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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외국인 투표는 '화교'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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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외국인 투표는 '화교'만 해라?

외국인 참정권도 '소득따라 차별'…왜 이런일이?

5.31 지방선거에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바로 외국인이 건국 이후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난 2005년 8월 '공직선거법'이 개정됨에 따라 국내에 거주하는 '영주의 체류자격 취득일 후 3년이 경과한 19세 이상의 외국인'에게는 지방선거에 한해 투표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 조치는 한국에 사실상 정주하는 외국인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대단히 크다. 특히 현재 참정권 획득 운동을 벌이고 있는 재일교포들의 일본 내에서의 입지를 강화시켜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대단히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하게 되는 외국인은 총 6579명에 불과하다. 대만인이 6511명으로 단연 많고, 일본인 51명, 미국인 8명 순이다. 기타 국적을 가진 사람 중 선거권을 가진 사람은 고작 11명. 한국에 사는 다른 외국인들, 특히 8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은 참정권을 받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동남아 이주노동자는 80만명 중 11명만 투표권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다는 방글라데시인 마숨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동남아 같은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 중에서 영주권을 갖게 된 사람이 거의 없어요. '생활이 안정적일 것'이 영주권의 조건인데, 일단 직장을 구하기 힘들고요. 한국인과 결혼하면 2년 후에 자격이 생기는데, 그래도 소득이 적어서 생활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요."
  
  저임금 노동시장에 주로 포함돼 있는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은 투표권 부여기준인 '영주의 체류자격'에 해당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로 영주권 부여 자격은 '소득이 한국인 평균소득 4배'(2005년 기준 연간 1만6000달러×4=6만4000달러, 우리돈으로 6400만 원) 이상인 외국인이거나 고액의 투자가, 고학력자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최소한 12년 이상 거주해야 영주권이 주어지는데, 이때에도 '소득은 한국인 평균소득보다 많아야 함'을 전제로 한다. 외국인들에게도 '소득 수준'에 따라 참정권 부여가 결정되는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이 규정하고 있는 '영주권(F5 비자) 부여 자격'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영주권을 딸 수 있는 이는 '고액투자 외국인'이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미화 200만 불 이상을 투자한 사업가나 미화 50만 불 이상을 투자한 3년 이상 체류 사업가는 영주권 취득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첨단기술 분야 및 특정능력 보유 또는 소유자, 특별 공로자가 참정권을 받는다. 그러나 이를 심사하는 요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해당 분야의 장관으로부터 추천을 받거나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연간 소득이 한국은행고시 전년도 일인당 국민총소득(GNI)의 4배 이상이어야 한다.
  
  마지막 방법은 7년 이상 머물러 거주권을 획득한 뒤 다시 5년이 지나면 영주권 획득 자격이 주어진다. 이때도 심사하는 것은 안정된 생활이 가능한가를 판단하는 '수입'이다. 이 수입은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 이상일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뤄 안정된 생활을 하며 최소기간 12년 이상을 한국에 거주해도 영주권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외국인 사회 갈등 유발 우려
  
  결국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중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확보된 지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영주권을 얻게 되는 셈이다. 반면 소득이 일정 수준에 못 미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10년을 살건 20년을 살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세금을 내는 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에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한국국제이주연구소의 김희정 연구위원은 "외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과 영주권을 취득한 정주 외국인 간의 상이성이 커지면서 이들 집단 간의 갈등과 그 갈등이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같은 사실상의 선택적인 정주외국인 선거권 부여가 사회적 불안정으로 이어진 경우를 프랑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는 1990년경 제1세대 이주민에게는 선거권을 주지 않았지만, 젊은 2,3 세대 이주민에게는 자동적으로 선거권을 부여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당시 프랑스는 이주민 세대 간의 불평등과 갈등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었다.
  
  어쩌다 이런 법이 만들어졌나?
  
  그렇다면 정부가 그 효과가 대단히 의심스러운 기준을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2005년 당시 선거법 개정에 참여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투표권은 우리 국적을 가진 국민이 행사하는 것이 원칙인데 예외적으로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일종의 특혜나 다름없다"며 "특혜를 아무에게나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영주권만 가지고선 부족하고 그 뒤로도 3년 이상 거주로 기준을 강화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아무나 줄 수 없는 신성한 투표권'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사회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는 외국인에게는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세금을 낸다고 참정권 부여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선거권은 현재와 장래의 국가운영을 결정하는 중요한 권리이자 사명감에 따르는 것"이라는 일본 내 보수 세력이 재일교포 참정권 획득 운동에 반대하는 논리와 다를 게 없다.
  
  이같인 '상호 모순적인 법안'을 만들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런 법안이 만들어진 과정이 담긴 국회 회의록을 뒤져보면 의문은 한꺼번에 풀린다. 다음은 2005년 6월 14일에 진행된 제254회-정치개혁특별소위원회 제4차 회의록의 일부다.
  
- 이명규 위원: 그런데 국내 장기체류 외국인의 연수를 제한하자, 한 10년쯤 어때요?
  
  - 전문위원 김종현: 5년으로 했습니다.
  
  - 이명규 위원: 아니, 5년은 안돼. 산업연수생 이런 것들 다 들어간다고요.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것은 화교 같은 사람 인정해 주자 이 얘기거든요. 장기체류 용어의 정의가 뭔지 그런 게 있습니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F5라고 영주권 취득자만 되는데 그것은 화교만 해당이 됩니다.
  
  - 이명규 위원: 그러면 아예 '국내 장기체류 외국인'이라고 표현하지 말고 '영주권자'라고 하면 됩니까?
  
  - 김기현 위원: 영주권자의 제한 규정 조건이 어떻게 되지요?
  
  - 김선미 위원: F5라고 있어요. 아주 까다롭더라고요. 그래서 1만 명밖에 안 돼요. 화교밖에 안 돼요.
  
  - 김기현 위원: 외교통상부에 알아보든지 누구 시켜서 확인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인기 위원: 영주권의 요건도 안 보고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하기는 그렇잖아요?
  
  - 이명규 위원: 산업연수생 이런 것은 제외하고 영주권자인 경우에는 선거권, 피선거권 다 인정하는 것에 일단 동의하겠습니다.
  
  - 소위원장 이종걸: 그렇게 하십시다.
  

  소득 또는 투자액에 따라 아예 영주권 부여자격이 제한되고, 그 영주권을 받은 사람에 한해 투표권이 주어지는 현재의 제도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지방의회 수준의 참정권이라 하더라도, 그 숫자를 과도하게 늘려서는 안 된다는 입법자들의 충정을 높이 사야 하는 것일까?
  
  그 결과는 6000여 명의 외국인, 대개는 화교들에게만 초보적인 투표권이 주어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를 지적하기에 앞서 외국인 영주권과 투표권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는 장면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하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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