 딴 아이가 있을 때 취업이 잘 되겠어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선옥 씨는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와 그 아동에 대해 "편견이 아니라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또 제도가 국민들의 인식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혼모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책임지려고 아이와 함께 하루하루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미혼모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만 묻고 싶습니다. 그 많은 미혼부들은 어디에 있나요?"
저출산을 고민하면서도 매년 1000명 안팎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한국에서 '미스 맘마미아'들은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국가가 살기 좋은 국가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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