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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람' 몰아온 매니페스토, 정착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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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람' 몰아온 매니페스토, 정착될 수 있을까?

정책선거의 계기…측정가능성 위주 평가는 '한계'

매니페스토(Manifesto). 이번 지방선거에 새로이 등장한 운동이다.

우리말로 '참공약 선택하기'라고도 번역되는 이 운동의 기본 취지는 측정 가능성, 구체성, 실현 가능성, 타당성, 기한명시 등 5대 조건을 중심으로 공약을 검증하자는 것이다.

'5.31 스마트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추진본부(이하 매니페스토 추진본부)'는 지난 2월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으며,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가 전국 22곳의 기초단체장선거를 매니페스토(참공약 선택하기) 시범지역으로 선정하는 등 이 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언론매체 또한 예비후보들의 공약을 매니페스토의 기준에 맞춰 평가하는 기획물을 온라인 상에 공개하는 등 매니페스토는 이번 지방선거의 주요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이 운동은 투명사회실천협의회,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등 상대적으로 정파적 색채가 옅은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 가운데 선거문화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한 개인들이 지난해 말부터 논의를 시작해 올해 2월 발족한 것.

외국에서 들어온, 이름조차 아직 낯선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순식간에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책선거'를 요구하는 시대의 반영
▲ 지방선거을 앞두고 매니페스토 운동이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높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매니페스토 추진본부는 중앙선관위 및 정당들과 함께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실천 협약식'을 가졌으며 후보들에게도 정책선거를 다짐하는 선언 형식의 가입을 받는 중이다. 또한 광역 11개 및 기초 25개 지역에서 추진기구가 발족된 가운데 지역순회 설명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매니페스토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관련 전문가들이 개발한 정책 평가지표가 현재 배포된 상황이며 23일 각 후보의 정책에 대한 평가 결과가 취합되어 최종 발표될 예정이다.

매니페스토 추진본부의 이광재 사무처장은 "한국 사회 내부에서 이미 정책선거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있었고, 그 상황에서 우리 운동이 탄력을 받았던 것"이라며 현 시대적 상황이 매니페스토 운동의 '적기'였음을 강조한다.

그는 "기존 시민운동이 내놓지 못했던 '물갈이 그 이후의 대안제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형성되어 있었다"며 "우리는 새로운 운동을 발명했다기보다, 국민들이 원했던 정책평가기준이라는 공공재를 발견한 것"이라고 매니페스토 운동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러나 매니페스토가 추구하는 '정책 검증 운동'은 매 선거철마다 시민단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정책제안 및 정책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문화연대, 녹색연합을 비롯하여 각 분야의 단체들이 후보들에게 정책을 제안하고 있고, 특히 서울시장 후보들이 내놓는 정책에 대한 평가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제까지 시민단체들이 진행해 온 '정책 제안'이 실제로 주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것. 전문가들의 평가가 중심이 되는 그간의 정책 제안 운동방식은 주민들의 참여 통로가 뚜렷치 않다는 점에서 '그들만의 진단'으로 여겨지기 쉬웠다.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니 후보자들 또한 제안 받은 정책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다.

이광재 사무처장은 "매니페스토 운동의 조직 형태를 보면 단체들의 연대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도 참여가 가능한 열린 네트워크형 조직"이라고 기존 시민단체들의 운동 방식과 차별성을 지적했다.

그는 현재 매니페스토 운동이 "중앙의 추진본부는 정책평가의 지표를 개발하고, 각 지역과 개인이 지표를 가지고 지역사정에 맞게 활용하는 활동 형식을 띠고 있어 유권자들에게 직접 평가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의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실현 가능성'에 초점 맞춘 무가치적 평가…"'개발 공약' 난무할 수도"

그러나 매니페스토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선 매니페스토의 중요 평가기준인 정책의 구체성, 실현 가능성, 측정 가능성 등은 결국 정책 추진에 필요한 예산 조달이 가능한가의 여부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과연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의 예산자립도가 낮은 한국의 현실에서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

서원대학교 엄태석 교수(정치행정학)는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들이 중앙정부와 국고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공약을 책임 있게 추진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던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당, 거의 모든 후보들이 매니페스토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마치 갓 쓰고 운동화 신고, 자전거 타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또 공약 선정에 있어 '실현 가능성'을 주로 따지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개발 공약 경쟁을 야기한다는 우려가 높다. 정책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 내지는 '철학'이 그 정책의 실현 가능성 못지않게 중요하게 평가돼야 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가치중립적'인 매니페스토 운동을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준영 문화연대 정책위원회 정책실장은 "시민단체의 사회적 역할은 정책이 끼칠 영향에 대한 가치 평가가 중심이지 그 정책의 정확성이나 실현가능성은 그 이후의 문제가 아니냐"며 매니페스토 운동에 대해 "시민단체의 대안적 가치 제시가 빠진 소극적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2006 지방선거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승창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책위원장도 "매니페스토 운동은 정책의 정확성을 따지는 가치중립적 활동이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운 측면이 있는 반면 시민연대 측 활동은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 평가를 중시한다"고 지적했다.

'100% 후보 동참'이 '100% 공약 실천'으로 이어질까?

한편 '선거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이 운동에 담아낼 것인가도 과제다. 이광재 사무처장은 "매니페스토 운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행 평가"라며 "후보들이 협약으로 내놨던 정책들에 대해 1년 단위로 주기적인 검증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 추진본부가 지방선거 이후에도 공약의 실현 여부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설립된 지 2달여밖에 안 된 단체가 전국에 퍼져 있는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을 추적해야 한다는 난감한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매니페스토 추진본부의 유문종 집행위원장은 "전체 확인은 어렵겠지만 100%에 가까운 지방선거 후보들이 매니페스토 선언에 동참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같은 예측은 매니페스토 운동이 현재 발휘하고 있는 위력과 동시에 선거 이후 활동의 어려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전국적 감시활동에 필요한 조직과 인력, 그리고 자금의 확보 여부 등이 운동의 향후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시민운동의 차기 대안이라고 자임하고 있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선거철 한때의 지나가는 바람에 그치지 않고 한국 정치의 선거풍토를 뒤바꾸는 구조적인 변화까지 견인해낼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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