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영화제를 주관하는 환경재단 측은 28일 오전 11시 환경재단 내 레이첼 카슨 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상영작들을 발표했다. 올해 환경영화제는 작년 "모두들 하고 있습니까?"에 이어 "함께 해요! 바뀔 거예요!"를 캐치프레이즈로 정하고, 개인들의 작은 실천이 결국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낙관의 희망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캐치프레이즈에 맞추어, <7인의 초인과 괴물 F>로 주목을 받은 박종영 감독이 연출한 가운데 영화제 조직위원이기도 한 정경순과 작년 환경영화제 홍보대사로 활약했던 박진희, 새로이 합류한 류상욱, 홍아름 등 7명의 배우들이 참여해 만든 영화제 트레일러 <지구를 지켜라!>를 기자회견 때 선보였다.
▲ ⓒ프레시안 |
작년 서울시와 환경부가 환경영화제 지원을 중단하면서 한때 영화제 개최가 불투명할지도 소문이 돌았던 만큼, 기자회견장의 질문은 주로 작년 지원 중단과 올해 환경영화제의 개최 강행에 대한 배경에 집중됐다. 환경재단은 2008년 최열 대표의 횡령 혐의가 불거지면서 표적수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작년에는 그간 환경영화제를 지원해온 서울시와 환경부가 이미 책정된 지원 예산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집행하지 않아 지원금의 액수만큼 고스란히 빚을 졌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환경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제를 주최하는 환경재단이 "적자와 빚을 감수하고서라도 영화제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결의와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권력은 5년이지만 환경운동은 영원하다"라는 뼈있는 말로 현재 환경영화제가 겪고 있는 '탄압'에 대한 반응을 드러냈다. "이미 자리를 잘 잡고 해외에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어 올해도 참으로 많은 영화들이 출품됐다. 게다가 환경운동에 있어 영화제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그렇기에 절대 영화제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 최열 대표의 말이다. 마침 기자회견이 열렸던 날은 안그래도 이상기후가 계속되던 와중 '여전히 겨울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 진행됐던 만큼, 최열 대표의 말이 예년보다도 더욱 큰 울림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최열 대표의 주장과 결의를 그대로 증명하듯, 올해 환경영화제의 라인업은 예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비록 전체 상영작 수가 소폭으로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경쟁부문을 비롯해 환경영화제가 야심차게 운영하고 있던 특별전 및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그대로 존속됐다. 근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던 '물'에 대한 영화들이 올해는 '쟁점 2010 : 먹는 물, 파는 물, 흐르는 물'이라는 주제전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원래 '쟁점' 섹션은 환경영화제가 매년 매년 특정 이슈를 선정해 이와 관련된 영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일종의 '특별전'이자 '주제전'으로, 올해 쟁점 부문에서는 석유에 이어 자원 논쟁과 환경이슈의 핵으로 떠오른 물을 주제로 한 영화 11편(단편 6편 포함)이 상영될 예정이다.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케빈 맥마흔 감독의 <워터라이프>도 지구상 담수 공급의 20%를 담당하는 오대호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4대강을 살린다는 명목 하에 전국 곳곳의 강과 그 주변이 몸살을 앓고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만큼 이는 매우 시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경쟁부문인 '국제환경영화경선' 부문에는 장편과 단편 각각 10편씩 총 20편의 영화가 진출했다. 황혜림 프로그래머는 올해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작년보다도 더욱 '물'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증가한 가운데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에서 제작된 환경영화들이 약진을 보였다는 점을 꼽았다. 총 776편의 출품작 중 미국 112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09편이 한국작품인가 하면, 그간 상대적으로 수가 적었던 중국영화들도 올해 출품편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 이 중 장편 2편, 단편 1편(단편은 일본과 공동제작)이 본선에도 진출했다.20편의 작품 중 한국 환경영화는 두 편으로, 두 편 모두 단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민성아 감독의 <다섯 번째 계절>은 비무장지대의 사계절을 표현했으며, 허만재 감독의 <호곡동 블루스>는 철거지인 호곡동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 귀신 등이 등장하는 이색적인 작품이다.
▲ <더 코브 : 슬픈 돌고래의 진실> |
올해 아카데미영화제 다큐멘터리 수상작인 <더 코브 : 슬픈 돌고래의 진실>이 환경영화제에서 다시 상영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작년 국내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묻혔다고 판단한 환경영화제 측이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영화를 조망해보자는 의도다. 정일건 감독의 <대추리에 살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인 <아마존의 눈물> 등의 작품들은 물론,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뒤 극장개봉을 앞두고 있는 권우정 감독의 <땅의 여자> 등은 '한국환경영화의 흐름' 섹션에서 상영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을 모은 '지구의 아이들'과 동물들에 대한 작품들을 따로 묶은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 섹션의 작품들은 아이들을 포함해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기후변화와 미래' 부문은 영화제 출품작 중 여전히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기후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하는 부문. 개인은 물론 공동체 단위의 직접적인 실천과 체험을 다룬 영화들이 예년보다 많아졌다는 것이 황혜림 프로그래머의 설명이다. 예컨대 미란다 베일리 감독의 <친환경 영화제작백서>는 영화인들이 촬영현장을 친환경적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커트 앨리스, 이안 체니 감독의 <내일을 위한 건축법>은 주거용 친환경건물을 짓는 건축가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이밖에도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기후변화를 탐구하는 영화 9편이 상영된다. 그런가 하면 최신 환경영화들을 통해 환경영화의 흐름을 짚어보는 '널리 보는 세상' 부문에서는 유럽, 미국에서 날아온 영화들 외에도 아이티에서 제작된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 <한 그루, 또 한 그루>는 무분별한 삼림 벌채로 격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아이티에서 펼쳐지고 있는 아아티 삼림 재건 프로젝트를 다루는 영화다. 실질적인 체험과 실천을 담은 영화들을 모은 '액션! 지구를 지켜라' 섹션에서는 3개월간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미션에 도전한 한 가족의 이야기 <화학제품은 필요없어!>, 도심 속에 농촌을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다룬 <화학제품은 필요없어!>,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서 도시생활과 농업을 공존하는 삶의 양식을 가구어온 더배스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더배스 가족의 작은 혁명> 등이 상영된다.
예년까지 상암CGV에서 진행됐다가 올해 처음 명동에 위치한 롯데시네마에서 열리게 되는 만큼, 환경영화제는 이에 대한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갖고 있는 듯 보인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명동은 일반관객 및 잠재관객들의 접근성을 훨씬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간 상암 및 인근 성미산 등을 중심으로 매년 환경영화제를 찾았던 가족단위 관객들과 쌓아온 교감과 커뮤니티가 약화될 우려도 있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정면돌파를 선택하며 변화를 가미한 환경영화제가 어떤 성과를 거둘지 기대가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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