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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현장 노동자 팔아 지방선거 공천장 지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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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현장 노동자 팔아 지방선거 공천장 지켰나?"

[기자의 눈] 한국노총이 한나라당과 정책연대에 집착하는 이유는?

한국노총(위원장 장석춘)이 또 한 번 일명 '야합(野合)'을 저질렀다. 상급단체 파견자 130여 명의 2년 치 월급을 위해서다. 그 대가로 '날치기'로 '원천무효'라던 노조 전임자의 유급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인정해줬다.

얻어낸 것마저 정상적이지가 않다. 파견 전임자들의 월급은 정부 예산으로 움직이는 공공기관, 노사발전재단이 마련한 기금에서 나온다. 비록 기금의 재원은 경영계가 댄다지만, 노동조합 간부가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장석춘 위원장 스스로 "더 이상 굴욕적일 수는 없다"고 개탄했던 이 노동부의 제안을 한국노총은 의결기구가 아니라 집행기구인 중앙집행위원의 표결이라는 절차를 거쳐 수용했다.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의 형식을 이용해 "역사상 최악의 치욕과 수치"를 한국노총은 스스로 선택했다.

"오욕의 역사로 기록될까 두렵다"(한국노총 화학노련)는 토로가 내부에서부터 나온다. 한국노총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평화 되찾은' 한국노총…지도부 사의 표명도 없던 일로?

11일 한국노총과 경총, 대한상의, 노동부의 합의 이후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한국노총의 모습은 이런 질문의 답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장석춘 위원장의 사의 표명이 있었지만, 이후 대책 논의도 전혀 없다. "일어나지 않았던 일"로 치부하려는 분위기다. 전날 사퇴 표명은 지도부 5명 전원을 뜻하는 것이었지만, 장 위원장을 제외한 지도부 대부분은 12일 출근해 업무를 봤다.

▲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의 사의 표명이 있었지만, 이후 대책 논의도 전혀 없다. "일어나지 않았던 일"로 치부하려는 분위기다.ⓒ연합뉴스

지난 12월 '타임오프 도입' 노사정 합의 이후에는 펄펄 뛰었던 산하조직도 화학노련(위원장 한광호)을 제외하고는 성명 한 장 내지 않았다.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장 밖에서 대의원 50여 명이 한 시간 여 동안 농성을 벌이며 '지도부 사퇴와 정책연대 파기'를 요구했던 공공연맹(위원장 배정근)도 마찬가지다.

탈퇴를 공언했던 금융노조(위원장 양병민)는 이날 열린 지부대표자회의에서 탈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19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탈퇴 필요성 대한 공감대는 재확인됐고 노사정 합의 역시 문제가 많다는 입장도 변함이 없지만, 탈퇴는 일단 지도부 진퇴 추이를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1박2일 점거농성까지 벌이며 장 위원장에게 "당장 내려오라"고 큰소리를 치던 일주일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한국노총은 11일을 기점으로 평화를 되찾은 듯 보인다. 상급단체 파견자 130여 명을 지켜낸 성과 때문일까? 14년을 끌어 온 노조 전임자 임금 관련 문제가 최종 일단락 됐다는 안도감의 표현일까?

"지금 한국노총에서 지도부 사퇴보다 더 어려운 게 정책연대 파기"

한국노총 산하조직의 한 관계자는 전날 있었던 한국노총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한국노총에서 지도부 사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정책연대 파기다."

정책연대 파기를 막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과제였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돌이켜보면 한국노총 지도부가 걱정했던 것은 타임오프의 한도나 사용인원 따위가 아니라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 그 자체였던 것"이라는 화학노련의 평가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한국노총에게 '결전의 날'이었던 11일은 6월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일 이틀 전이었다. 이미 한국노총에서 12일 현재 13명이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았다. 민주당 공천이 확정된 사람도 11명으로 숫자는 비슷하다.

문제는 정책연대가 파기되는 순간, 이들 13명은 어렵게 받은 공천장을 함께 내던져야 한다는 데 있다. 한국노총은 이미 노동부가 고시를 강행하면 정책연대는 자동으로 파기된다고 공언한 바 있고, 노동부는 11일 아침 "한국노총이 계속 기존 입장을 고집한다면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의결한 내용을 고시한다"고 분명히 했다. 이날 한국노총에게 노동부 안의 수용 여부와 정책연대 유지 여부는 일종의 '패키지'였던 셈이다.

선거에 나서려는 이들만 문제가 아니다. 이미 국회에 입성해 금배지를 단 강성천, 김성태, 이화수 의원도 입장이 곤란해진다. "정책연대가 파기되면 의원직을 내놓겠다"던 본인의 약속을 모른척하자니 뒷통수가 따가울 게 자명하고, 그렇다고 정말로 의원직을 던질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이미 의원이 된 이들에게도, 지방선거를 준비하던 이들에게도 정책연대는 '생존'이었다. 한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책연대 파기가 정말로 현실화되려면, 최소한 지난 3월에는 파기 선언이 나왔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천을 받은 후보들이 있고, 부산본부는 이미 지난 4월 허남식 부산시장(한나라당) 지지 선언까지 한 상황에서 정책연대가 파기되면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파기' 협박은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곳까지 온 뒤 나온 공염불이었던 셈이다.

"한국노총의 뿌리는 원래 한나라당이었다"

지난해 11월 30일도 똑같았다. 노조법 개정을 놓고 민주노총과 함께 대정부 투쟁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여가던 한국노총은 갑자기 180도 다른 내용의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기업 내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결국 (…)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국가의 선진화도 멀어질 것"이라고 장 위원장은 얘기했다.

정책연대 파기와 총파업 선언을 하루 앞두고 나온 '전향'이었다. 이 전향으로 한국노총은 모두가 하루 뒤면 파기되는 것으로 알았던 정책연대의 수명을 자연스럽게 연장시켰다. 총파업 찬반투표는 휴지 조각이 됐다.

한국노총은 위기 때마다 '정책연대 파기'를 들고 나왔고, 얻은 것이 있든 없든 오직 명분만을 찾아들고 또 '정책연대 유지'를 선언했다. "온갖 구걸을 통해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 파견자를 유지하는 모욕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바라본 것은 정책연대 유지였다"는 한국노총 산하조직 관계자의 말은 반복되는 이런 패턴에 기초한 비판이다.

노동조합이 정치를 통해 더 많은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이 한국노총만의 바람은 아니다. 민주노총 역시 끝없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내세우며 정치권력을 희망하고 있다. 한국노총의 정책연대가 세간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대상이 상대적으로 더 "반(反)노동자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오랜 뿌리는 지금의 한나라당이다. 박인상 전 한국노총 위원장은 자신의 회고록 <외줄타기>(매일노동뉴스 펴냄)에서 "(한국노총은) 50년 동안 여당을 편향적으로 따랐던 조직"이라 말했다.

비록 1997년 대선에는 김대중 후보와 정책연합을 맺었고, 2002년 대선에서는 민주사회당을 창당하고 독자정당 노선을 천명하기도 했었지만 한국노총의 오랜 인연은 한나라당이었던 것이다. '직선제 개헌' 요구가 거리 곳곳을 메웠던 1987년에 "4.13 호헌 조치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던 한국노총이 진짜 한국노총인 셈이다.

"한국노총에게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는 첫사랑 같은 것"이라는 한 한국노총 관계자의 말은 이런 한국노총의 역사를 거론한 설명이었다.

화학노련 "한국노총이 지켜야했던 것은 현장 노동자의 자존심이었다"

아무리 역사가 그렇다고 현재 선택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권에 무릎을 꿇은 우리의 과거를 외면하지 말자"던 지난 10년의 다짐은 이명박 정부와의 밀약 이후 무색해지고 있다.

더욱이 한국노총은 이번 노사정 합의로 노동조합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제 발로 짓밟았다. "참으로 애처로운 구걸"(민주노총)이며 "몇몇 상층 간부들의 자리보전을 위해 노동자의 자존심과 노동조합의 자주성마저 내팽겨 친 투항행위"(보건의료노조)라는 외부의 비판 차치하고라도, 내부조차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화학노련은 성명에서 "사실 뻔한 결과를 두고 속이는 이나 속는 이나 다 같은 부류일지도 모른다"며 "그러나 그렇게 치부해버리기에는 우리의 상처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화학노련은 그 상처에 대해 "제1노총을 자부하는 한국노총이 지켜야했던 것은 반노동자 정당과의 정책연대가 아니라 그나마 한국노총을 믿고 따랐던 현장 노동자들의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조합원의 자존심을 팔아 자기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는 내부 비판이다. 그것도 연애 기간 내내 배신만 저지르고, "노력하겠다"는 '립서비스' 외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상대에 매달려서 말이다.

산하조직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절대로 개혁이 불가능한 한국노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토로했다. 화학노련도 "또 다른 정치판을 연상시킨 이번 과정은 보신주의와 패배주의를 양성시켜, 후일을 도모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노동조합 특유의 잠재력까지 앗아가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조합원의 신뢰를 회복하기도 난망해 보인다. 전날 회의장 밖에서 농성을 벌인 한 공공연맹 대의원은 "지난해 말에도 기껏 총파업을 조직하니 위에서 덜컥 조합원을 배신하더니 이번에도 똑같은 수순인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은 정책연대라는 인공호흡기가 없이는 한 순간도 숨 쉴 수 없는 조직이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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